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31일 일본 도쿄 와세다봉사원에서 열린 ‘과거청산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1·31 집회’에서 필자가 국치 100년 사업 공동추진위원장으로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가 공식 발족했다.
이이화-민중사 헤쳐온 야인 119
1910년 8월은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달이다. 그 100돌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다시 기억을 살리고 현재의 고리를 풀고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과거는 기억해야 한다. 기억을 상실하면 고난의 민족사가 존재할 수 없으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피해자나 관련 시민단체와 학술단체들이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공식 책임을 외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식민지 과거사와 침략전쟁을 미화함으로써 과거사 갈등이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한-일 과거사 청산 관련 활동 또한 개별·분산적으로 진행됨으로써,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전체적으로 아울러 해결할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나 1923년 관동(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 등등 개별 사안이 손가락, 즉 각론에 해당된다면, 이러한 문제의 근본은 손목, 즉 식민지 문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실제 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해온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없는 것과 한국인의 태평양전쟁 피해가 모두 식민지라는 조건에서 비롯되었으며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010년을 앞두고 각 단체 또는 개별 사안별로 진행되고 있는 한-일 과거사 현안을 함께 점검하고 공동실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동사업기구를 조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형성되었다.
그 결과 2009년 4월25일 한-일 과거사 청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시민단체와 관련 피해자 단체 그리고 민족운동 단체 및 학술연구 단체 등 46개 단체가 모여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 사업 공동추진위원회’(백추위)를 발족했다. 내가 위원장을 맡았다. 백추위는 창립선언문에서 “식민지 과거의 실상을 해명하고 원칙 있는 청산을 통해” “2010년을 국치 100년의 부끄러운 역사만을 되새김하는 자리가 아니라, 민족 억압과 차별 그리고 침략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동아시아 세계를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원년”으로 삼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향림교회에서 열린 이 창립대회에는 단체 대표와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관심은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한-일 과거사 관련 단체는 물론 다양한 시민운동단체와 학계가 공동으로 이런 기구를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조강연을 맡은 이만열 교수는 나라가 망한 과정과 식민지 시기와 해방 뒤의 여러 문제를 짚어주었다.
백추위는 2010년 3월부터 두 나라의 시민활동가들이 함께 과거사를 현안별로 그 실상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방안을 짚어보는 특집기획을 공동주관사인 <경향신문>에 연재했다. 또 8월 첫주와 둘쨋주 토요일에는 서울의 주요 국치현장(남산, 정동, 서대문형무소 일대)을 돌아보는 ‘국치 100년 역사현장 답사’를 했다. 약 11일간의 여정으로 40여명이 시민들이 일본열도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식민지 피해상과 그 아물지 않은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일본 역사기행’을 했다. 특히 8월12일부터 9월30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강제병합 100년 특별기획전시회-거대한 감옥, 식민지에 살다’를 열어 일제 식민지배의 실상과 상흔을 생생한 유물을 통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관람인원은 14만명이 넘었다.
한편 백추위는 올바른 역사청산은 식민지 범죄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각종 배·보상 문제의 조속한 해결이 되어야 하므로 두 나라 정부와 의회 그리고 한·일·재일 시민단체 간의 긴밀한 공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과거사 청산을 위한 한-일 공동행동기구를 결성할 것을 일본 시민단체에 제안했다.
일본의 시민단체들도 그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이에 호응해 2010년 1월31일 도쿄 와세다봉사원 스콧홀에서 250여명의 일본 시민단체·재일동포 관계자들이 모여 ‘과거청산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1·31 집회’를 열고, 한-일 과거사의 근본 해결을 위해 일본 시민단체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는 한편, 한국의 시민단체와 연대해 공동행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그 기구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일본실행위원회’를 공식 발족했다.(현재 일본의 36개 단체 참가) 나는 한국쪽 대표로서 이 대회 인사말을 통해 반성과 평화와 미래의 우호를 강조했다. 역사학자
이이화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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