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상품 아닌 인간으로”…무한경쟁 시대와 ‘맞짱’

등록 2012-02-26 19:22수정 2012-02-26 20:54

20~30대 젊은이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r">viator@hani.co.kr</A>
20~30대 젊은이들이 지난 1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30 고장난 세상을 말하다
⑤ 자기계발의 피로, 탈출 꿈꾸다
성공 위해 경쟁 몰두했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에 눈 떠
청년유니온 조합 등 저항 시작
2000년대 들어 첫 1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한 문화는 자기계발주의였다. “사회가 원하는 상품으로 나 스스로를 계발하자”는 분위기가 대세를 이뤘다. 전국에 아침 일찍 일어나기 열풍을 일으켰던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아침형 인간)과 시간대별 일정을 짜기에 편리하게 만들어진 다이어리 ‘프랭클린 플래너’ 열풍에 계기를 제공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출간된 시점은 모두 2003년 10월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기술’을 알려준다는 심리학 서적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2000년대 후반에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 되자며 인문학 서적이 자기계발서로 인기를 끌었다.

‘성공’을 위한 자기계발서들은 개인에게 국가와 기업이 원하는 충실한 ‘인적 자원’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면화했다. 국가나 기업은 별로 한 일이 없다. 자기 자신을 실력 쌓기에 내모는 개인들의 아귀다툼에서 살아남은 자만 과실로 챙겼다. 성공하지 못한 개인들도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만 물을 뿐, 국가나 기업에 물음을 던지지도, 저항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주변의 실패자들을 끌어안기보다 손가락질하며 “왜 그렇게 사느냐”고 혀를 찼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내몰던 대열에도 조금씩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패나 좌절 앞에 자책하며 우울증에 빠져들던 이들이 조금씩 의문을 품게 된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뭔가 잘못돼 가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그 잘못이 나의 책임만은 아니지 않을까?’ 파편화한 채 자기계발에만 몰두하던 이들 가운데 그런 의구심을 품은 끝에 주변을 돌아보며 연대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 청년유니온 조합원 2년 만에 17배 15살부터 39살 이하의 불안정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 구직자와 일시적 실업자의 연대를 내세우며 2010년 3월 창립된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설립 2년 만에 조합원 수가 29명에서 497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피자 업체들 간에 30분내 배달 결쟁이 시작되면서 배달 노동자들의 사고가 잇따르자 ‘30분 배달제 폐지운동’으로 이들 업체를 무릎 꿇렸다. 커피 전문점들이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실태를 폭로해 미지급 주휴수당 5000만원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주게끔 했다. “구직자는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의 방침에 따라 2년 동안 법외노조로 활동했지만, 끈질긴 소송 끝에 지난 9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구직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근로자’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받아 합법노조로 가는 길도 찾게 됐다.

아귀가 꽉 짜인 채 돌아가는 맷돌과 같은 체제에서 뛰어내리려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런 탈주는 정글과 같은 무한경쟁의 상징인 교육 체제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시도로 시작됐다. 고려대생 김예슬(26)씨가 2010년 4월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나는 오늘 대학을 거부한다”고 선언하며 대학을 자퇴했다. 이어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도 대학 다니기를 거부하고 자퇴를 선언하는 20대가 나왔다. 서열 최상위에 있다고 여겨지는 대학에서만 탈주가 일어난 건 아니다. 입시로 상징되는 대학 진학 자체를 거부하겠다며 만들어진 ‘대학입시 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카페에는 개설된 지 5달 만에 6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성공 위해 경쟁 몰두했지만
노력해도 안되는 현실에 눈 떠
청년유니온 조합 등 저항 시작

자료: 특임장관실 2011년 8월 연구용역 보고서 〈2030 청년세대의 정치의식에 관한 연구〉. 전국 20~30대 1202명 설문조사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우울증 딛고 연대를 갈망하다 <한겨레>가 심층 인터뷰한 2030들 중에서도 맷돌 속에서 몸부림치다 결국 우울증까지 겪고 나서 연대의 손길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경북 구미시의 노동자 고창민(가명·21·남)씨는 지난해 넉 달 이상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 뒤 공단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공장 노동자가 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했다.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서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한 상황에 대해 해결책까지는 아니더라도, 객관적인 분석 같은 걸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만약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정당이 구미에 내려와 ‘청춘콘서트’와 같은 강연회나 설명회를 열면, 시간을 내어 찾아가 볼 생각이 있다고 했다.

구미의 전자부품 업체에서 일하는 김지연(가명·32·여)씨는 20대 때 늘 ‘나 하나만 먹고살면 된다’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런 일엔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주변 사람들과 살림살이를 견주면서 비교우위를 느끼고 싶어했다. 하지만 조금씩 정치를 알아가면서 의구심이 생겼다. “사회는 제게 ‘열심히 해야 성공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해왔죠. 그래서 저만의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를 알게 되고, 회사 파업 사태도 겪으면서 답답하고 억울한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혼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김씨는 파업을 하면서 함께 차가운 바닥에 텐트를 치고 앉아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과의 연대 속에서 사회 구조가 만든 답답함과 억울함을 풀어갔다고 했다.

“젊은층 속박하는 사회구조에
투표로 책임 물어야죠
그래도 안 바뀌면 거리로…”

■ “자기계발서는 내게 배신감을 줬다” 체제로부터의 탈주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자기계발에 피로를 느낀 끝에 구체적인 행동을 계획하면서 대의정치를 넘어 ‘나의 정치’를 꿈꾸는 2030도 있었다. 고민윤(가명·21·여)씨가 <아침형 인간>을 읽은 건 중학생 때인 2004년쯤이었다. 미디어에서 하루를 어떻게 분 단위로 쪼개야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특강이 인기를 끌던 때였다. 모두가 나만 열심히 하면 정당한 대가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처럼 말했다.

고씨는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98년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의 여파로 회사에서 명예퇴직 당한 아빠의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건축공사 안전진단을 하는 개인 사무실을 개업하려고 했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세 딸을 키우느라 쌓아둔 목돈이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매일 돈 문제로 고성을 주고받았다. 어린 고씨는 그때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노력을 주문했다. <아침형 인간>은 그 노력의 ‘교과서’였다.

하지만 <아침형 인간>은 그에게 따뜻한 아침을 열어주지 않았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내신성적을 관리하려고 했지만, 주변 아이들은 고액 과외에다 고액 학원을 다니면서 고씨를 앞서갔다. 고 3때는 학원에 다녔지만, 학원에선 족집게 수업을 한다며 특강을 열고 추가 비용을 요구했다. 형편이 어려운 고씨는 그 특강을 듣지 못했다. 고씨는 결국 서울의 한 전문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지난해 말부터 겨우 한 아이티(IT) 업체에 취업해 한 달에 130만원가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수입이 불규칙한 아버지에게 생활비 50만원을 드리고 대학 학자금 대출금 50만원을 갚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30만원에 불과하다. “‘왜 나는 해도해도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계발서에 배신감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있는 건데, 사회는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나만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요.”

고씨에게 올해 치러질 총선과 대선은 자신을 속박하는 사회 구조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다. “투표로 사회 구조가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투표를 한 뒤 상황을 보려고 합니다.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면, 거리로 나서야겠죠. 시위나 집회도 꼬박 챙겨보고, 투표 이상의 요구를 행동으로 해보려고 합니다.” <끝>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