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판문점 현장검증에 난데없이 삶은 돼지대가리가…

등록 2012-06-08 19:30수정 2012-06-10 16:29

제이에스에이(JSA) 241소초 김훈 중위 사망 현장. 김척 제공
제이에스에이(JSA) 241소초 김훈 중위 사망 현장. 김척 제공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⑫ 판문점 의문사 사건(하)
1999년 1월 어느 날, 날씨가 매섭게 추웠던가. 나는 판문점 인근 241소초에 갔다. 특조단 양인목 중장은 이날 권총 발사 시험을 통해 두 가지를 확인해 보기로 나와 분명히 약속을 했었다. 첫째, 현장 벙커 안에서 실제로 베레타9 권총을 사격한 후 총을 쏜 사람 손에서 뇌관 화약이 묻어나는지. 둘째, 권총을 장전하려면 노리쇠를 뒤로 당겼다 놓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문이 노리쇠에 남지 않을 수도 있는지.

미군은 사건 발생 직후 김 중위 양손에 누런 종이봉투를 씌워 바람이나 사람에 의해 화약흔이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을 했다. 그런데도 오른손에서 화약성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건, 타살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중요한 단서였다. 그리고 권총 노리쇠에는 당연히 총을 장전한 사람의 지문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문 소유자가 총을 쏜 사람일 텐데 노리쇠에 감식할 만한 지문이 없다! 김 중위가 제 머리에 권총을 쏜 뒤 자살을 감추기 위해 제 손으로 지문을 닦아냈나?

아아, 삶은 돼지머리에 총을 쏜 건 ‘쑈’였다

그런데 특조단은 현장에서 갑자기 안전사고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람에 의한 권총 발사 시험을 취소했다. 창문 밖으로 쏘면 될 거 아니냐고 의견을 냈지만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러곤 난데없이 삶은 돼지 대가리가 나왔다. 그걸 벙커 안에다 놓고는 옆에다 총을 거치한 뒤 밖에서 격발장치를 이용해 거기다 총을 뻥뻥 쏘아 대는 거였다. 총알이 어떻게 머리를 관통해서 어디로 날아가는지를 살펴야 한다나.

이거야말로 정말 “아아”였다. 아아, 삶은 돼지 대가리는 장사 잘되게 해 달라, 사고 없게 해 달라, 고사 지낼 때나 쓰는 줄 알았지… 기자들이 오고 사진을 찍고, 티브이 카메라가 돌아가고 법석댔지만 이건 ‘쑈’였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민간 자문위원들은 그 들러리들.

나는 즉시 판문점 241소초를 떠나 부리나케 용산 국방부로 가서 양 중장에게 항의를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나를 맥 빠지게 했다. “오늘 시험은 어떤 의학적, 법적 증거도 갖지 못하는 시험이었다.”

이런 상황은 다음날로 이어졌다. 다음날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특조단이 주관하는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그 구성부터가 문제였다. 자살을 주장하는 토론자는 국방부 측 국내 법의학자 등 7명, 타살 쪽은 미국 법의학자 노여수 박사 1명. 거기다 진행은 현직 검사가 맡았다. 어제 ‘돼지 대가리 상황’의 재현이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 실무자들은 토론회 구성과 진행이 부당하다며 항의했지만 역시 마이동풍이었다. 그중 고상만 간사는 아직도 이 사건을 놓지 않고 있다. 법의학이나 과학을 다수결로, 그것도 처음부터 다수결을 예정한 구성으로 결정하는 게 말이나 되냐며 나도 그 자리를 떠났다. 민간 자문위원 10명이 전원 사퇴했다.

국방부 쪽 법의학자들 일부는 김 중위 오른손에서 화약성분이 전혀 검출되지 않은 건 오른손 검지가 아니라, 손등이 몸쪽으로 향하게 하고 엄지로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라 주장했다. 이 역시 김 중위가 자신이 총을 쏜 걸 감추려고 일부러 엄지로 총을 쏘았다는 걸까.

왼손 바닥에서 화약흔이 나온 걸 노여수 박사는 타살의 중대한 단서로 보았다. 상대방이 가까이서 자신에게 총을 쏘려 할 때 저도 모르게 손으로 총을 가로막는 자세에서 화약성분이 묻게 되는, 피살자에게 흔히 발견되는 이른바 ‘방어흔’이라는 거였다. 국방부 측은 이를 총을 고정시키려 왼손으로 총구를 감아쥐었기 때문이라 했다.

총을 머리에 대고 쏘았는지도 쟁점이었다. 자살자들이 흔히 하는 대로 총구를 머리에 밀착시키고 쏘면 화약이나 매연이 모두 머릿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총구멍 주위 바깥 피부는 깨끗하다. 최초 부검을 한 군의관은 ‘사입구 주변의 체표에서 화약 감입이나 매연 침착이 없는 사실’에 비추어 머리에 대고 쏜 것이라 하였고, 이는 자살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최초 검시를 한 미군 군의관이 사입구를 깨끗이 닦아 냈는데 이 사실을 모르고 부검 소견을 낸 거였다. 애초 김 중위의 오른쪽 관자놀이 총알이 들어간 구멍 부근 바깥 피부는 시커멓게 화약 연기가 묻어 있었다. 이건 총구가 머리에서 떨어진 채로 발사되었다는 증거다.

총구를 머리에 대고 쏘지 않았다는 건 타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노여수 박사는 ‘근접 혹은 원거리 발사처럼 머리에 대고 쏘지 않은 상태의 총상에서 자해에 의한 것은 매우 예외적’이라는 미국 법의학 교과서를 근거로 들었다.

권총을 다루는 게 직업인 육사 출신 중위가 자살을 하는데, 왼손으로 총구를 움켜쥐고, 오른손은 검지도 아니고 엄지손가락으로 방아쇠에 걸고, 총구는 머리에서 뗀 채로 총을 쏘았다?

제이에스에이(JSA) 241소초 김훈 중위 사망 현장 안에서 파손된 상태로 발견된 클레이모어 스위치 박스 덮개.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김훈 중위의 깨진 시계와 함께 ‘타살의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격투 반항의 흔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척 제공
제이에스에이(JSA) 241소초 김훈 중위 사망 현장 안에서 파손된 상태로 발견된 클레이모어 스위치 박스 덮개.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김훈 중위의 깨진 시계와 함께 ‘타살의 증거가 될 수도 있는 격투 반항의 흔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척 제공
총을 쏜 손에는 화약흔이 없고
권총에는 지문이 없었다
게다가 총구를 머리에서 뗀 체
스스로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국군은 사건발생 5시간 뒤에야
겨우 10분 현장을 확인했고
미군은 당일 저녁 현장을 훼손했다
만약 김 중위가 타살됐다면?
JSA 관리 미군 책임 불거졌을 것

미군 장교가 죽어도 이렇게 증거 훼손했을까

법의학적 소견은 내가 보기에 타살을 가리키고 있었고, 현장 상황도 그랬다.

적과 대치하는 최전방에는 ‘클레이모어’(Claymore)라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누르고 던지고 쏴라.” 전방에서 근무했던 이들은 이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을 거다. 적이 가까이 나타나면 클레이모어 스위치를 누른다. 그러면 전기가 흘러 클레이모어가 터지고 그 안에 있던 작은 쇠 구슬들이 수도 없이 날아가 정면에 있는 건 남아나질 않는다. 그다음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쏴라. 제이에스에이(JSA) 241소초에도 클레이모어가 6개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최초 현장 사진을 보면 6개 중 2개의 스위치 덮개가 파손되어 떨어져 있거나 변형되어 있었다. 특조단장은 국회에서 당일 “많은 사람들이 수사를 하면서 거기에 왔다 갔다 하면서 경황 중에 그것이 하나 떨어지지 않았겠느냐”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 사진은 미군이 사건 직후에 찍은 것으로 그때는 수사관들이 오기도 전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질책을 하자 국방부 장관은 다시 그건 관리 소홀 탓이고 이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241소초는 매일 아침 해 뜨기 직전과 저녁 해 진 직후 두차례 전원 투입근무를 하면서 그때마다 클레이모어 스위치를 점검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더구나 사건 당일에는 미군 주요 인사가 방문하게 되어 있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친 대기 상태였다. 다음날에는 다른 소대에 소초를 인계하게 되어 있었다. 국회 국방위 하경근 의원은 보고서에서 이 스위치 박스들이 파손, 변형된 것으로 보아 ‘파손된 지점에서 몸싸움이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망 당시 김 중위가 차고 있던 시계가 파손된 것도 문제였다. 시계 유리는 9시 부분이 6밀리×4밀리 크기로 울퉁불퉁한 물체에 의해 파손되어 있었다. 역시 몸싸움을 추정케 하는 정황이었다.

국방부 특조단은 이 수많은 반대 정황들을 뒤로한 채, 1999년 4월 김 중위가 자살한 거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해 12월, 김 중위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은 천주교 인권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군 수사기관의 수사 잘못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재판 1, 2심은 클레이모어 스위치 박스 덮개가 깨어져 떨어지고, 시계가 파손된 정황들을 ‘격투 반항의 흔적으로서 타살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법원은 군 수사기관의 잘못을 여럿 지적했다.

우선 미군이 출입을 통제해서 한국군 헌병 수사관은 사건 발생 후 무려 5시간이 지나서야, 그것도 겨우 10분 정도 현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미군 측은 김 중위가 죽은 당일 저녁, 벙커 내 핏자국들을 모두 물로 지우고 다음날은 아예 내부 전체를 페인트로 다시 칠해 버렸다. 미군 장교가 죽었어도 이렇게 현장을 마구 훼손했을까. 그들은 수거해 간 권총, 탄피, 옷 등을 한국군 헌병대에 넘기는 것도 거부했다. 항소심 법원은 “이같은 제이에스에이 내에서의 사건, 사고 조사에 관하여 사전에 적절한 한·미 공조 수사체계를 구축하지 아니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3성 장군인 김 중위 아버지도 미군 앞에서는 극도의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국방부는 단 한번의 항의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미군에 대한 자주국가 한국 국방부의 현주소였습니다…아버지인 내가 현장 검증에 가는 것을 거부하는 미군들의 점령군 식 태도는 잘못된 것이니 시정해 달라고 수십번 요청해도 못 들은 체하고 넘어가는 행태를 보면서 도대체 김훈 중위는 무엇을 위해 충성했으며 그의 조국은 어디였는지 묻고 싶었습니다…국가의 주권과 군사주권은 무엇인가.’

둘째로, 법원이 수사상 잘못이라고 지적한 부분. 소대원들에 대한 알리바이를 조사하면서 서로 의논해서 시간대가 대략적으로 일치하게 되도록 하였다. 개별신문은 사건 7개월 뒤 육군본부 검찰관에 의해 처음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선임하사와 소대원들에 대한 뇌관화약 반응 검사도 전혀 실시하지 않았다.

고 김훈 중위. 화장되었으나 14년째 그의 유골은 군 보급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 김훈 중위. 화장되었으나 14년째 그의 유골은 군 보급대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상황일지는 왜 유독 그날치만 사라졌나

셋째로, 소대 선임하사는 알리바이로 자신이 사건 시각 무렵 업무보고 문서를 작성하려고 컴퓨터 작업 중이었다는 건데, 그 컴퓨터는 사건 6개월 뒤 용산에서 그가 하드디스크를 포맷하여 작업 내용 확인이 불가능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압수를 했다.

넷째로, 진상 파악에 제일 기초가 되는 소대 상황일지가 사라졌다. 대대 상황일지도 유독 2월24일 당일 치만 사라졌다. 수사당국은 이걸 무어라 해명할 건가.

법원은 군 수사기관이 수사를 소홀히 하였음을 하나하나 밝히면서도 정작 김훈 중위의 자·타살 여부에 대해서는, 이런 수사기관의 잘못으로 ‘사건의 실체를 불분명하게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렇겠지. 법원은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를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는 한 타살이라 판결할 수는 없는 처지다. ‘누가 어떻게’를 밝히는 게 어려워지긴 했지만 최소한 자살이 아니라는 건 분명해 보이니 순직 처리가 마땅하다. 그게 이제 와 무슨 소용이겠는가마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김훈 중위 사건이 미궁에 빠진 건 바로 제이에스에이에서 일어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선임하사가 인민군 장교와 돼지볶음에 인삼주를 마셨다. 소대장 중위가 죽었다. 제이에스에이 관리 미군 책임이 크다. 사건 수시간 만에 이미 자살 보도가 나갔다. 김 중위가 자살한 거라면 책임이 덜해진다. 한국군은 초동수사에서 배제되어 손을 놓았다. 미 군의관은 총알구멍 주위 매연을 닦아냈다. 미군 감정서에는 권총에 제대로 된 지문이 없단다. 정말 그랬을까….

스물다섯살 김훈 중위는 화장되었다. 그리고 14년째 땅에 묻히지 못한 채, 지금도 군 보급대 창고에 물건처럼 보관되어 있다. 그 창고엔 유족들이 내 아들, 동생이 왜 죽었는지를 납득할 수 없는 60여 젊은 죽음들도 같이 있다.

오늘 그 창고 앞에 영문도 모르는 병사 하나가 앉아 김훈 중위가 읽었다는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있을런가?

<한겨레 인기기사>

전두환 육사생도 사열­…매카시즘 타고 5공 부활?
민주 해찬체제 출범…문재인 대권행보 탄탄해지나
아기가 운다 그 옆에 엄마가 운다
여름철 입맛 없을 때 되레 살찌는 이유
넥슨이 챙겨가는 266원, 과하지 않습니까?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