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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조선혁명청년연맹’ 광주기의 동참 현장 최초 발길 / 이이화

등록 2011-01-17 10:11수정 2011-01-17 11:00

1927년 반국민당 정부 무장봉기에 참여했다 희생된 조선 청년들을 기려 세워진 광주기의열사능원의 ‘중-조 인민 혈의정’(왼쪽). 당시 조선혁명청년연맹 간부로 참여했던 장지락(김산·오른쪽)은 님 웨일스의 소설 의 실제 인물로 1938년 일본 첩자 등으로 몰려 비밀처형됐다가 83년에야 복권됐다.
1927년 반국민당 정부 무장봉기에 참여했다 희생된 조선 청년들을 기려 세워진 광주기의열사능원의 ‘중-조 인민 혈의정’(왼쪽). 당시 조선혁명청년연맹 간부로 참여했던 장지락(김산·오른쪽)은 님 웨일스의 소설 의 실제 인물로 1938년 일본 첩자 등으로 몰려 비밀처형됐다가 83년에야 복권됐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69
시안에서 진시황릉이나 병마용갱 등을 대충 둘러본 나는 베이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옌안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가평촌을 찾아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곳에는 김원봉 등이 1944년 봄 태항산 지구에서 옮겨가 해방될 때까지 독립군을 양성하던 조선혁명군정학교가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훗날 국회의원 기행팀과 이곳을 답사했다.)

베이징에 돌아와 서둘러 짐을 꾸려 남쪽 광저우(광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20일 넘게 더위를 무릅쓰고 함께 다니던 김명헌과 이별을 하자니 무척 서운했다. 그런데 마지막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 혼자 광저우공항에 내리니 중국어도 영어도 못해 난감했던 것이다. 택시를 타고 쪽지에 갈 곳을 적어 운전기사에게 보이면서 찾고자 하는 곳을 돌아다녔다. 이곳은 외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택시 기사들이 내륙과 달리 친절했다. 일단은 별로 애로가 없는 듯했다. 책이 잔뜩 든 무거운 짐을 공항 앞 보관소에 맡겨서 홀가분했다. 하루 일정으로 몇 군데를 둘러보아야 했다.

나는 먼저 광주기의열사능원을 찾아갔다. 어둑어둑할 무렵이었다. 능원이 얼마나 넓은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안내서를 보아가며 ‘중조인민 혈의정(血誼亭)’을 겨우 찾아냈다. 이 정자 이름은 ‘중국과 조선 인민의 피로 맺어진 우의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라는 뜻이다. 정자 안에는 섭검영(예젠잉)이 쓴 글씨를 새긴 돌비가 서있었다. 돌비 앞쪽에는 ‘중국과 조선 두 나라 인민이 싸움으로 맺은 우의는 길이 빛나리라’라고 쓰였고 뒤쪽에는 ‘1927년 12월11일 광저우의 노동자와 혁명전사들이 장제스가 이끄는 반동정부에 맞서 무장봉기를 단행했으며 끝내 많은 희생자를 냈는데 조선의 청년 150여명도 열렬히 참여했으며 광주기의에 참여해 희생당한 조선의 동지들은 길이길이 살아 불멸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또 언덕 위에 있는 섭검영의 묘에 가니 석판에 ‘조선 등 국제 전우들이 섭검영과 함께 기의에 열렬히 참여했다’고 쓰여 있었다.

섭검영은 바로 광주기의 때 부사령관으로 활동한 인물로 훗날 중국 10대 원수에 올랐다. 그럼 광주기의란 무엇인가? 1925년 이곳에서 출범한 쑨원의 국민당정부는 이듬해 봉건 군벌을 타도하려 북벌(北伐)을 단행했다. 그 서사식(誓師式)에 임시정부 대표로 신규식과 박찬익이 참석했고 신규식의 주선으로 조선 청년들이 이곳 중산대학과 황푸군관학교에 다니기도 했는데 1927년에는 800여명을 헤아렸다. 한창 난징·상하이 등지를 점령하던 북벌군의 진군은 장제스의 정변으로 중지됐다. 북벌군에 공산당이 많이 끼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장제스와 갈라진 마오쩌둥 계열은 1927년 12월 광저우 봉기를 일으켰다. 이른바 광둥코뮌 건설, 여기에 조선 청년들도 참여했던 것이다.

이때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의 실존 인물로 이름난 장지락(김산)이 조선혁명청년연맹의 간부로서 중간 지휘자로 활동했다. 봉기군은 국민당 군대에 밀려 3일 만에 철수를 시작했는데 조선 청년들의 피해가 컸고 장지락도 시안으로 도망쳤다. 이 소설은 84년 동녘출판사에서 번역·출간했지만 그때까지 남쪽 정부에서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이 현장을 최초로 답사하고 소략하게나마 기록했다.(<중국역사기행>·웅진출판)

서둘러 공원을 돌아보고 나와 광저우 빈관에 숙소를 정한 뒤 하이주(해주)광장 언저리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서울 음식과 비슷해서 모처럼 잘 먹었다. 주장(주강)강 가에 있는 하이주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지난 일을 돌아보았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빈관으로 돌아오니 두 가지가 걱정스러웠다. 하나는 인민폐를 모두 베이징의 김채옥 여사에게 맡겨놓고 온 까닭에 수중의 모든 화폐 종류를 합해 400달러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 비행기표 예약을 베이징이나 광저우에 오자마자 확인했어야 하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 일은 내일 일이지, 창밖을 내려다보니 주강에 불빛이 환하게 비쳤다. 바로 임시정부 인사들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파리한 몸을 이끌고 충칭(중경)으로 거슬러 올라간 강이다. 그들을 생각하고 있으니 작은 근심들이 사라졌다.


다음날 새벽 일찍 중산대학으로 달려갔으나 방학이어서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황푸군관학교로 가려고 하니 거리가 멀다고 했다. 다시 부리나케 비행장으로 가서 겨우 홍콩 가는 비행기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 앉고 보니 아, 호기심과 탐구욕은 접어두고라도 불안·초조 그리고 피곤이 확 풀려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이 중국 답사로 새 영역을 개척하고 새로운 안목을 열었다고 자부했다.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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