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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평소에도 북 잠수함을 다 체크하나요?”

등록 2012-03-30 19:28

2010년 4월 천안함 사건 직후 해병대 장병들이 천안함의 부유물을 찾기 위해 장천포구에서 보트를 타고 침몰 현장으로 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0년 4월 천안함 사건 직후 해병대 장병들이 천안함의 부유물을 찾기 위해 장천포구에서 보트를 타고 침몰 현장으로 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⑥ 조 일병 총기난사 월북사건과 천안함(상)
아아, 나도 꽃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한 세대를 풍미하던 최인호의 소설 첫대목 같다. 그렇다, 26살. 북풍한설 12월의 어느 날, 나는 푸른 군복에 모자에는 반짝반짝 중위 계급장 달고 속초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등에는 아마 더플백도 둘러졌던 것 같다. 겨우 버스만한 아주 작은, 그것도 프로펠러가 양 날개에 달린 덜덜이 비행기였던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니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 보는 거였고, 나 말고 다른 승객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들 긴장한 터에, 가는 목적지가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붙어 있는 속초라서 더욱 그랬다. 혹시 납치되어서 이북으로 끌려가게 되는 거 아닌가. 지금 돌아보면 너무 생뚱맞지만 당시 내 마음속엔 설핏 그런 걱정이 떠올랐다. 가뜩이나 비행기가 땅에 떨어질까 무섭고, 이북으로 넘어갈까 무서워 떨고 있는 판인데 주변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날 보고 엉뚱하게도 이러는 거였다. “아유, 군인 아저씨가 타니까 정말 마음이 든든하네.”

‘할머니, 나도 무서워요.’ 차마 이 말을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14명을 쏴죽이고 북쪽으로 도주하다

그해 무더운 8월 광주 상무대에서 시작된 훈련은 흰 눈이 연병장을 덮어버린 12월 성남 행정학교에서 끝이 났다. 하늘이 마치 호수처럼 깊이를 알 수 없게 파랗던 어느 가을날, 무등산 자락 한적한 시골 마을을 빨갛게 물들이던 홍시 감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훈련소에 처음 들어가던 날, 거울 앞에 앉아 잘려 나가는 내 머리칼을 바라보던 일도 어제 같다.

그렇게 속초 위에 있는 사단에 도착해 전입신고를 마치고 나니 나더러 철책선 야간 순찰을 나가라는 거였다. 그날 밤, 나는 군사분계선 동북쪽 끝 해금강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지금은 통일전망대가 있는 데서부터 철책을 따라 밤새도록 M16 소총을 둘러메고 깊은 계곡을 오르내렸다.

철책 안쪽 비무장지대는 사주경계가 쉽도록 나무며 풀들을 깨끗이 베어내, 이쪽과 건너편 산등성이 인민군 초소며 막사 사이는 그냥 하얀 눈 천지였다. 보름달인지 달도 떠 있었던 거 같고 한밤중인데도 하얀 눈에 비쳐 사위가 훤히 보였다. 온 천지가 눈에 덮여 적막강산이요, 달빛만 눈 위를 괴괴히 비추고 있는데,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는…” 대남방송이 들려왔다. 이쪽에서는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조용필의 애절한 노래가 북을 향해 울려 퍼졌다. 북 특유의 억양에 실린 여자의 선동과 남쪽의 유행가 소리가 한데 어울려 왕왕대면서 적막강산이 더욱 적막도 했다. 무슨 연극 무대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한바탕 꿈을 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철책선을 따라 간간이 늘어서 있는, 바람이나 겨우 가리는 초소에는 나보다 더 꽃다운 스물한둘 병사들이 둘 셋 짝을 지어 철책선 너머 흰 눈밭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그 시절을 지낸 이들은 달빛 훤한 눈밭 위로 울려 퍼지던 정치 연설과 유행가를 평생 못 잊을 게다. 그렇게 주말마다 철책선 순찰을 돌았다.

1984년 6월 어느 날 오전 갑자기 사단에 비상이 걸렸다. 전방 철책선 안쪽 비무장지대에 있는 소초(GP)에 북 인민군이 강습해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도주했다는 것이었다. 지프차를 타고 민통선 안쪽 금강산 건봉사 터를 지나 철책선 경계대대에 갔다. 연병장에는 온통 죽은 병사 시신들이 널려 있고 배에 총상을 입은 장교며 병사들이 응급처치를 받고 있었다. 군의관들은 맨손으로 이리저리 찢겨나간 시신들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참혹해서 그냥 구토가 났다. 며칠의 북새통과 조사 끝에 진상이 드러났다. 사건 당일 아침 9시께, 비무장지대 밤샘 매복을 마치고 소초 소대원들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때 상황실 근무를 서던 조아무개 일병이 갑자기 옆에 있던 병장에게 총을 쏘고 내무반에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고 자다가 일어나 정신없이 도망가는 동료들에게 조준 사격을 하고 비무장지대 북쪽으로 도주한 거였다. 모두 14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여럿이 중상.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고 1주기를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유족 중 한명이 묘비를 붙잡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3월 천안함 사고 1주기를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은 유족 중 한명이 묘비를 붙잡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8년 전 총기난사 월북사건 땐
사단장이 옷을 벗었고
소대장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백령도 앞바다 46명 떼죽음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해군작전 책임자의 이상한 증언
“평소 북 잠수함을 체크하지만
우리 영해에서 우리 군함에
도발할 것은 예측 못했습니다”
그럼 해군 임무가 뭐란 말인가

지뢰 밟은 병사 3명의 그 지옥 같았을 시간들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소초가 있는 계곡 아래는 ‘남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북으로 도주하는 조 일병을 잡으러 나선 인근 소초 병사들이 거기서 발목지뢰를 밟았다. 그 시각이 오후 6시쯤. 그들을 구하러 또다른 병사들이 남강까지 내려간 게 밤 9시 반. 그리고 응급처치를 받고 계곡을 올라와 겨우 인근 소초에 옮겨진 게 다음날 새벽 5시. 거기는 계곡이 깊었다. 눈이 많이 쌓이면 부식을 타러 차 다니는 길까지 올라오는 걸 포기하고 차라리 굶는 게 낫다는 말이 있던 곳이었다. 군사분계선 남강가에서 저녁 6시 지뢰를 밟고 발목이 날아간 채 동료들이 오기를 기다리던 3시간 반. 또다시 거기서부터 철책선 밖 중대나 대대 의무실도 아니고 겨우 비무장지대 안 소초까지 후송되던 8시간. 그 시간에 황, 박 일병과 이 이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두 시간 안에 병원에 갔더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을 그 일병과 이병들은 과다출혈로 병원에 가기도 전에 죽었다. 혹 내가 이 부대에 처음 전입 왔던 날, 그 눈 덮이고 달빛 환하던 철책선 밤길을 앞에 서서 안내하던 친구는 아니었을까. 그가 살았다면 이제 오십 줄에 접어들어 그 자식이 철책선에서 또 어떤 갓 전입 온 어리바리한 장교를 길 안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랜 세월이 지난 2006년, 그때 죽은 병사 17명의 유족 일부가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호소를 했다. 혹시 당시 인민군들이 쳐내려와 우리 아들을 죽인 게 아닌지 밝혀 달라는 거였다. 당시 군은 유족들에게 진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어떻게든 이 끔찍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게 하는 데만 급급했다. 지금 같으면 나라가 발칵 뒤집어질 일이었다. 당시 겨우 목숨을 건졌던 소초 소대장과 선임하사는 공격기피죄 등으로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고 나는 그들을 변호했다. 그래서 나도 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북의 기습공격이 아닌 건 분명했지만 군 윗선에서 자신들에게 미칠 파장을 피해 보려고 진상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은 나머지 유족들은 이중으로 고통을 겪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북의 소행이 아닌 걸로 재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순직’이 아닌 ‘전사’로 처리해 달라는 유족들 신청은 기각되었다. 다만 지뢰로 죽은 이들 셋은 전사로 인정되었다.

그때 중장 진급을 염두에 두고 있던 사단장은 옷을 벗는 걸로 끝났지만 병사들은 목숨을 내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돌아가는 건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아니 옛날보다 더하지 싶다. 그때는 장군이 옷을 벗고 소대장이 형사처벌이라도 받았지만 2010년 3월26일 밤 9시 좀 지나서, 백령도 앞바다에서 46명의 병사와 부사관들이 목숨을 잃은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니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나는 천안함 관련 재판을 진행하면서 너무나 화가 났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터졌던 봄, 내 둘째가 사병으로 군에 갔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나는 하는 일의 성격상 정말 무수히 많은 사건과 죽음을 접했다. 전생에 무슨 업이 그리 많아 이렇게 평생을 죽음들과 살아가야 하나. 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도 참 많이 따라다녔다. 교도소 경비교도대 화장실에서 진상을 알아보려고 군화 줄에 내 목도 걸어 보았다. 나라에서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도록 애도 썼다. 군에서 금쪽같은 자식을 잃고 찾아오는 이들의 눈물에는 빈부귀천이 없었다. 자신이 별 셋, 군단장을 했던 김훈 중위 아버지도 비무장지대 소초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아들을 지금도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안고 산다. 그러던 차라 막상 내 아들이 군대 간다니 온갖 생각, 걱정이 다 떠올랐다.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김광석의 노래가 새삼 마음에 와 닿던 둘째 녀석의 훈련병 시절, 서쪽 바다에서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은 군에 자식을 보낸 모든 부모들에게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왔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나 무엇을 새로 가지려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 모든 일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비추어 판단하고 행동한다. 자신이 그러니 남들도 다 그렇다고 믿고 만사를 바라본다. 천안함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말을 이리 시작하면 그 뒤는 정해진 수순이다. ‘사상이 의심스럽다.’ 공자님 말씀처럼 저 다리 아래 냇물과 같이 쉼 없이 흘러가는 이 세상 실상에 눈감으니 참 불쌍하다.

합조단 조사 결과를 근본적으로 의심하다

나는 천안함 관련 재판에서 많은 자료와 진술을 접하면서 국방부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근본적으로 의심하게 되었다. 침몰 원인에 관한 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정부 발표대로 북의 소행이라 치자. 그럼 북의 공격으로 이리 크게 당한 데 대해 지금처럼 아무도 책임질 일이 없는 걸까. 다 잘했다면 내 아들 녀석과 같은 때 군에 갔던 저 수병들은 왜 죽었다는 건가. 사건 당일인 2010년 3월26일 천안함에서 좀 떨어진 바다에서는 미군 구축함 2척과 여러 군함들이 한국 해군 잠수함을 목표로 기동연습을 하고 있었다. 해군 작전 책임자는 이리 증언했다.

‘훈련 상황이 아닌 평소에도 북쪽에서 잠수함이 드나드는 걸 다 체크하나요?’

‘예, 당연히 체크하고 경비합니다.’

‘천안함 사고 당시에도 의심되는 북한 잠수정이 내려온 것이 체크되었나요?’

‘체크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으로 정보의 예측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과학기술장비가 부족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장비는 있는데 과실로 놓쳤다는 것인가요?’

‘천안함이 당시에 백령도 근해에서 경비를 수행했던 이유는 백령도에 우리 전탐감시대가 있고 자체적으로 방어와 탐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영해에 들어와서 우리 군함을 상대로 도발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증언에 따르면 우리에게 북한 잠수정을 탐지하고 방어할 능력은 있었는데, 설마 우리 영해에 들어오랴 싶었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 영해에 들어오지 않나 살피는 게 해군의 가장 기본 임무일 터인데 설마 들어오랴 싶어 예측을 못했다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 대가가 46명의 목숨이었는데 아무도 책임을 안 진다고? 그의 이상한 증언은 계속된다.

‘천안함 사고 당시 서해상에서 아군 함정에 대잠 경계령을 해군에서 내린 적이 있나요?’

‘예, 천안함 사고 후 2010. 3. 26. 22시05경 대잠 경계령을 내렸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난 시점은 몇 시로 파악을 했나요?’

‘21시22경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북한 잠수정이 들어와서 40분 정도 북쪽으로 이동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요?’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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