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 바람이 한 사내를 실어 왔다. 굳이 호명하지 않았다면 나타나야 할 이유도 별반 없었다. 하지만 막상 등장하자 아주 멀리서부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 쓸쓸히 창가에 앉아 꺼져가는 불빛을 바라보면은 어디선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한잔의 추억·1972) 아마도 그 소리의 진원지는 40년 전쯤부터일 것이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일탈적 아이콘이었던 싱어송라이터 이장희(64)씨가 30년 만에 노래 한 곡을 발표한다. 지인의 강권으로 출연한 티브이 연예프로그램에 이어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세시봉 콘서트’에 찬조출연한 게 계기였다. 공식적으로 컴백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나이로 보나 오랜 공백기로 보나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그가 다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또한 없다. 인터뷰는 그가 자청했다. 자신이 최근 지은 노래 <울릉도는 나의 천국>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의 명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1973), <안녕>(1979) 등과 최근 방송에서 불러 화제가 된 <내 나이 60하고 하나일 때>를 함께 수록한 시디 음반을 5월 말~6월 초에 낼 것이라고 한다. 가을께엔 티브이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새 가요를 작곡해 발표하면 완벽한 컴백이 될 것이다. 인터뷰는 그의 열렬한 팬이 연습 장소로 제공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지난 10일 있었다.
-<울릉도는 나의 천국>은 어떻게 발표하게 됐나?
“방송을 본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울릉도를 노래로 표현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그 후 만나는 울릉도 분들마다 그 노래 언제 나오냐고 물어왔다. 그냥 있어서는 도리가 아니다 싶었다.”
-노래는 얼마 만에 하는 건가?
“제대로 노래 연습 해보는 게 한 30년쯤 되는 것 같다.”
-이제 음악활동을 새로 시작하는 건가?
“글쎄, 이미 시작된 거 아닌가?(웃음) 요즘 매일 한시간씩 기타 연습을 하는데, 꼭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가수로서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고나 할까?”
1947년생인 이장희는 우리나라 싱어송라이터 1세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겸 가수 겸 디제이였다. 1971년 <그 애와 나랑은>으로 가수로 데뷔해 <한잔의 추억>(1972), <그건 너>(1973)에 이어 불후의 명곡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한 소녀가 울고 있네>(1974)를 잇따라 히트시켰다. 그 무렵 나이든 남자들도 기르지 않은 콧수염, 불량기 넘치는 오토바이, 담배를 꼬나문 건방진 이미지는 그를 일약 청년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