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길을찾아서] 민가협·노무현·문재인·김재선…조문과 위로의 발길 / 박정기

등록 2012-01-18 19:54

1987년 2월7일 각계 인사 6만명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박종철군 추모대회’가 전국에서 동시에 열리며 6·10 항쟁으로 이어지는 고문 규탄과 민주화 행진이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은 유가족의 대회 참석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사진은 서울 추모대회를 이끈 재야단체를 비롯한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고 경찰과 맞서고 있는 장면.
1987년 2월7일 각계 인사 6만명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한 가운데 ‘박종철군 추모대회’가 전국에서 동시에 열리며 6·10 항쟁으로 이어지는 고문 규탄과 민주화 행진이 시작됐다. 전두환 정권은 유가족의 대회 참석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사진은 서울 추모대회를 이끈 재야단체를 비롯한 시위대가 명동성당으로 진입하려고 경찰과 맞서고 있는 장면.
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33
아내 정차순은 신문을 읽으며 비로소 아들 철이(박종철)의 죽음이 단순히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박정기 부부는 아들에 관한 기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1987년 1월19일치부터 ‘고문 사라져야 한다-추방 캠페인’ 기획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하며 고문 문제를 여론화하고 있었다.

정차순은 아들의 숨결이 닿은 물건들을 만지고 끌어안으며 주저앉곤 했다. 아들의 손때 묻은 작은 물건들 하나하나가 가슴에 사무쳤다. 밖을 떠돌다 귀가하면 맨 먼저 아들이 썼던 방 문을 열었다. 문고리를 잡을 때마다 문 너머 조그만 방에서 어미를 뒤돌아보며 아들이 생긋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엄마!” 하고 부르며 와락 자신을 끌어안을 것 같았다. 아들이 없는 방을 확인한 어머니는 매번 방바닥에 무너졌다.

“철아, 철아. 이놈의 자슥아!”

목멘 그 소리를 들으며 박정기는 눈물을 훔쳤고, 다시 문밖을 나섰고, 아무 버스나 잡아탔다. 그는 아내가 얼마나 끔찍하게 막내를 아꼈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신보다 아내가 겪는 고통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는 철이가 그리울 때면 정태춘의 노래 ‘떠나가는 배’를 홀로 불렀다. 아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였다. 아들은 부산에 내려오면 혼자 익힌 기타를 치며 누나와 함께 ‘떠나가는 배’를 불렀다. 아들이 부산을 떠난 뒤로는 정태춘·박은옥의 음반 테이프를 찾아 혼자 그 노래를 듣곤 했다.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도 아들의 부재를 견디기 위한 노력이었다. 평소에도 그는 금강경을 읽으며 시름을 잊고 마음을 기대곤 했다. 때론 금강경의 글귀를 빈 노트에 되풀이해 썼다. 금강경에 빠져 있으면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럴 땐 마치 아들이 곁에 있는 듯 느껴졌다.

장례를 치르느라 부산에 내려왔던 맏이 박종부는 며칠 더 머물렀다. 가족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었던 그는 이후로 매주 한두 차례 서울과 부산을 오갔다. 직장생활은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형사들이 회사와 자취방을 감시했고, 그를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박정기를 피했다. 직장 동료들도, 친구들도, 친척들도 하나둘 그에게서 멀어졌다. 가까이하면 어떤 해를 입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2월7일 열린 ‘박종철군 추모대회’ 땐 정부의 방해로 친척들조차 참석할 수 없었다. 가족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다가오는 손길이 있었다. 동네 사람 한 분은 울화병에 녹두즙이 좋다며 가져다주었다. 한달 동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가족들은 녹두즙으로 연명했다. 매일 술에 매달린 박정기가 병을 얻어 누웠을 땐 해동병원 원장이 무료로 건강을 돌봐주고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위로의 전화를 걸어올 때도 있었다.

“아드님은 훌륭한 학생입니다. 우리 민족이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
시민들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었다. 처음엔 낯선 이들의 전화와 방문이 달갑지 않았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부산지부 회장 김광남이 찾아왔을 땐 거두절미하고 돌려보냈다. 더는 복잡한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민가협이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도 몰랐고, 정치 얘기를 들려줬지만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섭섭하게 한 적이 많았다. 나중에 유가협 회장이 되어 자신이 그런 노릇을 할 때에야 그들의 고충을 깨달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민가협 회원들과는 가깝게 지냈다. 회원들 중엔 아들이 활동한 ‘대학문화연구회’의 선배를 자식으로 둔 이도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각별히 가깝게 다가왔다. 박정기는 이들을 통해 철이의 삶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부산지역 재야인사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노무현·문재인·김광일 변호사가 찾아왔다. 그들도 모두 돌려보냈다. 후일 미안함으로 남았다.

영정사진을 모신 사리암으로 조문의 발길이 모여들었다. 서울에서 재야단체 인사들과 아들의 서울대 선후배들이 찾아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온 이들 중 김재선은 잊히지 않는 분이다. 그는 화가였던 선친의 마지막 유작을 들고 찾아왔다. 모란꽃을 그려넣은 그림이었다. 김재선과는 훗날 유가협에서 다시 만났다. 김재선은 유가협 후원회에서 부회장으로 일을 도왔다.

박정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고문/구술작가 송기역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