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은 가르침을 받았던 외숙 최창진(오른쪽)·외숙모 김종자(왼쪽)씨 부부의 결혼 사진. 외숙은 1920년대 학생 비밀결사에 가담하는 등 항일운동을 한 독립지사였다. 2002년 남편을 대신해 집안을 꾸려낸 외숙모가 별세했을 때 자손들은 모친의 유지에 따라 모교인 광주 수피아여고에 1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길을 찾아서] 정해숙-아름다운 선생님의 멘토 ⑥
내게 어릴 적부터 많은 가르침과 신뢰를 주셨던 외숙 최창진 선생은 원칙적이고 철저한 분이었다. 또 나라의 미래와 자주독립을 걱정하며 실천하신 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외숙이 들려주신 1926년 광주고등보통학교 4학년(당시 6년제) 체육대회 때의 일화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여러 종목의 경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마라톤이 치러진 뒤 체육대회 마무리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교장 선생님이 수고했다는 마무리 말씀을 하던 중 한 선수가 운동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 학생은 학생들 대열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마라톤 코스의 마지막 구간인 운동장을 한 바퀴 다 돈 뒤 도착점까지 가고 나서야 대열로 들어왔다. 일본인이었던 교장은 그 학생을 단상으로 올라오도록 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운동하는 자세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학생이 바로 외숙이었다.’ 그때는 이야기 재미에 빠져 몸도 건강하고 유도도 잘하셨던 외숙이 왜 그렇게 꼴찌로 들어왔는지를 묻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외숙은 원칙적인 성격 그대로 개성을 발휘하신 것이다.
외숙은 바로 그때 갑반 반장으로서 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하셨다. 성진회는 그해 결성돼 일제의 교육적 차별과 식민지배 모순 극복, 민족해방을 위한 활동을 벌이며 광주지역 학생운동을 주도했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 28년에는 광주고보 맹휴(동맹휴학)를 전개했는데 외숙은 맹휴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퇴학은 물론 구속을 당했다. 그렇게 20년대 중반부터 꿈틀대던 학생 독립운동은 29년 10월30일 광주와 나주 사이 통학열차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 사건을 발단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당시에는 일단 체포된 사람은 형을 받기 이전부터 교도소에서 법정(그때는 재판소라 했다)으로 끌려나올 때 머리에 용수를 씌웠다고 한다. 외숙이 재판을 받던 때가 하필 추운 겨울철이었는데 외할머니는 아들을 멀리서나마 보기 위해 매서운 추위에도 아침 일찍부터 재판소 앞에서 기다리셨다. 지금의 광주 가톨릭센터 일대가 당시 재판소였다. 그때 기다리다가 발이 얼어 발가락에 동상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외할머니는 종종 하셨다.
법정에서도 외숙은 재판관의 심문에 당당하고 조리있는 답변을 했고, 당시 일본인 재판관이 ‘조센진 학생이지만 너무 아깝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니, 구체적으로 재판관과 외숙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후 외숙은 풀려나긴 했지만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일본 유학을 가게 됐다. 첫 학교였던 도야마(豊山)중학교에 4학년으로 편입해 다니다 그만두고 다른 학교로 옮겼다. 30년 3월 당시 동아시아 3대 명문고 중 하나로 꼽히고 일본에서도 가장 뛰어난 학생들이 간다는 미토(水戶)고등학교 문과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다. 그러자 먼저 다녔던 도야마중학교에서 자기 학교 출신이 합격했다며 축제를 벌였고, 도쿄에 있던 한국 유학생들도 축하의 뜻으로 돈을 모아 교복을 맞춰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외숙은 그 학교도 중도에 그만둬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배울 것이 없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귀국했단다. 일찍 학생 독립운동을 했던 외숙으로서는 일본 역사와 일본 문화 위주의 교육과정이 성에 찼을 리 없었을 것이다. 유학시절 외숙은 광주고보 선배이자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장재성 선생과 함께 하숙생활을 했다.
외숙은 귀국하자마자 다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등사판으로 복사해 삐라를 뿌리다 일본 형사에게 쫓기기도 하고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단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형사가 일본군 앞잡이가 돼 독립운동가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제시대의 시대상은 소설가 송기숙의 소설 <도깨비 잔치>에 잘 묘사돼 있다.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
전 전교조 위원장/구술정리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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