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교육감은 인터뷰 내내 당당했다. “공소시효로 도망가거나 증거불충분 따위로 보호받고 싶지 않다. 나는 실체적 진실로써 무죄를 요구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진중권씨와 토론하고 싶다. 그가 걱정하는 부분을 나도 잘 알지만, 진짜 무엇이 맞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차분하게 말해보고 싶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대법원 판결 앞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대법원 판결 앞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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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서 주장하는 구두합의 또한
알지 못했다는 내 주장 받아들여 교사들의 열정이 잠자던 학교를 깨우고 있다
-먼저 재판을 받고 있는 교육감으로서 서울시민과 교육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제 사건으로 너무 많은 분들이 깊은 상처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차치하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럴수록 더욱 교육에만 전념하려 하고, 또 하고 있다.” -6월2일이 교육감 당선 2주년이었다. ‘이게 곽노현식 교육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한마디로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목표로 했다. 아이들이 재밌어하는 수업, 아이들을 존중하는 생활지도, 문예체(문화·예술·체육) 중심의 방과후 활동, 아이들의 자발성을 살리는 교육을 지향했다. 여기저기 씨를 뿌렸고, 희망의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다. 또한 교육계의 관료주의, 권위주의, 경쟁주의 등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해왔다고 자부한다.” -혁신학교에 공을 들인 걸로 알고 있다. 일반학교와 어떤 차이가 있나? “‘곽노현표 교육’이 현실에서 집약된 게 혁신학교다. 혁신학교의 핵심은 선생님들의 열정이다. 수업을 혁신하고, 생활지도를 혁신하고, 민주적으로 갈등을 해결해보자며 서로 머리를 맞댄다. 여기에 변화와 성공의 열쇠가 있다. 간접체벌까지 내려놓고 감정코칭으로 아이들을 지도해보자, 아이들의 자율자치역량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보자, 다 함께 모여서 학교운영을 민주적으로 해보자, 학습연구 동아리를 만들어 열띤 토론을 해보자, 그런 교사들의 열정이 학부모들의 자발적 참여도 이끌어냈다. 지난 2년 이런 혁신학교들이 59개 지정됐고,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의 성과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열정이 학교를 깨우고 있다.” 사후매수죄 53년만에 첫 적용
대다수 법학자들 위헌조항으로 판단
서구 어느 나라에도 이런 법 없어 개악된 ‘박근혜 사학법’ 결자해지해야
-사학 비리는 교육현장의 화두다. 서울은 어떤가? “부패·비리에 대하여 불관용 원칙을 세우고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큰 장벽에 부닥쳤다. 현행 사학법으로는 너무나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비리사학의 허수아비 이사진들의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행 사학법에 어떤 문제가 있나? “재단 이사장의 전횡과 비리가 있을 경우 이사진 전체가 한 팀일 수밖에 없다. 마땅히 공동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전의 사학법에는 이사장의 전횡과 비리를 방조한 임원을 승인취소할 수 있었으나, 2007년 재개정 때 이런 조항들이 싹 빠졌다.” -박근혜 의원(당시 한나라당 대표)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면서까지 개정을 요구했던 그 사학법인가? “그렇다. 2007년 사학법을 ‘박근혜 사학법’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청이 비리사학의 허수아비 이사 승인을 취소해도 재판에 가면 번번이 패소했다. 비리사학 척결과 사학 투명성을 위해서 현행 사학법을 반드시 다시 고쳐야 한다. 사학법 재개정을 주도한 박근혜 전 대표께서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사학법을 재정비하는 데 나서주셨으면 한다.” -얼마 전 박원순 시장과 ‘서울교육희망선언’을 발표했는데, 배경이 뭔가? “서울시교육청, 시청, 자치구, 서울시의회 등 교육예산을 분담하는 주체들과 교육 관련 시민사회가 참여했다. ‘새로운 교육으로 새로운 서울,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을 모은 것이다. 지방자치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우리 학생들에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수준의 공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이 목표다.” -구체적인 정책을 합의한 게 있나? “구체적인 정책 사례를 들자면 학급당 인원을 25명 이하로 낮추자는 것이다. 우선 초1, 초6, 중1 이렇게 3개 학년을 대상으로 유휴교실이 있는 학교부터 시행하려 한다. 또 자치구마다 직업체험센터를 운영하기로 하고, 지난 29일 강동, 금천, 노원구청과 협약식을 했다. 서울시가 관리하고 있는 문화·예술·체육 수련시설들을 인근 학교에 체계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박원순 시장과 대다수 구청장들이 뜻을 같이했다.” -문예체 교육을 특별히 강조하던데. “누구든지 공교육 13년(유치원 포함)을 마치면 악기 하나쯤은 제대로 다룰 줄 알고, 구기 종목 하나는 폼 나게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웬만한 공구들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안다든가, 음식을 만들고,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삶의 기술이자 즐거움이다. 2년이란 짧은 기간에 연극반이나 합창단을 만드는 학교들이 크게 늘고, 스포츠리그도 놀랄 만큼 활성화되고 있다. 어느 중학교에서는 반마다 뮤지컬을 만들거나 연극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동안 시행해온 정책 이외에 앞으로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꼽는다면? “강남북 교육격차 해소다. 부자 동네 학교와 가난한 동네 학교 사이에 격차가 너무 심하다.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공교육의 기본 임무에서 실패하는 거다. 공교육을 통해 사회정의와 사회통합이 실현돼야 한다. 공교육은 부모들간 불평등을 차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강남에 있든 강북에 있든, 학교는 가고 싶은 학교, 보내고 싶은 학교여야 한다.” -서울의 교육격차가 그렇게 심한가? “명문대 입학 비율을 보면 가난한 구청과 부자 구청 간에 18배나 차이가 난다. 이 격차가 매년 커지고 있다. 그러니 자녀가 중학교만 가도 교육 여건이 좋은 지역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다. 혁신학교 운동이 이같은 교육격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의 첫걸음이다. 혁신학교도 열악한 지역을 우선적으로, 최대한으로 지원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과 발표한 ‘교육희망선언’
OECD 상위권 수준 공교육이 목표
강남북 교육격차 해소가 사회정의 1·2심 모두 ‘사전합의 없고, 곽노현은 몰랐다’는데…
-이제부터는 문제의 재판 얘기를 해보자. 지난 4월 2심에서 형량이 더 높아진 유죄가 나왔다. 1·2심 모두 유죄이니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과 일부 언론 보도 때문에 제가 후보매수 행위를 한 줄로 잘못 아시는 분이 많다. (그는 1·2심 재판부 모두 자신이 후보매수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고 강조했다.) 형량을 높인 2심에서도 사실관계 자체는 바뀐 게 없다. 1심과 똑같이 곽노현이 교육감 선거 당시에도 돈이 오가는 후보단일화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검찰이 말하는 구두합의라는 것도 곽노현은 알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2심 법원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무죄를 요구할 뿐 양형을 다투고 있지는 않지만, 형량을 높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2심 판사가 내세운 양형 가중 사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 “두 가지다. 첫째는 상대방의 사퇴 대가 기대를 알면서도 돈을 준 점, 둘째는 구두합의에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법적·정치적 위험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돈을 주었다는 점이다. 저의 범죄 혐의가 ‘후보자 사후매수죄’이다. 이 조항은 법학자들 사이에서 위헌 논란이 많은 조항이다. 선거 끝나고 후보자를 매수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당시 박명기 교수도 제 지인들과의 구두약속이 단순히 해프닝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이상 약속 이행을 촉구하지 않았다. 오해가 풀린 뒤 박 교수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알게 된 저의 절친한 친구(강경선 교수)가 ‘무조건 돕고 보자’며 저를 설득했다. 박 교수에게 후보 사퇴 대가로 돈을 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박 교수에게 돈을 준 시점에서는 판사가 말한 법적 위험요소도 없었다. 제가 관여하지 않은 금전지급 구두합의라는 것도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돈을 지급해야 할 급박한 정치적 위험요소도 없었다. 즉, 돈을 주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는 시점에 돈을 주었다. 법원은 돈을 주게 된 동기를 파악하고도 단순히 정상참작 사유로 삼고 말았다.” -구두합의의 성격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검찰은 구체적 약속으로 보았고, 교육감 쪽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하는데? “진짜 해프닝이었다. 이 사실도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다. 2010년 5월19일 양쪽 선거 관계자들이 만나 후보단일화를 조건으로 돈을 주기로 했다는 이른바 ‘선거 전 합의’란 것도 돈을 주겠다는 주체는 곽노현이 아니었다. 당시 박명기 교수는 자신의 친구이자 선대본부장인 양아무개씨에게 ‘당신에게 백지위임할 테니 어떻게든 해봐라’라고 일을 맡겼고, 양씨는 ‘돈은 나중에 진영에서 마련할 수 있다’며 우리 측 이아무개씨(양씨와 동서지간)를 설득했다. 심지어 양씨는 자기가 “1억5천은 급하니까 내가 집을 담보로 마련하겠다”고까지 얘기했다. 이렇게 이른바 5·19 합의는 합의 방식도 그렇지만 돈의 액수, 돈을 주겠다는 주체, 주는 시점, 방식 등 모든 것이 특정된 것이 없다. 이런 점을 보았을 때, 후보매수죄에 해당하는 약속행위라고 볼 수 없는 단순 해프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사장 비리 도운 임원 퇴출 불가’
박근혜 사학법 스스로 개정 나서길
수감때 쓴 글 등 모은 ‘나비’ 곧 출간 사후매수죄, 위헌 헌법소원
-헌법재판소에 사후매수죄에 대해서 위헌법률 헌법소원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법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적용·기소된 게 곽노현 사건이다. 사후매수죄와 동일한 규정이 1958년에 제정되었으니 대략 53년 만이다. 1심과 2심 법원은 후보사퇴 전에 금품제공 약속행위가 없었다 하더라도 선거일 후 언제든지 금품제공이 있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결국 돈을 주면 무조건 유죄라는 해석인데 사전매수 없이 선거가 끝난 뒤 딱해서 돈을 준 게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순 없다. 가벌성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법원처럼 사후매수죄를 해석하는 것은 헌법상의 책임주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체계정당성 원칙, 과잉금지 원칙 등에 위반된다고 본다.” -사후매수죄가 다른 나라에도 있나? “서구에는 어느 나라에도 이런 법이 없고, 일본에만 있다.” -대법원은 유무죄만 가리게 되어 있다. 최종 판결을 앞두고 법원 쪽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대법원은 법리를 다룬다. 대법원이 1심과 2심 판결의 문제점을 시정해 주리라 믿는다. 헌법재판소에 앞서 대법원도 일차적으로 법률해석의 권한이 있다. 그렇다면 사후매수죄 규정의 자구 해석에 머물지 말고 헌법상의 국민의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사후매수죄의 적용 여부를 판단해주길 바란다. 사실 공직선거법 사후매수죄 조항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위헌성이라기보다는 법원의 자의적 해석을 통해 사후매수죄 조항의 위헌성이 부각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곧 책이 나온다고 들었다. 어떤 책인가? “<나비>란 제목의 책이다. 예전에 썼던 트위트 중 “누구든지 공교육 12년을 거치면 아름다운 나비가 돼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게 하리라”라는 내용에서 따왔다. 교육감으로서 2년간 교육희망을 향해 쏜 트위트 글과 이번 사건으로 구치소에 있을 때 집사람에게 보낸 일지형 편지글을 모은 것이다. 6월10일 출간 계획이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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