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르포] 첫 총선 치르는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김종훈 vs 정동영, 민심은…“사람마다 다 다릉께”
“이제야 강남구민 된 것 같아…정동영, 우리가 도와야지”
김종훈 vs 정동영, 민심은…“사람마다 다 다릉께”
“이제야 강남구민 된 것 같아…정동영, 우리가 도와야지”
“강남을에서 정동영이 되면 대박인데….”
“구룡마을 3000표가 몽땅 정동영표라고 하던데?”
토요일(7일) 밤 서울 광장이 투표독려콘서트 ‘바람’의 관객들로 꽉 채워졌다. 밴드들의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한 무리가 횡단보도에서 목소리를 실었다. 두근두근한 선거철이다.
전주 꽃가마를 버리고, 강남에 나온 정동영과 깃발만 꽂으면 낙승이 예상되는 새누리당 후보 김종훈, 강남을은 관심이 뜨겁다. 그 안에 “강남의 판자촌” 구룡 마을이 있다. 첫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됐고, 곰살맞게 마을을 살폈던 정동영의 스킨십으로 구룡 주민 2300 몰표를 받을 것이란 르포기사도 여러차례 보도됐다. 강남 주민으로 처음 등재된 데다, 무관심으로 상처 입었던 이들이 선거를 통해 “우린 유령마을이 아니다”는 ‘존재감’을 보여주겠단 테세다. 일단 밖으로 나온 보도는 그랬다. 구룡마을은 모두 정동영 표일까?
서울 지하철 노선표를 보자. 아래쪽 노란색 분당선에 구룡역이 있다. 5번 출구로 나와 개포고등학교를 왼쪽으로 끼고 돌아서 472번 버스 종점이 나올 때까지 쭉 걸어간다. 버려진 파란 버스 한 대에 ‘우리는 민영개발을 원한다’ 벌겋게 칠한 스프레이 글씨가 보인다면, 바로 그 곳이다.
대모산과 구룡산 그 중턱에 비닐 움막집 1200가구가 다닥다닥 붙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골목엔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각종 고물, 폐자재에서 뿌연 먼지가 올라왔다. 구룡마을 골목 어귀는 여덟개 지구마다 공동 우편함이 있다. 중앙선관위에서 보낸 투표안내 소포가 수북했다. 아직 안내문을 뜯어보지 않은 집들이 많은 듯 하다.
구부정한 허리로 할머니가 빈병을 내놓고 있었다. 투표 민심을 물었다. “사람마다 다 다릉께. 사람 마음에 달렸지” 할머니는 “사진찍지마”라며 한사람이 겨우 드나들만큼 좁은 골목 사이로 되돌아갔다. 건너편 담벼락에 혼자 앉아있는 한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햇볕을 쬐고 있는 듯 했다. 나이는 55살. 고향은 전남 나주군 남평면. 마을에 들어온 지 25년째다. 기초수급자다. 구룡마을에 주민등록이 발급되기 전에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언니집에 가짜 주소를 넣고 살았다. “투표하러 안 갔지. 여기서 세 번이나 차를 갈아타야되거든. 못 가.” 이번에 누가 되면 좋을 것 같나 물었다. “정동영은 우리 동네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갔어. 나도 그때 옆, 옆, 옆자리 앉아서 밥도 먹었지” 한다. “그 사람은 우리와 안면이 있으니까, 마을을 개발해줄 거야. 내 소원은 구룡마을을 빨리 밀어버리고, 이 동네를 떠나면 좋겠어..” 그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 병원 근처로 가 살면 좋겠다고 했다.
마을엔 초소가 있다. 판자촌 화재에 대한 두려움과 밤이면 이삿짐을 들고서 몰래 마을로 집을 지으러 오는 사람을 막기 위해 24시간 주민들이 당번을 선다. “마을에서 투표하니까 정말로 행복하지. 처음이잖아.” 강남에서 빌딩 청소일을 하는 안순영(72)씨가 말했다. “굉장한 의미로, 이제야 강남구민이 된 것 같지.” 청소하는 곳에서 싸준 시루떡을 자리에 펼치면서 웃었다. 마을에 산지 20년이 넘었다고 했다.
“전주에 가면 전혀 애로가 없을 분인데, 강남으로 왔어. 우리가 도와야지.” 정동영 후보 얘기였다. “우리 사정은 정 후보가 잘 알지. 2006년부터 구룡마을에 행사하면 꼭 와줬으니까...” 7-A지구의 지구장인 조성옥(가명)씨다. 조씨의 ‘사정’이란 마을의 개발 문제였다. 강남땅 한복판 금싸라기로 남은 구룡마을은 현재 도시개발 예정지다. 지난해 5월 강남구청이 구룡마을에 주민등록증을 발급한 것도 공영개발에 앞서, 투기세력이 마을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기도 하다. “개발이 된다고 된다 하면서 십수년째 미뤄지니까 이곳에서 청춘을 다 보낸거지. 이전 구청장 선거할때도, 뽑아만 주면 개발해준대놓고 감투 쓰고나면 나몰라라야. 정 후보는 사람이 안그래. 강남에 나온 것 보면 몰라?”
“우리 선거가 되니까. 조마조마해. 아이 다니는 학교 학부모로 알던 분들한테도, 처음 전화를 했어요. 그분이 정말 되었으면 좋겠는데, 부탁한다고”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의 수도는 강남인디, 우리는 강남에 살지만 서민도 아니고 빈민이야. 가난을 되물림할 순 없잖아.” 구룡마을은 정동영 몰표다. 이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7-A지구 초소에서 함께 시루떡을 나눠먹던 주민들은 그랬다.
7지구보다 산에 더 가까운 마을 윗 쪽 4지구로 갔다. 연탄은행에서 받은 검은 연탄을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제각기 집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그때 지붕 위로 올라간 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여기 바람이 너무 세서, 지붕이 날아갈 것 같아. 돌 얹으러 올라왔어” 기초생활수급자 강희정(가명)씨다. 강씨는 1989년부터 이곳에 살았다. “배운 게 없으니까 노가다판에서, 남자 보조를 하면서 돈을 모았는데, 1999년 구룡마을에 큰 화재가 나면서 모은 재산을 다시 홀라당 잃어버렸다”고 했다. 지금 그는 병을 얻어 생활보호대상자로 살고 있다. 그래도 다른 집 신문을 꼬박꼬박 얻어보며 이번 선거 관심이 대단했다.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거지.” 아주머니는 안경을 추켜세웠다. 누군가 ‘구룡마을은 정동영 몰표’라고 크게 내기를 걸었다면 이 지붕 위 아주머니의 증언에 실망할지 모른다. “마을자치회 쪽 사람들하고 난 생각이 달라서. 마을 개발 방식을 ‘공영’개발로 하면 좋겠거든. 정동영 후보가 민영개발을 요구하는 마을자치회관에서 연설하는 걸 보고 딱 마음이 돌아섰어.”
4지구역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70대 할머니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누구를 뽑을 지는 알려줄 수는 없어. 하지만 마을자치회관 쪽, 모든 주민들이 그쪽 사람들과 같은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구멍가게에 앉아있자니, 교회에서 주는 부활절 계란을 건네줬다. 그 순간 가게밖이 소란스럽다. 붉은 점퍼를 입은 아주머니와 연두색 점퍼를 입은 아주머니가 “당장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취재하려면 자치회관에서 허락받고 해야지, 이 구멍가게에서 왜 취재를 해!” 외쳤다. “수첩에 뭐라고 썼는지 모르니까 찢어버려!” 예민한 반응이었다. 자치회관으로 함께 내려갔다. “저 사람들 말은 보도하지마세요.” 저녁이라 마을자치회장은 회관에 없었다. 유귀범 구룡마을자치회장은 이날 오후 정동영 후보의 롯데백화점 앞 지원유세에 참여했다. 아주머니는 “선거관련 질문만 하라”고 했지만, 선거의 민심은 자치회 지지 여부와 관련이 깊고, 그 속엔 개발방식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찬반 여론이 자리했다.
밤 8시반께 취재수첩을 빼앗기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나왔다. 도곡동 초고층 아파트가 멀지않은 곳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난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타워팰리스 도곡제4투표소는 여당의 후보에게 88.2% 득표율을 보낸 곳이다. 뚜렷한 계급투표다. 그 완강한 성곽과 마주보는 이곳 판자촌 구룡마을도 그렇게 될까?
밤에 파출부일을 나가는 이혜정(50, 7구역)씨를 버스정류소에서 만났다. 그녀는 나주가 고향이고, 결혼을 안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는 2016년이란 숫자를 꿈처럼 가슴에 품었다. 2016년은 구룡마을이 개발되고, 주민들도 보상정리를 끝낸 후, 아파트가 세워질 해를 말했다. “개발과정에서 눈물을 흘릴 사람도 생기고, 믿으라한 정치인들이 말을 바꿀 수도 있지만 최선은 다해야지.” 혜정씨는 선릉역에서 내리면서 헤어졌다. “다들 투표는 할거예요. 그들이 우리 꿈을 들어줄지 않을지는 몰라도...”
글·사진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전국최악 투표율 부산2030, 이번에는?
■ 김용민 “아버지 어머니한테 협박전화는 좀…”
■ 투표율 변수 ① 민 “60%돼야 1당” ②30대 초반 ③날씨…
■ 하지정맥류 있는 사람 찜질방 가지 마라
■ 40대 유부녀가 제대로 바람나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있는 공동우체통에는 투표안내 소포가 수북하게 쌓여있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강남의 판자촌’ 구룡마을 입구에는 “땅주인은 구룡마을이다 민영을 사수한다” 고 칠 된 버스가 서있다.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영상갈무리/조소영피디
■ 전국최악 투표율 부산2030, 이번에는?
■ 김용민 “아버지 어머니한테 협박전화는 좀…”
■ 투표율 변수 ① 민 “60%돼야 1당” ②30대 초반 ③날씨…
■ 하지정맥류 있는 사람 찜질방 가지 마라
■ 40대 유부녀가 제대로 바람나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