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봉’ 5000만원
면피성 수사로 마무리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에 대해 폭로하려는 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관봉’ 5000만원은 증거인멸 의혹의 ‘윗선’을 한꺼번에 밝혀낼 수 있는 결정적 단서였다. 검찰은 이 돈을 전달한 류충렬 당시 공직복무관리관의 ‘입’만 바라보다 수사에 실패했다.
그동안 장 전 주무관에 대한 입막음 시도의 진원지는 청와대로 지목돼 왔다. 지난해 4월13일 류 전 관리관이 장 전 주무관을 만나 돈을 건네며 “장석명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날은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장 전 주무관이 항소심에서 공무원 재임용이 가능한 벌금형 선고를 기대했으나, 1심과 같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다음날이었다. 공직에 복귀할 수 없게 된 장 전 주무관이 폭로에 나서는 걸 막기 위해 급하게 그에게 돈이 전달된 정황이 짙었다.
하지만 류 전 관리관은 검찰 조사에서 ‘장석명 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며 “지난 1월 숨진 장인한테서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류 전 관리관과 가족의 계좌를 광범위하게 추적하는 한편, 청와대 주변 시중은행 지점에서 5000만원 이상을 빼낸 인출자 2000여명도 훑었지만 류 전 관리관의 주장을 깰 단서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관봉의 포장번호와 일련번호 등을 바탕으로 추적에 나섰지만, 한국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나갈 때 포장번호 등 기록을 남기지 않은 탓에 역시 벽에 부딪쳤다.
류 전 관리관의 ‘입’만 보고 있던 검찰한테 수사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검찰은 류 전 관리관이 장 전 비서관과의 연관성을 부인한다는 이유로 장 전 비서관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동원하지 않았다. 수사 막바지인 지난 30일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면피성’ 수사를 했을 뿐이다. ‘압수수색 등 적극적인 수사가 필요했던 게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송찬엽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류 전 관리관 등이 부인하는 상황에서 압수수색 등을 하는 것은) 효율성이나 비례원칙에 맞는지 의문이 간다”고 답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 관봉
정부가 돈을 발행한 뒤 도장을 찍어 봉한 것을 말한다. 한국조폐공사에서 신권납품을 위해 지폐 100장씩을 띠지로 묶고 10다발을 포개 비닐로 밀폐포장 처리해 지폐 1000장이 하나의 관봉에 들어가게 된다. 지폐의 일련번호는 순차적으로 배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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