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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무술은 기백 키우는 것…실력시비는 결격”

등록 2011-08-14 19:32수정 2011-08-15 11:11

전통무예 수벽치기는 검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검술을 단련한다. 육태안 수벽치기 전인의 손끝에서 소박하지만 정제되고 기운 찬 검결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이길우 기획위원 <A href="mailto:nihao@hani.co.kr">nihao@hani.co.kr</A>
전통무예 수벽치기는 검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검술을 단련한다. 육태안 수벽치기 전인의 손끝에서 소박하지만 정제되고 기운 찬 검결이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이길우 기획위원 nihao@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수벽치기’ 전통무예인 육태안
대학 3년때 입문뒤 반 미친사람처럼 몰두
‘맨손 검술’ 제대로 수련하면 다시없는 위력
직접 만든 쌈수건강법은 무예 이용한 체조

지리산 인월마을에 들어선 것은 8월7일이었다. 태풍 무이파가 검은 하늘을 칼질하듯 찢어놓던 저녁이었다. 그 마을에는 육태안(58)이라고 하는 무술의 달인이 10년째 살고 있다. 165㎝ 전후의 단구에 한쪽 다리를 약간 저는 모습이 뜻밖이었다.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처절한 수련을 한 무사가 절대 무공을 겨룬 한판 승부에서 상대방의 목숨과 자신의 한쪽 다리를 바꾼 뒤 홀연히 강호에서 사라졌던 고수라면 무협의 과장일까.

“지리산 자락에서 10년째 살지만 이런 비바람은 처음이네, 허허.” 칼날 같은 손 무술인 수벽치기를 춤처럼 풀어보여 외국 언론으로부터 “번개를 잠재웠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 그의 입에서 천기의 위력에 대한 승복이 흘러나왔다.

“고수도 천둥번개가 무섭군요.” “사람인걸요.” “무술을 하면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나요?” “늘 두려움과의 싸움이죠.”

그의 다리는 공연을 하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 그리되었다고 한다. 전설은 사실 지극히 사실적인 사건에서 비롯한다.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무예계를 떠나려던 좌절의 시간에 우연히 ‘스승’을 만나, “엉겁결에” 수벽치기 전인(傳人)의 길로 들어섰다. 무술가로서는 치명적인 부상과, 비주류라는 배척과, 질시와 오해 속에서 그의 무예는 오히려 더욱 깊어지고 치열해져 갔다.

그가 전통무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다. 그때 이미 합기도와 태권도의 고단자였던 그는 좀더 깊고 강한 무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합기도는 일본에서 온 무술이고, 태권도는 스포츠화하는 과정에서 우리 것이 아닌 요소가 많이 들어간 것에 아쉬움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반동으로 일본이나 중국의 무술보다 훨씬 뛰어난 우리 고유의 무술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환상 같은 것도 생겨났다. 탈춤·판소리·사물놀이 등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1970년대 초반 대학가의 민족주의적 경향도 학생 출신 무술인들을 자극했다.”

-그때 입문하게 된 것이 전통무예인 기천(氣天)이었군요.


“같이 운동을 하던 한 친구가 기천의 세계를 알려줬다. 박대양 사부의 시범을 보고 한눈에 알아봤다. 무술을 익힌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천의 특별하고 강력한 힘에 전율했을 것이다.”

-기천의 어떤 점에 가장 끌렸나?

“젊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실전적인 점이 좋았고, 둘째는 대단히 멋있었다. 태권도나 합기도에서 볼 수 없는 무예의 기품이 넘쳐났다. 도포자락 휘날리며 몸을 날리는 영화 같은 무술의 진경이 바로 저것이다 싶었다.”

기천에 입문한 육태안은 그때부터 우리 전통무예에 반 미친 사람이 되었다. 전통무예의 비전(秘傳)이 있다는 소문이라도 들리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갔다. 대학원에 들어가서도 전공보다는 전통무예의 뿌리 찾기에 더 ‘혈안’이 되어갔다. 결국 공부는 거기까지였다. 육태안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본격적인 전통무예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

-육태안 하면, 전통무술계에서 수벽치기 전인(전수자)으로 유명하다. 수벽치기는 언제부터 하게 되었나?

“수벽치기 전수는 내가 원해서 된 게 아니다. 택견(태껸) 인간문화재 고 신한승(1928~1987) 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당시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불쑥, 당신이 죽고 나면 수벽치기는 육태안이가 계승한다 하는 말씀을 하셨다. 그 자리에 있었던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나는 택견을 직접 사사한 제자가 아니라, 돌아가시기 전 6개월여 동안 병상에서 말로 택견과 수벽치기에 대해 배운 정도였던 사람이다. 선생님이 편찮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예계 후배로서 인사를 간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들으니 선생님도 말이 통하는 젊은 전통무술인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죽음을 예감하고 수벽치기를 전승할 만한 젊은이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얼마 후 신문에 기사가 커다랗게 났다. 신한승 선생의 타계로 맥이 끊길 뻔한 수벽치기 전수자가 육태안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때 나는 공연 도중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로 요양 중에 있었다. 무술인으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터라, 무예계를 떠날 생각까지 하던 중이었는데, 그 기사 한방으로 수벽치기 계승자가 되고 말았다. 아마 그런 신문기사가 나지 않았다면 나와 수벽치기의 인연은 거기서 끝이었을 것이다.”

신문에서 계승자라고 하는데 무술가인 본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었던 육태안은 결국 스승의 유지를 좇아 수벽치기의 체계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수벽치기란?

“<해동죽지>(1921)에 ‘검술에 앞서서 손 쓰는 법이 있는데 옛날에 검으로부터 온 기법이다’라고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맨손 검술을 말한다. 수벽치기에는 두 가지 세계가 있다. 검술을 가르치기 위한 예비단계로서의 손검술 세계가 있고, 검을 다 익힌 후 검을 내려놓고 맨손으로 검을 체현하는 세계가 있다.”

-수벽치기의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수벽8세는 날개 세우기, 한날개 내리기, 두날개 내리기, 날개 들기, 날개 내기, 날개 내리기, 날개 접기, 손뼉치기의 여덟 형이 있다. 수벽, 손날, 반날, 줌, 고드기, 잽이, 쏘기, 찍기 등은 수벽8법이라고 한다. 걸음과 발질을 이용한 공수기술도 따로 있다.”

-손이 칼이 되는 셈인데 위력은?

“제대로 수련하면 다시없는 살수(殺手)다.”

-수벽치기를 수련했는데, 스스로 평가하는 완성도는?

“어려운 질문이다. 동작의 의미와 철학을 말로 하는 것과 실제로 몸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수련의 정도에 따라 실제 능력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무술로서 수벽치기의 본질 파악에 주력했다. 기능적인 측면은 그다음이다. 지리산 생활 10년을 포함해 지난 20여년 동안 해온 일인데, 이제는 얼추 세상에 내놓을 만큼은 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1998년 프랑스 아비뇽 연극축제 한국주간 행사 때 수벽치기를 공연했다. 그때 <르몽드>가 1면에 그 공연을 다뤘다.

“그때 기사 내용이 ‘자신의 무술인 수벽치기를 춤으로 풀어 보였다’고 했다. 평가는 고맙지만, 나는 춤을 춘 적이 없다. 무예는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춤추는 듯이 보이지만, 춤이 경지에 이른다고 해서 무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택견과 수벽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니 비슷한 것인가?

“꼭 그렇진 않지만 불가분의 관계인 것은 틀림없다. 수벽에서 발질 부분이 분화 발전한 것이 택견이다. 선생님은 생전에 수벽치기가 세상에 먼저 알려졌다면 택견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만큼 택견과 수벽치기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택견이 태권도의 원류 격으로 이해되면서 한때 태권도계의 견제가 심했다고 들었다.

“한동안 무술계에서 전통무예는 독립운동하는 거나 비슷했다. 오죽하면 신한승 선생님이 절대 잘난 척하지 말라, 나서지 말라, 이상하다 싶으면 외국으로라도 도망쳐라, 살아남아야 맥을 잇는다, 그랬겠는가. 그러나 지금은 해방된 것과 비슷하다. 적어도 태권도 사범들이 태권도는 전통무예가 아니다, 택견이나 수벽치기 같은 것이 전통무예라고 가르칠 정도는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뒤의 변화다.”

-태권도가 더욱 세계화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리 고유의 무예 세계를 통섭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던데.

“그렇다. 태권도공원을 계획할 당시에 전통과 철학에 대한 재정립이 구체화되었어야 했다고 본다. 태권도는 이제 대한민국의 국가 브랜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전통무예와 경쟁할 이유가 없다. 태권도의 깃발 아래 원류 격인 택견과 수벽치기, 기천 같은 전통무예가 뒤를 받치게 해야 한다. 전통무예의 정신과 결합해야, 대한민국 태권도의 정체성과 철학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 외국 나가 있는 사범들이 오히려 이런 얘기의 절실함을 이해한다. 한복 자락 휘날리면서 태권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수벽치기가 무형문화재 등재를 놓고 택견계와 경쟁관계라고 들었다.

“같은 뿌리의 두 종목이 서로 다투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나는 2년쯤 전에 인간문화재가 되는 꿈을 접었다. 개인적으로는 택견 쪽에서 먼저 하고, 다음 대에는 우리가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택견계에 전하기도 했다. 선생님도 택견과 수벽치기가 잘 협조해서 두 종목이 다 문화재가 되도록 하라고 유언하신 바 있으셨다.”

-호기심 차원의 질문인데, 무술가들이 실제로 맞붙는 경우가 많은가?

“호구도 없이 맞붙은 적이 제법 있었다. 다 젊을 때 얘기다.”

-승패는?

“나는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태권도 정체성, 전통무예와 결합해야 풍성
택견과 수벽치기 다투지 말고 잘 협조했으면
동양무예는 나이 들어가면서 깊어지는 세계

-다들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나는 몸이 매우 빨라서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도복 싸들고 도전해 오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는데, 각서부터 쓰고 붙자고 하면, 대부분 엉뚱한 핑계를 대다가 그냥 간다. 1~2명이 실제로 대련에 나서는데 이런 친구들은 나중에 다시 배우러 온다.”

-실전에서 맞붙을 때 기분은 어떤가?

“막상 도복 갈아입고 마주서면 대부분은 서로 움직이지 못한다. 상대가 무슨 기술을 가졌는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3분 이상 그렇게 서 있는 사람을 못 봤다. 그러나 무예를 가지고 그런 식의 겨루기는 옳지 않다. 무예는 무사의 자신감과 기백을 키우는 것이지, 시비에 쓰는 건 격에 맞지 않는다.”

-당신이 개발한 쌈수건강법을 설명하면?

“쌈수는 말 그대로 싸움수이다. 그중에서도 주로 공격기술을 말한다. 아주 실전적 기술이다. 내가 그동안 익혀온 무예 중 핵심적 싸움기술을 가지고 보통사람들이 집이나 사무실, 환자 같으면 병실에서 할 수 있는 체조를 만들었다. 비유하자면 원자폭탄을 가지고 원자로를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아주 빠르고 강력한 공격수를 부드럽고 천천히 해서 필요한 신체 부분을 운동하는 거다. 무예를 이용한 체조이다 보니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한 동작 한 동작에 의미와 철학이 담겨 있다. 그걸 음미하면서 하는 것이니 전통과 문화가 함께 있는 건강법이다.”

-무예란 무엇인가?

“몸의 단련을 통한 정신 수양이다. 특히 전통무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얼을 계승하는 몸 수련이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서양의 스포츠는 기능 위주다. 그렇다 보니 나이 들어 육체적 기능이 떨어지면 못하게 된다. 그러나 동양의 무예는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고 더 잘할 수 있는 세계다. 춤을 봐라. 60~70대 춤꾼이 더 잘 춘다. 소리도 그렇지 않은가? 원숙함이 빚어내는 경지가 따로 있다. 무예가 그렇다. 나 역시 요즘 수벽치기에서 젊어서 알지 못했던 어떤 깊이와 힘을 발견하기도 한다. 중국의 태극권이 서구인에게 어필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단순히 직선적인 쇠퇴의 방향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다. 연륜과 함께 새롭게 솟아나는 생장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 그것이 무예의 또다른 세계다.”

육태안(오른쪽)씨가 자신의 무예 계승자인 아들 육장근씨와 수벽치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육태안(오른쪽)씨가 자신의 무예 계승자인 아들 육장근씨와 수벽치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육태안은 누구 수벽치기 계승자로 발탁…공연예술 접목

1953년생으로 중앙고, 고려대 임학과를 나왔다. 유난히 허약한 몸을 단련하고 “최소한 무방비로 얻어맞는 일은 다시는 없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무술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합기도 9단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74년 우리 고유 무술인 기천에 매료돼 전통무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사부’ 박대양의 지도 아래 초기 기천의 체계를 세우고 대중화를 이끈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1987년 타계한 택견 인간문화재 신한승으로부터 택견과 쌍벽을 이루는 우리나라 전통무예인 수벽치기 계승자로 ‘발탁’되었다. 신한승에게서 직접 택견을 배우지 않은 30대 초반의 기천 수련인인 그가 수벽치기 후계자가 된 것은 당시 택견을 비롯한 전통무예계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신한승은 수벽치기를 무형문화재로 만드는 일을 자신의 마지막 사명으로 여겼으나, 대장암에 걸려 뜻을 다 펴지 못했다.

육태안은 전통무술가로서 공연예술에 우리 고유의 몸짓과 동작을 가미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1987년 극단 미추의 창단 작품 <지킴이>(정복근 작, 권오일 연출)를 시작으로 지난해 안중근 서거 100년 기념작 <나는 너다>(정복근 작, 윤석화 연출)에 이르기까지 20여편의 연극과 무용 공연에 참여했다. 1998년 프랑스 아비뇽 축제 한국주간 행사에서 수벽치기를 공연해 <르몽드>의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2001년 지리산 인월마을에 은거하며 기천 수련과 수벽치기의 체계화에 몰두했다. 아들 육장근(30)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통무예인 기천과 수벽치기를 수련중이다. 두 부자는 우리 전통무예의 공격기법을 응용한 쌈수건강법이란 수련법을 개발해 본격적인 보급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 ‘육태안의 우리무예’에서 육태안류 기천과 수벽치기, 쌈수건강법 등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얻을 수 있다. 8월 말에는 서울에서 도장도 연다. 지리산 속에서 전통무예의 옹달샘을 지키며 10년을 웅크리고 있던 은류(隱流)가 바야흐로 다시 세상으로 나오려는 형국이다.

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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