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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법원장은 어떻게 결심할 것인가

등록 2012-06-01 21:55수정 2012-06-01 21:58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대법관 추천후보 13명 다양성 실종
제청땐 지역·판사 독점이라도 깨길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사석에서 “대법원장도 대법관 인사가 없으면 해볼 만하더라”는 우스개를 했다고 한다. 마땅한 이를 찾는 게 힘들더라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헌법상 대법관 임명권을 쥔 대통령과의 의견조율이 쉽지 않았다는 속사정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 일은 2009년 8월 대법관 임명제청 때 있었다. 이 전 대법원장이 민일영 현 대법관의 임명을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청한 것은 당시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가 4명의 후보를 추천한 지 보름 뒤였다. 추천에서 제청까지 통상 일주일 정도였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당시 청와대와의 조율은 어느 때보다 힘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대법원장은 그런 진통과 고민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 한다.

양승태 대법원장도 이제 그런 시간을 맞게 됐다. 양 대법원장은 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넘겨받은 대법관 후보 13명 가운데 4명의 임명을 이 대통령에게 제청해야 한다. 다음주쯤 대통령을 만날 때까지의 며칠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사법부의 미래에 어떤 구도가 마땅한지도 고민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의중을 짐작 못 할 바는 아니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이날 회의를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안 돼 추천 명단을 내놓았다. 회의는 외부에서 천거된 이들에 앞서 대법원장이 내놓은 명단부터 심사했다. 대법원장의 뜻은 그런 방식으로 이미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그 결과는 실망스럽다. 명단의 절반 정도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50대 남성 평생 법관’들이다. 현직 고위 법관은 이들을 포함해 9명이다. 여성과 변호사는 추천 명단에서부터 빠졌다. 교수 한 사람을 빼고는 추천된 이가 모두 현직 남성 판검사다. 그 상당수는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결과는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대법원의 다양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럼에도 남은 며칠 동안 최선의 선택을 포기해선 안 된다. 대법관의 3분의 1이 바뀌는 개편인 만큼 허투루 넘어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조계와 법학계에선 적어도 외형상의 다양성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왔다. 지역이나 출신 대학도 안배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고위 판사들이 대법관을 사실상 독차지하는 일은 이제 고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대법원이 얼마나 기형인지는 한국 사법체계에 큰 영향을 준 이웃 일본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한국 대법원에는 판사에서 바로 대법관이 된 이가 14명 중 11명이지만, 일본 최고재판소에선 장관(우리의 대법원장)을 포함한 15명의 현직 재판관 가운데 판사 출신이 6명이다. 도쿄대 출신이 아닌 이도 15명 중 8명이다. 변호사는 5명으로, 그중 4명은 처음부터 변호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검사 출신 2명은 검찰 퇴직 뒤 1~2년 변호사나 교수 생활을 했고, 노동성 출신 관료와 전문 외교관도 1명씩 있다. 이렇게 되면 법원 밖의 다양한 세상에 대한 경험과 식견을 쌓은 재판관이 3개의 소법정(우리의 소부)마다 3명씩 있게 된다. 판결의 깊이와 폭이 다를 수밖에 없다. 법조 일원화를 지향하는 우리 대법원이 나아갈 길이지만, 이번 추천 명단을 보면 그런 기대는 쉽지 않을 성싶다. 그나마 제청 단계에선 출신 대학이나 직역의 균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법률적 가치관의 다양성은 더 어렵게 됐다. 이번에 추천된 13명 가운데 경력이나 판결 성향상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은 인사는 두어명뿐이다. 이번 추천에서 여성 법조인이 아예 배제된 것을 두고도, 야당 성향이라는 등의 정치적 이유 때문 아니냐는 의심이 있다. 실제 그랬다면 대법원은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처음부터 배척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 배제와 폐쇄, 보수의 ‘아이콘’으로 대법원이 채워진다면 지금의 사법부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민의 온전한 신뢰는 얻기 어렵다. 양 대법원장 취임 당시의 일부 우려대로 사법부의 보수화가 현실화하는 것이라면 법원에 대한 불신과 갈등은 치유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새로 구성될 대법원에 ‘가치관의 다양성’이 거듭 요구되는 까닭이다. 양 대법원장이 보내야 할 고민의 시간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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