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낮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 앞 거리 벽에 월세나 하숙 등 방이나 집을 세놓는다는 알림 종이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렌트푸어 양산하는 사회
(상) 월세에 저당잡힌 사회초년생의 꿈
(상) 월세에 저당잡힌 사회초년생의 꿈
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를 보증금 1억7천만원에 전세 놓고 있는 박아무개(60)씨는 올해 봄 전세 만기가 되자 살고 있던 세입자에게 “임대계약을 보증금 1억원에 월세 80만원인 반전세(보증부 월세)로 바꾸겠다”고 통보했다. 세입자는 “그렇게 높은 월세는 감당할 수 없다”며 이사를 갔지만, 전월세난이 워낙 심각해서 그런지 새 세입자는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구해졌다. 박씨는 “2년 새 주변 전세 시세가 6천만~8천만원이 뛰어 전세가는 최소 2억3천만원”이라며 “내 딴에는 세입자를 배려해 그나마 시세보다 싸게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시장 세대갈등 치닫나|
전세를 일부 월세로 돌린 박씨의 계산은 단순했다. 2억3천만원을 은행에 맡기면 1년 이자소득(연 4% 기준)이 92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 집을 보증금 1억원에 월세 80만원인 반전세로 전환하면 이자소득 400만원에 월세소득 960만원을 합쳐 1년에 136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세금도 내야 하고 집에 문제가 생기면 수리비도 드는데, 집주인으로서는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박씨처럼 전세보다 반전세나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늘면서 전세 품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실제로 주택 임대형태가 전세에서 월세로 돌아서는 현상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2010년도 주거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반전세(보증부 월세)를 포함한 월세 거주자는 2008년 18.3%에서 2010년 21.4%로 늘었지만, 전세 거주는 같은 기간 22.3%에서 21.7%로 줄었다.
저금리와 은퇴 맞물려
집주인 월세선호 늘어
부동산 활황땐 큰 수익 반전세나 월세 증가 현상의 배경에는 저금리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맞물려 있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집주인들 처지에서는 저금리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받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게다가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 다주택자들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 ‘투기’로 재산을 불렸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택 임대시장에서 젊은층을 희생양으로 삼아 높은 월세 구조를 이끌고 있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다세대 주택 두 채를 갖고 있는 송아무개(56)씨도 이달과 다음달에 각각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할 계획이다. 송씨는 “어차피 노후 대비용으로 사두었던 집이고, 최근 일을 그만둬 다달이 들어오는 고정수입이 필요하다”며 “몇 년 안에 지금 살고 있는 30평형대 아파트도 월세를 놓고 고향인 충남으로 내려갈 생각인데, 그렇게 하면 집을 팔지 않고도 죽을 때까지 먹고는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30대 세입자는 고통
“취업도 가뜩 어려운데
우린 아예 집도 못사나”
하지만 과도한 월세 때문에 고통받는 젊은층은 이런 상황이 억울하기만 하다. 서울 상계동에서 보증금 6천만원에 월세 70만원짜리 반전세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아무개(31)씨는 “솔직히 1가구 2주택자들은 과거 부동산 붐이 일었을 때 이를 이용해 재산을 불린 것 아니냐”며 “가뜩이나 취업난도 심각한 젊은 세대를 착취해 노후를 보장받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회초년생으로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28)씨도 “앞으로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가 자리잡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88만원 세대’는 집 사는 건 아예 포기해야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부동산 활황 시대였던 2000년대 중반까지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더 넓은 평수로 이사 가거나, 추가로 대출을 받아 다른 집을 사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들이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부동산 거품의 불똥이 젊은층에 튀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분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월세전환율 7~12%…예금금리 2~3배
집주인 절대우위에 세입자는 속수무책 최근 전세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반전세’(보증부 월세)는 전세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한 것을 말한다. 서울 강남·북을 막론하고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현재 전세였던 매물 가운데 30% 이상이 반전세나 월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라며 “이런 흐름이 대세는 아니지만, 앞으로 전세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월세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계산할 때 사용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이 위치한 지역, 주변 전세 가격, 아파트냐 오피스텔이냐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현재 월세전환율은 보통 연 7~12% 수준이다. 연 4% 안팎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2~3배에 이르는 셈이어서 세입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특히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서울 신촌이나 홍대 인근 등 대학가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월세전환율이 대부분 연 10%를 넘는다. 예를 들어 전세 1억원짜리 오피스텔은 보증금 2천만~3천만원에 월세 60만~80만원, 전세 8천만원짜리 원룸은 보증금 1천만~2천만원에 월세 50만~70만원에 거래된다. 이처럼 월세전환율이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형성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집주인이 월세를 떼이거나 공실이 생길 가능성 등 모든 위험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집주인들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데다 전월세 대란으로 물량마저 부족한 상황이어서 세입자는 사실상 ‘흥정’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유선희 박태우 기자
집주인 월세선호 늘어
부동산 활황땐 큰 수익 반전세나 월세 증가 현상의 배경에는 저금리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맞물려 있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집주인들 처지에서는 저금리 상황에서 전세 보증금을 받는 것보다 월세를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이다. 게다가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 다주택자들은 안정적인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세 대신 월세를 선호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 부동산 호황기에 ‘투기’로 재산을 불렸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주택 임대시장에서 젊은층을 희생양으로 삼아 높은 월세 구조를 이끌고 있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다세대 주택 두 채를 갖고 있는 송아무개(56)씨도 이달과 다음달에 각각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할 계획이다. 송씨는 “어차피 노후 대비용으로 사두었던 집이고, 최근 일을 그만둬 다달이 들어오는 고정수입이 필요하다”며 “몇 년 안에 지금 살고 있는 30평형대 아파트도 월세를 놓고 고향인 충남으로 내려갈 생각인데, 그렇게 하면 집을 팔지 않고도 죽을 때까지 먹고는 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0~30대 세입자는 고통
“취업도 가뜩 어려운데
우린 아예 집도 못사나”
하지만 과도한 월세 때문에 고통받는 젊은층은 이런 상황이 억울하기만 하다. 서울 상계동에서 보증금 6천만원에 월세 70만원짜리 반전세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아무개(31)씨는 “솔직히 1가구 2주택자들은 과거 부동산 붐이 일었을 때 이를 이용해 재산을 불린 것 아니냐”며 “가뜩이나 취업난도 심각한 젊은 세대를 착취해 노후를 보장받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사회초년생으로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60만원짜리 분리형 원룸에 살고 있는 김아무개(28)씨도 “앞으로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가 자리잡을 것이라는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88만원 세대’는 집 사는 건 아예 포기해야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부동산 활황 시대였던 2000년대 중반까지 베이비부머 세대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면 팔아서 더 넓은 평수로 이사 가거나, 추가로 대출을 받아 다른 집을 사는 방식으로 자본을 축적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들이 집값이 오를 것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부동산 거품의 불똥이 젊은층에 튀고 있는데, 이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분석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월세전환율 7~12%…예금금리 2~3배
집주인 절대우위에 세입자는 속수무책 최근 전세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반전세’(보증부 월세)는 전세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전환한 것을 말한다. 서울 강남·북을 막론하고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현재 전세였던 매물 가운데 30% 이상이 반전세나 월세로 돌아서는 분위기”라며 “이런 흐름이 대세는 아니지만, 앞으로 전세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월세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계산할 때 사용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집이 위치한 지역, 주변 전세 가격, 아파트냐 오피스텔이냐 등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현재 월세전환율은 보통 연 7~12% 수준이다. 연 4% 안팎인 은행 정기예금 금리의 2~3배에 이르는 셈이어서 세입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특히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서울 신촌이나 홍대 인근 등 대학가 원룸이나 오피스텔은 월세전환율이 대부분 연 10%를 넘는다. 예를 들어 전세 1억원짜리 오피스텔은 보증금 2천만~3천만원에 월세 60만~80만원, 전세 8천만원짜리 원룸은 보증금 1천만~2천만원에 월세 50만~70만원에 거래된다. 이처럼 월세전환율이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형성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집주인이 월세를 떼이거나 공실이 생길 가능성 등 모든 위험 부담을 세입자에게 떠넘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소장은 “집주인들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데다 전월세 대란으로 물량마저 부족한 상황이어서 세입자는 사실상 ‘흥정’을 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유선희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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