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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의열단’이 체포된 상하이 황포강 앞에 서다 / 이이화

등록 2011-01-05 09:16

필자는 상하이 기행에서 1922년 황포탄 의거 현장을 답사했다. 당시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왼쪽·훗날 총리대신 시절)의 암살을 시도했던 3명의 의열단원 중 한사람인 김익상 선생(오른쪽).
필자는 상하이 기행에서 1922년 황포탄 의거 현장을 답사했다. 당시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군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왼쪽·훗날 총리대신 시절)의 암살을 시도했던 3명의 의열단원 중 한사람인 김익상 선생(오른쪽).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61
중국 기행의 마지막 여정인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부터 호기심에 들뜬 우리 일행은 ‘상해물자무역중심’ 건물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여름 끝물인데도 왜 이렇게 더운가? 거대한 이 건물은 한창 짓고 있는데도 완성된 층부터 호텔로 이용하고 있었다. 시내는 베이징보다도 더 북적거렸다. 거리는 차도와 인도를 가릴 것 없이 자동차와 자전거와 보행자로 뒤엉켜 있었다. 혼란의 도가니였다.

저녁식사는 호텔 식당에서 했다. 우리는 쌀밥을 시켰는데 옆에 앉은 안대옥군이 밥에서 무언가 가려내고 있었다. 바로 바구미였다. 그러고 보니 내 밥그릇에도 시커먼 바구미가 많이 보였다. 그릇에 이빨이 빠진 것은 그들 말대로 행운이라 치더라도 바구미를 일지 않았으니 참 한심한 일이었다. 우리는 결국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다시 상하이 뒷골목으로 갔다. 서울의 맛과 비교도 할 겸 한 자장면 식당의 문 앞에 이르니 마침 함지박에 그릇을 씻고 있었다. 그릇을 헹구는 물에는 기름이 둥둥 떠 있었고 이 물에 대나무 젓가락을 한두번 휘젓고 꺼냈다. 끝내 자장면을 먹지 못했다. 참으로 그리고 그리던 도시의 첫인상이 이러니 앞으로 어찌할꼬.

하지만 서둘러 돌아볼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튿날 먼저 프랑스 조계가 있었던 곳으로 택시를 몰았다. 마당로에 이르자 서양식 건물이 곳곳에 보였다. 프랑스 조계지임을 한눈에 실감할 수 있었다. 마당로 보경리의 4호를 겨우 찾아냈다. 3층의 이 집이 바로 1926년 임시정부가 옮겨와 32년 윤봉길 의거로 철수할 때까지 청사로 썼던 집이다. 그런데 문 앞에는 화분 하나만 덜렁 놓여 있고 아무런 안내 표시도 없었으며 주인도 일터에 가고 없었다. 세를 사는 주민의 허락을 얻어 세 층을 두루 둘러보았으나 설명해주는 이들이 없었다.

나는 씁쓰레한 마음으로 이곳에서 멀지 않은 홍구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원 이름은 루쉰공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중심 공터가 있는 루쉰의 동상 앞으로 갔다. 이 동상 뒤에는 루쉰의 무덤이 있다. 마침 우리 동포로 루쉰기념관에서 일하는 남기철이란 젊은이를 만나 윤봉길 의사의 거사 장소를 물어봤다. 그는 우리를 루쉰 동상 앞으로 이끌더니 이곳이 바로 거사 장소라고 했다. 이곳 노인들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답답한 가슴을 쓸어안고 동상 앞을 맴돌면서 이곳에 윤봉길 기념관이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중얼거렸다.(훗날 이 꿈은 이루어졌다.)

호텔에는 또 은정덕이란 복무원(종업원)이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조선족으로 이곳 우리 동포의 사정을 잘 안다고 소개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날 그의 어머니 조성희 여사가 우리의 부탁으로 찾아왔다. 서울 말씨를 그대로 쓰고 있는 그는 우리의 부탁대로 홍구공원 가까이에 있는 곳, 곧 중주로에 있는 인성학교(중주로 소학교)를 안내해주었다. 조 여사가 잘 아는 중국 여인인 양영진 선생은 이 학교 교사로 20여년을 근무했는데 지금도 학교 옆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학교는 1913년 박은식 등이 박달학원이란 이름으로 개교를 한 뒤 18년 인성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바로 우리 동포들이 세운 초중등 교육기관으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 두 분의 말을 듣건대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뒤 북한 인사들이 와서 교민교육기관으로 삼았다가 경영난으로 79년 문을 닫았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다음에는 황포강으로 나갔다. 황포강은 상하이의 상징이다. 한강과는 달리 바로 도시 중심가를 가로질러 있어서 여객선이 무수하게 드나든다. 왜 이곳을 찾았던가? 나는 상하이 객운총참으로 나왔다. 예전에는 이곳을 ‘황포탄 홍구 공공부두’라 불렀다. 이곳은 육지로는 중경과 한구, 바다로는 청도와 대련으로 이어주는 여객선이 출발하는 곳이다.

‘임시정부 시절, 상하이에 머물고 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은 22년 3월 일본 육군대장으로 중국에 있는 일본군의 최고 지휘자인 다나카 기이치가 상하이에 온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김은 단원인 김익상·오성륜·이종암을 부두 세 군데에 배치해 다나카를 저격하게 했다. 3월28일 오후 다나카가 탄 윤선이 닿자 환영객들이 몰려들었고 틈을 엿보아 세 사람이 권총을 차례로 쏘았으나 앞을 지나던 영국 여인만 애꿎게 총을 맞고 죽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오성륜은 곧 탈옥했고 김익상은 16년 옥고를 치르고 귀국한 뒤 실종됐다. 이 사건으로 해서 의열단은 명성을 얻었으나 일제는 그 조직을 탐지하게 됐다.’

68년 전 바로 그 현장에서 나는 황포강의 시커먼 물을 바라보면서 한동안 상념에 젖어 있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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