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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길을 찾아서] 형 확정 사건 조사 막는 등 ‘누더기’된 과거사법 / 이이화

등록 2011-03-13 20:32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된 뒤 2005년 9월 범국민위와 전국유족협의회 회원들이 ‘1945~2005 과거청산 전진대회’를 열고 희생자 위령과 과거사법의 독소조항 개정을 촉구하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둘째가 필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통과된 뒤 2005년 9월 범국민위와 전국유족협의회 회원들이 ‘1945~2005 과거청산 전진대회’를 열고 희생자 위령과 과거사법의 독소조항 개정을 촉구하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 둘째가 필자.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07
2005년 5월3일 통과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과거사법)은 그 취지를 이렇게 밝혀두고 있다. ‘1945년 8월15일부터 권위주의적 통치에 이르기까지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공권력의 행사 등으로 왜곡·은폐된 진실을 밝혀내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의 화해와 통합을 이룩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이 과거사법은 한나라당의 완강한 물타기로 인해 사실상 누더기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법에 규정된 진실규명의 범위는 ‘8·15 이후부터 6·25전쟁 전후의 시기에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 8·15 이후 권위주의 통치 하에서 헌정질서 파괴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해 발생한 사망·상해·실종사건과 기타 중대한 인권침해사건과 조작의혹사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 위원회가 진실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건’ 등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항목에서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 조사, 기결 사건의 재심 불허, 피조사자의 제재 불허’ 같은 독소조항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우선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을 살펴보자. 학살을 자행한 자는 경찰·군인·우익 청년·미군들이었다. 민간인 피학살자는 어린이·노인·여성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고 일부는 반정부 활동이나 좌익운동을 했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었다. 물론 당시 좌우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한 상황에서 남로당 또는 사회주의 사상을 지닌 인사들도 포함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순박한 무지렁이 농사꾼과 여성과 어린이들은 오로지 ‘빨치산’ 출몰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학살당한 피해자였던 것이요, 재소자들과 보도연맹원들은 경찰과 국군이 후퇴하면서 불법으로 집단학살을 해버린 것이었다. 빨치산 출몰 지역은 이 땅의 ‘킬링 필드’였으니, 이데올로기나 정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였다.

특히 진상조사 대상으로 정한 사건의 범위에 ‘미묘한 함정’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의 진보당 조봉암 사형과 같은 정치적 사건, <민족일보> 조용수 사형, 통혁당·인혁당 집단사형 등 박정희 정권의 간첩조작 사건,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에 의한 테러·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도 대상에 포함됐다.

특히 한나라당은 유신 시절 자행된 정치적 음모사건을 은폐·희석시키고자 기결 사건의 재심을 막고, 조사 피의자에 대한 강제규정을 삭제하자는 따위의 ‘흥정’을 벌여 성공을 거두었다.

결정권을 쥔 조사위원들이 이 독소조항을 이용해 얼마든지 진실과 진상의 본질을 왜곡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무튼 과거사법은 얼핏 보면 아주 복잡한 듯하다. 하지만 그 해답은 아주 단순하다.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여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오랜 세월 쌓인 원한과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화해와 통합을 이룩해 미래 사회를 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폭력으로 자행된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처벌 문제는 2차대전 이후 세계적인 쟁점으로 떠올라 한 나라나 사회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한국전쟁 전후 국군·경찰·미군 등에 의해 100만여명이 불법 학살된 사건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민간인 희생 사례이지만, 반세기가 넘도록 ‘빨갱이’란 누명을 벗기는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 않은 것이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이이화
그런데도 기득권을 누려온 가해자 집단인 한나라당과 역대 독재정권에 빌붙어 이익을 챙겨온 극우·보수 언론들은 끊임없이 과거사 입법으로 사회를 분열시키고 예산의 낭비를 가져와 민생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선동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인 2005년 9월7일 범국민위는 서울 종각 건너편에서 16년 동안 고집스럽게 머리를 길러온 문경유족회장 채의진 선생의 삭발식을 진행했다. 이어 종각에서 종로3가까지 거리행진을 하면서 과거청산 전진대회를 벌였다. 채 선생은 해원(解寃)을 하지 않으면 결코 머리를 깎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져왔는데 ‘과거사법 제정’으로 일단 한풀이의 시작은 가능해졌으니 이제 그만 머리를 깎으라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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