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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동학 농민군’ 역사 살려낸 향토사학자들 / 이이화

등록 2011-01-23 19:46수정 2011-01-25 14:20

동학농민전쟁의 최초 봉기 장소인 전북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말목장터. 말목정 옆에 서 있는 감나무 밑에서 1894년 1월10일 전봉준이 배들평 농민 수천명에게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알리고 관아로 진격했다.(왼쪽) 이 사실을 밝혀낸 향토사학자 최현식 선생(오른쪽).
동학농민전쟁의 최초 봉기 장소인 전북 정읍시 이평면 두지리 말목장터. 말목정 옆에 서 있는 감나무 밑에서 1894년 1월10일 전봉준이 배들평 농민 수천명에게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알리고 관아로 진격했다.(왼쪽) 이 사실을 밝혀낸 향토사학자 최현식 선생(오른쪽).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74
나는 소설만이 아니라 동학을 소재로 한 다른 장르의 작품들도 분석해봤다. 김용옥이 시나리오를 쓰고 임권택이 감독을 맡은 영화 <개벽>(1991년)을 보자. 이 영화는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일대기를 주제로 잡았다. 그러니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1871년 3월10일(1864년 동학 창시자 최시형이 처형당한 날)을 기해 최시형을 설득해 영해봉기를 주도한 이필제를 부정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봉기 당시 이필제가 민가에 불을 지르고 아이가 불타 죽는 장면을 넣었는데, 그때 관변 쪽 기록을 믿더라도 이필제는 민가에 불을 지른 사실이 없었다. 그 반대로 관아의 쌀을 풀어 백성에게 나누어주고 소를 사면서 돈을 주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서 전봉준은 무수한 희생자만을 내고 동학교단 조직을 결딴내는 부정적 인물로 등장한다. 그리해 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최시형의 입에서 “30년의 노력이 헛되었다”를 뇌까리게 만들었다. 그러니 새로운 미래 세상을 만든다는 ‘개벽’은 현실 속에서는 실종되었던 것이다. 또 김용옥이 줄거리를 만든 가극 <천명>도 <개벽>보다는 차별성이 보이고, 농민전쟁도 일부 다루고는 있지만 동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달리 문호근이 연출한 뮤지컬 <금강>은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에서 소재를 빌려 왔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농민 저항을 민중운동의 줄기로 보고 전개해 주목을 받았다. 집강소 활동을 부각시키고 전봉준 등 농민 지도자들의 활약을 비중있게 다뤄서, 동학이란 종교에 매몰되지 않았다.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한편 동학농민전쟁 백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백추위)의 연구원들은 신영우 교수(충북대)와 내 경험을 깃대 삼아서 정기적으로 동학 답사길에 나섰다. 우리가 답사를 마친 지역을 따라 다시 일반 시민을 모집해 역사기행을 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기행문은 <역사비평> 등에 발표했다. 이는 역사 대중화의 밑천이요 현장감을 살리는 지름길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의환 교수(부산대)나 표영삼(천도교 선도사·2008년 작고) 선생은 답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었지만 다른 전공 교수들은 대부분 연구실에 박혀서 사료만 뒤지고 있었다. 책만 파고드는 ‘골방 샌님’들이라 해야 할지, 엄숙한 아카데미즘에 빠져서라고 해야 할지, 어찌 보면 답답한 지경이었다. 우리의 답사길에는 현지의 향토사학자들, 곧 천안의 이원표(작고), 공주의 구상회(작고), 예산의 이상재(작고), 서천의 박수환, 정읍의 최현식, 고창의 이기화, 김제의 최순식(작고), 장흥의 강수의, 진주의 김범수(작고), 예천의 정양수 선생 등이 길잡이를 해주었다. 이분들은 지역 문화원장을 맡아보았거나 지역의 역사현장을 조사한 전문가들이었다.

예산 임성중 교장을 지낸 이상재 선생은 예산·홍성지역 농민군 활동을 연구하면서 태안의 농민군 지도자였던 조석현·문장준의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홍성에 세워진 의총은 의병들의 무덤이 아니라 농민군의 무덤이라고 전거를 들어 설명하면서 분노를 감추치 못했다.

구상회 선생 역시 교육자였는데 공주에서는 예부터 ‘곰’이란 말을 많이 썼다는 전거를 들면서 전봉준이 충청 감영을 점령하려 올라온 고개를 능치(能峙)라고 쓴 관변기록은 웅치(熊峙·곰티)라고 해야 옳다고 일러주었다. 그는 또 농민군들이 감영을 점령하기 위해 곰나루를 건너와서 하고개로 진격하다가 이곳을 지키던 관군에게 몰살이 되었다 한다. 이들 시체를 고개 아래 논에 묻었는데 이후 그 논의 임자가 해마다 원혼을 달래는 굿풀이를 하고 제사를 지냈다고 일러주었다. 구 선생은 젊을 적 신동엽 시인과 친구로 지내며 ‘동학’과 ‘금강’에 대한 많은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최현식 선생은 정읍문화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부터 정읍 일대의 농민군 유적을 찾아 헌신해왔다. 그는 말목장터 옆에 있는 감나무 밑에서 전봉준이 봉기를 선동하는 연설을 했다는 것, 그 아래 배들(이평)과 만석보 앞에서 농민군을 집결시켜 고부관아로 진격했다는 것 등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 특히 전봉준이 조소마을에 살면서 연 서당이 고부봉기 당시 불태워졌는데, 그는 이 서당 복원을 추진해 결실을 맺기도 했다. 또 농민군이 최초로 감영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 황토현 전적지를 찾아내 뒷날 이곳에 위령탑을 세우고 기념관을 건립하게 하는 데 공헌을 했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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