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트푸어 양산하는 사회
(상) 월세에 저당잡힌 사회초년생의 꿈
(상) 월세에 저당잡힌 사회초년생의 꿈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신아무개(29)씨는 ‘월세 내는 날’만 돌아오면 숨이 막힌다. 신씨가 월급에서 세금 등을 떼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만원 정도다. 신씨는 현재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65만원과 관리비 5만원을 내고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7평짜리 원룸에 산다. 몸을 누일 이 작은 공간을 위해 신씨는 다달이 버는 돈의 절반 가까이를 쏟아붓는 셈이다.
충북 청주에 있는 사립대를 나온 그는 지난해 12월 ‘살인적인 취업경쟁’을 뚫고 서울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창창한 미래를 꿈꿨다. 비록 중소기업이지만 열심히 일하면 집도 사고 결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살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신씨는 ‘불안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이 있는 강남구 쪽 부동산 10여곳을 돌아다니며 전셋집을 알아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세, 특히 원룸 전세는 씨가 말랐다”는 말뿐이었다. 애초 예산인 월세 40만원 정도에 구할 수 있는 집은 반지하뿐이었다. 결국 신씨는 70만원을 요구한 집주인에게 애걸하다시피 해 5만원을 깎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계약했다. 보증금 1천만원은 아버지가 융통해줬다.
월세(관리비 포함) 70만원에 식비와 교통비를 포함한 생활비 40만원, 휴대전화 요금 5만5천원, 보험료 4만원, 인터넷·전기·가스 요금 등 공과금 10만원을 빼고 나면 월급에서 남는 돈은 늘 20만원이 채 안 됐다. 신씨는 씀씀이를 줄이기 위해 9년 동안 피웠던 담배를 끊고, 술자리도 가급적 피했다. 그렇게 7개월 동안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현재 그의 통장 잔고는 70만4830원이다. 신씨는 “여자친구가 1~2년 안에 결혼을 하자고 하는데, 무슨 수로 돈을 모아 결혼을 하겠느냐”며 “월세 내기도 버거운 마당에 앞으로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일을 생각하니 아득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전월세 대란의 여파로 ‘렌트푸어’(Rent Poor)가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저금리 탓에 주택 임대시장에서 원룸 등을 중심으로 월세가 빠르게 늘고 월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신씨 같은 저임금의 사회초년생들이 렌트푸어로 전락하고 있다. 렌트푸어란 과도하게 빚을 내 집을 샀다가 집값 하락과 원리금 상환 부담에 허덕이는 사람을 뜻하는 ‘하우스푸어’(House Poor)에 빗댄 말로, 치솟는 주택 임대비용을 감당하는 데 소득의 상당액을 지출해야 해 저축 여력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는 손아무개(25)씨는 최근 인터넷 전월세 직거래 카페에 ‘동거인’을 구하는 글을 올렸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인데, 혼자서는 도저히 월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보증금 집을 구하는 사람을 찾아 월세 60만원 가운데 35만원 정도를 부담시킬 생각이다. 손씨는 “동거인을 구하지 못하면 고시원으로 옮길 작정”이라고 말했다.
렌트푸어의 길에 한 번 들어서면 빠져나올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학원강사를 하는 윤아무개(28)씨는 렌트푸어의 수렁에 빠진 전형적인 사례다. 작은 보습학원에서 사회과목을 가르치며 100만원 남짓 월급을 받는 윤씨는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55만원짜리 방 두개에 대학생 남동생과 함께 산다. 그는 “처음엔 보증금 2천만원 월세 35만원에 계약을 했는데, 2년 뒤 계약 갱신 때 집주인이 ‘보증금 2천만원을 더 내거나 월세를 20만원 올려달라’고 했다”며 “2년 동안 뼈빠지게 일했지만 2천만원은커녕 500만원도 못 모아서 결국 월세를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월세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오름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돼 젊은 렌트푸어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년동월 대비 월세 가격은 올해 들어 8개월 연속 상승했고, 특히 지난달에는 상승률이 3.0%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전월세대책이란 것은 고작 투기로 집을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월세 매물을 내놓으면 세제혜택을 주는 식이니 앞으로도 렌트푸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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