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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베이징서 류리창 거리·옥류관 들르니 ‘민족자취’ 물씬

등록 2011-01-10 09:08

1991년 여름 연길과 백두산 등을 답사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필자 일행은 시내 구경길에 들른 북한 음식점 묘향산주가에서 한복 입은 복무원 아가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필자와 작가 박완서·송우혜씨.
1991년 여름 연길과 백두산 등을 답사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온 필자 일행은 시내 구경길에 들른 북한 음식점 묘향산주가에서 한복 입은 복무원 아가씨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필자와 작가 박완서·송우혜씨.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64
송우혜 선생은 누구보다도 청산리-어랑촌 답사에 열중했다. ‘청산리전투와 홍범도 연구’ 논문 등으로 어느 사학자 못지않은 전문가였던 그는 그때 <월간중앙>에 ‘소설 홍범도’를 연재중이기도 했다. 그러니 바로 그 중심 배경의 현장에 온 순간이 감격스러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연신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실 송 선생의 할아버지는 홍범도 부대에서 활약했던 독립투사였고, 문익환·윤동주와 명동학교 동창으로 요절한 독립지사 송몽규 선생은 그의 당숙이었다.

아무튼 이 답사에서 독립운동사마저 왜곡시키는 참담한 분단 현실을 실감한 우리는 이곳저곳 둘러본 뒤 동행한 황 검사의 안내로 어랑촌 한 마을의 촌장집으로 들어갔다. 안경호 촌장의 집은 5칸쯤 되는 초가였으나 방에는 텔레비전과 재봉틀이 있었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여배우 사진도 걸려 있었다. 촌장네는 점심으로 구수한 된장과 함께 닭을 잡아 백숙으로 내왔다. 연변의 작가인 이화숙을 포함해 세 여성은 젓가락을 대다가 질겨서 뜯어지지 않으니 아예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닭고기를 찢어 먹었고 황 검사도 거들었다. 서울에서는 맛볼 수 없는 토종 닭고기를 포식한 셈이었다. 떠나올 때 촌장에게 슬쩍 중국돈 100위안 한 장을 주머니에 넣어주니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풍족한 후대를 사는 우리는 독립군 선열 덕분에 이렇게 즐기고 있지 않은가?

백두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평생 처음 권총을 쏘아보았다. 권총을 지니고 다니는 두 검사가 으슥한 곳에서 우리에게 독립군을 연상하면서 권총을 쏘아보라고 권했던 것이다. 군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첫 경험이기도 했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은 1년 전과 다름이 없으나 도로는 많이 정비되어 있었다. 나는 또한번 맑은 날에 천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는 검사들의 안내로 장백산 임업국 언저리에 있는 아림빈관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가 차지한 방은 중국의 거물급 정치인인 후야오방(호요방)이 잤던 귀빈실이었다. ‘빽’(배경)이 통한 환대였던 셈이다. 다음날에는 장백산자연박물관을 돌아보고 호골주를 선사받았다. 그 무렵 백두산에는 호랑이가 대여섯 마리 살고 있는데 근래에 한 마리가 죽어서 뼈로 술을 담갔다고 한다. 호랑이술이 보약이란 말은 접어두고 이것도 극진한 환대였다. 여기에서도 검사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베이징으로 돌아오니 북한과 출판 관련 사업을 하려고 머물고 있던 여강출판사의 이순동 사장과 한국선 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베이징호텔에 숙소를 정했는데 오래된 이 호텔에 머물면서 독립투사들의 고통을 느껴보고픈 심정도 내심 깔려 있었다. 이 사장의 안내로 베이징 시내 구경에 나서 우리나라 사신들이 드나들면서 중국의 문물을 감상했던 류리창 거리를 살펴보고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북한 음식점에도 가보았다. 또 우리말을 가르치는 중앙민족학원에도 들렀다.

무엇보다 동대로에 있는 북한 음식점인 옥류관이 인상적이었다. 이곳 간판에는 ‘평양냉면’이란 한글 글씨가 큼직하게 쓰여 있었다. 홀 안에는 조선 역사를 담은 대형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불고기·개장국 같은 메뉴를 내놓았다. 나는 냉면을 시켜 먹어 보았고 이 사장은 개장국을 주문했다.

또 한국의 두산그룹에서 경영하는 두산주가, 우리 동포들이 차린 백산술집, 북한 사람이 경영하는 묘향산주가에도 들렀다. 두산주가의 가격은 서울에서 재료를 가져왔다고 하면서 서울과 비슷하게 받아 무척 비싼 편이었다. 씁쓸한 상술이었다.

한국선 선생은 생질인 김명헌을 나의 안내자로 추천했다. 그 무렵 중국은 무척 더운 한여름철인데다 방학이 겹친 관광 성수기였고 또 남부지방에 홍수가 져서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잡했다. 도대체 비행기표, 기차표를 끊는 데 여간 애로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어느덧 박완서·송우혜 두 분은 서울로 먼저 돌아가고 나는 계획대로 중국 서쪽지역 답사에 나서게 됐다. 이미 내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지만 한 곳이라도 더 답사할 욕심에 무리를 거듭했다. 그런 나를 두고 가면서 박 선생이 했던 말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린애를 떼놓고 떠나는 것 같아요.” 그도 그럴 것이 도통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어 찾느라 정신이 없고, 사진기에 찍은 필름을 다시 끼우기 일쑤이고…, 두서없는 내 행동을 내내 지켜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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