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들머리에 있는 조형물 ‘서있는 눈’에 청사가 비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노정연씨-불법사찰 ‘온도차’
선거 앞두고 정치개입 나서나 “범죄 혐의의 단서가 나온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 건 검사로서 도리가 아니다.” “고발 들어오면 받아서 처리하면 되지, 뭐….” 둘 다 검사의 말이다. 앞의 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딸 노정연씨의 미국 내 고급 아파트 구입 의혹 사건의 재수사에 대해서이고, 뒤의 말은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재수사 여부에 대한 대답이다. 한쪽은 정치일정에 관계없이 사실관계가 나오는 대로 하나하나 수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밝힌 것이고, 다른 한쪽은 불법사찰의 증거 인멸을 지시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새로운 사실이 재수사의 요건이 되는지부터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며 한 말이다. 온도가 사뭇 다르다. 검사로서의 정의감이나 자세가 다른 탓에 이런 상반된 반응이 나왔을까. 그건 아닌 듯하다. 한국 검찰은 전국에 걸쳐 단일한 위계조직이다. 수장의 의사가 말단에까지 관철된다. 주요 사건의 처리 방향은 수시로 조율한다. 종결된 사건을 재수사하는 문제라면 오죽하겠는가. 2009년과 2010년에 각각 종결된 두 사건의 재수사 여부는 전적으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조직의 뜻’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조직의 뜻’은 때로 앙상하게 드러난다. 불법사찰 사건은 당시에도 살아 있는 권력을 의식한 부실수사라는 의심이 있었다. 검찰의 마뜩잖은 표정은 이로써 설명된다. 노정연 사건에선,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이 ‘13억원이 밀반출됐으니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정도의 사건에 총장의 칼이라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까지 나서야 하느냐고 반문하면, ‘노 전 대통령 사건 기록을 중수부가 갖고 있어서…’라는 대답이 나온다.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사건을 왜 재수사하는 것이냐는 물음에는, ‘가족에 대한 수사까지 종결한 건 아니었다’라고 답한다. 핑계는 그렇게 갈수록 궁색해진다. 법대로라면 그 가족은 기소조차 어려운데 왜 굳이 재수사하느냐고 거듭 물으면, 그제야 ‘검찰의 명예회복’이나 ‘민주통합당의 검찰개혁안’을 거론하며 속내를 드러낸다. ‘노 전 대통령 사건 이후 검찰이 개혁 대상으로 비판을 받아왔으니 이번 기회에 진상을 드러내 명예회복을 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검찰개혁 논의를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결국, 검찰 조직의 벌거벗은 이해타산만 남는다. 재수사의 파장을 걱정했을 내부의 신중론도, 이런 조직 논리로 잠재웠으리라. 그 뜻이 관철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노정연 사건에선 돈을 받은 사람이 국내로 들어와 조사를 받지 않으면 수사 진전이 어렵다. 당장은 그럴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이미 몇몇 보수언론에선 오래된 의혹들이 다시 들춰지고 있다. 덩달아 검찰은 틈틈이 수사 진행 상황을 환기시킨다. 일종의 불쏘시개다. 그런 식으로 어우러지다 보면 언제든 큰불로 번질 수 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끝난 3년 전 잔인한 불장난의 악몽은 모두들 까마득히 잊은 꼴이다.
더 큰 문제는, 검찰이 이제 정치개입을 서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노정연 사건은 총선과 대선의 당락과 정치지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런데도 검찰은 조심은커녕 여봐란듯이 떠들썩하게 수사에 나섰다. 이번 국회의 사법개혁 논의에서 경찰 편을 들었다고 지목받았던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은 때를 맞춘 듯한 검찰 수사로 4월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지난해 청목회 수사도 국회에 대한 검찰 조직의 견제라는 시각이 있다. 검찰이 조직에 유리한 정치지형의 조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의심이 나올 만하다.
검찰의 이런 모습은 정치권력의 주문과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던 얼마 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이제 검찰은 더는 하청조직이라고 하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독점적 기소권과 수사권을 한 손에 쥔, 독점권력이기도 하다. 검찰이 그 힘을 어떻게 쓰는지는 이들 사건의 재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이다. 그냥 지켜볼 일만은 아니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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