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판사
[토요판] 리뷰 &프리뷰|다음주의 질문
법관의 근무평정 서류는 두 장이다. 지원장이나 수석부장판사 등이 작성하는 ‘의견서’는 앞면에 판결작성능력·직무수행능력·법률식 등을, 뒷면에 인성·생활·조직적응도·발전전망 등을 서술한다. 리더십이나 동료와의 인간관계, 술이나 골프를 누구와 하는지까지 기술한다. 이를 토대로 법원장이 작성하는 ‘평정서’는 서술형 대신 항목별로 상·중·하로 표기하고, 마지막에 종합평가와 함께 그 사유를 쓴다. 뒷면은 서술형이다.
이의제기·다면평가 없는 통제
쯧쯧쯧 회사원보다도 못하니… 매년 연말 매겨지는 근무평정은 상대평가다. 2005년 이전에는 A 20%, B 30%, C 40%, D 10%로 하고, E는 예외적으로 부여한다는 권고적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엄격하게 적용하진 않아, D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2005년부터 상 20%와 하 10%를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했다. 이를 못 지키면 경위서를 내도록 했다. 평정 결과가 정기인사에 반영되면서, 평가자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그래서 ‘하’는 곧 개업할 판사들에게 몰아버리기도 한다. 또 계량화된 기준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상급심 재판부의 의견까지 평가에 반영한다지만, 객관성을 강조하다 보면 아무래도 사건처리율·종국률·조정률 등 수치를 더 중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사도 실적에 목을 매는 회사원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된다. 사건처리율과 종국률이 몇 등이라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빨리 처리하려고 열심히 도장을 찍게 된다. 수뇌부가 판결 전 조정 성사를 중시할 때는 조정률을 높이려 애쓰게 된다. 그 폐해는 부실한 재판이다. 사건처리 건수에 연연하다 보면 주로 쉬운 사건을 ‘떼게’ 된다. 복잡한 사건은 몇 달씩 미루기도 한다. 기록과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졸속 재판이 되기도 쉽다. 한 변호사는 “최근 결심 뒤 변론재개가 많아졌는데, 새로운 증거 때문이 아니라 판사가 판결문을 쓰다가 ‘어, 이거 안 챙겼네!’라며 뒤늦게 재개한 게 상당수”라고 말했다. 한때는 법관들이 조정을 강압한다는 아우성도 많았다.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증인신청 등으로 재판을 오래 끌게 하는 변호사가 곱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재판 진행이 강압적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잦아진다. 이쯤 되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근무평정을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판사가 일반 회사원보다 못한 대목도 있다. 법관 근무평정에는 이의 제기를 할 장치가 없다. 평정 결과가 일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간의 평정 가운데 최고·최저점을 빼고 재임용 심사를 한다지만, 언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재임용이 안 되더라도 판례상 이를 재판으로 다투기도 어렵다. 법관 근무평정에는 하향평가만 있을 뿐, 다면평가가 없다. 판단과 평가가 판사의 일인데도, 배석판사나 단독판사가 부장판사를 평가하지 못한다. 소송 당사자는 물론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의 평가도 공식적으론 반영되지 않는다. 근무평정이 법관을 옥죄는 일방적 통제장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가카의 빅엿’ 발언의 주인공인 서기호 서울북부지법 판사가 근무평정 불량을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그는 보기 드물게 지난 7년 동안 다섯 차례나 하위 10%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법관 평가에선 지난 4년 동안 최하위권에 든 일이 없다고 한다. 2006~2007년엔 도무지 일을 하지 않았다는 동료의 전언이 있는가 하면, 최근 2년의 실적은 평균 수준이라는 자료도 있다. 그런 사실들이 평정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는 여전히 비공개다.
의혹은 여기서 비롯된다. 근무평정 제도를 온전히 신뢰하기 힘든 터에, 그 결과를 연임심사의 근거로 삼아 비판적 성향의 판사를 퇴출했으니 ‘판사 솎아내기’란 의심을 피할 길 없다. 동료 판사들에겐 나서지 말라는 ‘경고’가 될 수 있다. 그 자체로 법관의 독립에 대한 위협이다. 당장 주말부터 법원 안팎의 반발이 번질 수 있다. 그런 일이 아니라도, 언제까지나 이런 불완전한 제도로 법관을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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쯧쯧쯧 회사원보다도 못하니… 매년 연말 매겨지는 근무평정은 상대평가다. 2005년 이전에는 A 20%, B 30%, C 40%, D 10%로 하고, E는 예외적으로 부여한다는 권고적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엄격하게 적용하진 않아, D도 많지 않았다고 한다. 2005년부터 상 20%와 하 10%를 의무적으로 배정하도록 했다. 이를 못 지키면 경위서를 내도록 했다. 평정 결과가 정기인사에 반영되면서, 평가자들의 부담은 더 커졌다. 그래서 ‘하’는 곧 개업할 판사들에게 몰아버리기도 한다. 또 계량화된 기준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 상급심 재판부의 의견까지 평가에 반영한다지만, 객관성을 강조하다 보면 아무래도 사건처리율·종국률·조정률 등 수치를 더 중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사도 실적에 목을 매는 회사원과 크게 다를 바 없게 된다. 사건처리율과 종국률이 몇 등이라는데 신경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빨리 처리하려고 열심히 도장을 찍게 된다. 수뇌부가 판결 전 조정 성사를 중시할 때는 조정률을 높이려 애쓰게 된다. 그 폐해는 부실한 재판이다. 사건처리 건수에 연연하다 보면 주로 쉬운 사건을 ‘떼게’ 된다. 복잡한 사건은 몇 달씩 미루기도 한다. 기록과 내용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졸속 재판이 되기도 쉽다. 한 변호사는 “최근 결심 뒤 변론재개가 많아졌는데, 새로운 증거 때문이 아니라 판사가 판결문을 쓰다가 ‘어, 이거 안 챙겼네!’라며 뒤늦게 재개한 게 상당수”라고 말했다. 한때는 법관들이 조정을 강압한다는 아우성도 많았다.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증인신청 등으로 재판을 오래 끌게 하는 변호사가 곱게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재판 진행이 강압적이라는 비판도 그래서 잦아진다. 이쯤 되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근무평정을 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판사가 일반 회사원보다 못한 대목도 있다. 법관 근무평정에는 이의 제기를 할 장치가 없다. 평정 결과가 일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10년간의 평정 가운데 최고·최저점을 빼고 재임용 심사를 한다지만, 언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도 공개되지 않는다. 재임용이 안 되더라도 판례상 이를 재판으로 다투기도 어렵다. 법관 근무평정에는 하향평가만 있을 뿐, 다면평가가 없다. 판단과 평가가 판사의 일인데도, 배석판사나 단독판사가 부장판사를 평가하지 못한다. 소송 당사자는 물론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들의 평가도 공식적으론 반영되지 않는다. 근무평정이 법관을 옥죄는 일방적 통제장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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