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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형태 특검보 방을 뒤져봐야겠다”

등록 2012-06-15 19:20

1999년 12월17일 강원일 특별검사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9년 12월17일 강원일 특별검사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⑬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상)
“오늘이 13일이죠? 13번, 앞으로 나와서 어쩌다가 술 마시고 운전하게 된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건지, 발표해 주세요. 23번, 33번도 미리 준비하시구요.” 젊은 여자 강사가 이렇게 말하자 강의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푹 숙였다. ‘망신을 주어도 유분수지, 이거 참 너무하네.’ 나도 고개를 푹 숙였다. 도리 없이 13번 아저씨는 앞으로 나갔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붙들려서 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된 사람들이 교육을 받는 자리였다. 남녀노소, 그야말로 가지각색이었지만 제대로 갖춰 입은 이는 하나도 없고 허름한 옷에, 대화는커녕 서로 눈길 마주치는 것도 피했다. 서로서로가 창피했다.

집 가까이서 스님들하고 공부 마치고 간단히 막걸리 한잔 하다가, 그만 한잔이 두잔 되고, 두잔이 세잔…. 나도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발표 준비를 하다가 다행히도 수업 끝 종이 울려서 살아났다. 고시 붙고 30년 가까운 세월 목에 힘주고 살다가 경찰 조사도 받았다. 벌금 내고 전과자 되고. 그동안 목에 힘주고 살았다는 게 스스로 여실히 느껴졌다. 내가 뭐 날 때부터 변호사였나, 죽을 때도 변호산가? 아니다! 그런데, 그러고도 몇 년 세월이 흘러가니 또 내 목에 힘이 들어간다. 재미있다.

목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부류는, 내가 겪은 걸로는 판사, 검사, 신부, 목사, 스님, 장군, 재벌….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제가 판사고 검사고 재벌인 줄 안다. 정치인들은 그래도 선거에 목을 매니 좀 덜하다. 민주주의 덕이다.

1999년 12월17일 강원일 특별검사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위) 그러나 진실규명은 실패했고, 각 부문의 관련자들이 모두 수사결과에 반발했다. 1999년 6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분노한 조폐공사 노조원들은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 몰려와 규탄집회를 열면서 현판에 폭탄주를 끼얹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9년 12월17일 강원일 특별검사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수사결과 발표 자리에서 “진실규명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위) 그러나 진실규명은 실패했고, 각 부문의 관련자들이 모두 수사결과에 반발했다. 1999년 6월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에 분노한 조폐공사 노조원들은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 몰려와 규탄집회를 열면서 현판에 폭탄주를 끼얹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검사들을 수사?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었다

1999년 10월13일, 나는 팔자에도 없는 ‘고위 공직자’가 되었다.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보. 직급은 검사장이라나. 법에서는 내가 수사해야 할 대상을 이렇게 적어 놓았다. ‘1999년 6월7일 당시 대검찰청 공안부장의 발언으로 야기된 대검찰청 공안부가 한국조폐공사노동조합의 파업을 유도하였다는 의혹사건’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 있다가 대전고검장으로 영전하게 된 진형구 검사는 낮에 폭탄주 몇 잔을 마시고 술김에 폭탄 발언을 했다.

“지난해 조폐공사의 파업은 공기업 구조조정의 전범으로 삼기 위해 우리(검찰)가 유도한 것이었다. 강희복 조폐공사 사장과 논의한 뒤 옥천 조폐창의 기계를 옮기도록 했다. 당시 관련 사실을 김태정 검찰총장에게도 보고했다. 당시 계획은 공안부 이아무개 과장이 만들도록 했고 지금도 그 보고서가 남아 있을 것이다. 조폐공사 파업에 대한 대응을 통해 공기업체에서 파업이 일어나면 우리가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 그쪽(노조)이 쉽게 무너져 버려 싱겁게 끝났다. 조폐공사가 잘 되었으면 서울 지하철 파업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냥 두면 조폐공사의 구조조정은 2002년에나 가능했을 것을 우리가 구조조정을 앞당긴 셈이다.”

‘검찰특별수사본부’가 수사에 나섰다. 그 결과 조폐공사 강 사장을 억압해서 구조조정을 강행하게 하여 권리행사방해, 업무방해, 3자개입 죄를 지은 혐의로 진형구 부장을 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혼자서 한 일이겠느냐는 여론이 들끓자 헌정 사상 최초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되었다.

그 특검은 한마디로 검사들을 수사하라는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게 될 일이 아니었다. 뭐, 개인적으로야 그렇지 않은, 좋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지만, 집단으로서 검찰만큼 제 스스로 힘이 들어가 있는 곳도 없다. 그런 검찰을 수사한다는 게 가당하기나 한 일인가. 저들은 죽었다 깨도 검찰이다. 내가 괜한 젊은 혈기와 객기로 덜컥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을 때부터 이미 고생길이 훤히 열린 거였다. 딱 보름 만에 나는 맨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1999년 10월28일 오후, 대전지검 검사 둘과 공안부 직원 다섯, 모두 7명이 명색이 ‘검사장’급인 내 방에 쳐들어왔다. 어제 대전지검에서 가져온 자료들을 다 돌려달라는 거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파업 유도 사건과 관계없는 문서들도 많으니 다 돌려주시오.” 나는 기가 막혀 잠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당신들은 법이 정해놓은 수사 대상이란 말이오. 잠재적 피의자 신분인데, 피의자들이 검사에게 압수된 물건 돌려달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요? 도둑이 검사보고 압수품 돌려달라고?”

더 가관인 것은 수사 대상인 대전지검 검사들을 내 방에 이끌고 온 사람이 다름 아닌 내 지휘를 받는 특별수사관이 아닌가.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수사 대상들이 압수물건 돌려달라고 온 자리에 우리 수사관이 함께하다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럴 법도 했다. 그는 과거 울산 등지에서 공안사건도 처리했고 1년 전까지는 대검 검찰연구관을 지낸 전직 검사였다. 변호사 개업한 지 1년 남짓 만에 파업 유도 특검이 시작되자 변호사 사무실 문을 닫고 수사관에 자원했다. 판검사들은 보통 퇴직 후 개업 1, 2년 동안은 사건이 많은 법이다. 나는 그에게 왜 한창 잘나가는 변호사 일을 접고 수사관 자리를 자원해서 온 거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검사 초임 시절 상관으로 모셨던 강원일 특별검사를 도우러 온 거라 했다. 그는 그해 말 특검이 끝나고 수년 뒤 변호사에서 검찰로 다시 돌아갔고 그 뒤로 5년여를 더 검사로 근무하면서 부장검사까지 지냈다.

그런 그가 가져간 자료를 돌려달라고 쳐들어온 대전지검 검사들을 안내해 온 건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파업 유도 특검이 실패로 돌아간 거라 생각한다.

당시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의 주인공인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당시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의 주인공인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 <한겨레> 자료사진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 폭탄발언
“공기업 구조조정 본보기 위해
검찰이 조폐공사 파업 유도”
99년 사상 첫 특검제가 도입됐다
나는 특별검사보로 임명됐다

“아니 이게 무슨 반민특위 꼴이냐”

내가 압수물들을 돌려줄 수 없다고 하자 조금 뒤 강 특검에게서 인터폰이 왔다. 사건과 관계없는 게 있으면 돌려주라는 거였다. 수사 대상들이 압수물 돌려달라는 건 어떤 경우에도 들어줄 수 없는 원칙의 문제였지만 나는 한동안 고민을 했다. 이것 때문에 판을 깰 순 없었다. 관계없는 서류들이 있는지 살펴보고 돌려주겠다고 양보를 했다. 그런데 대전 검사들은 자신들이 보고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거였다. 이건 내가 보기에 적반하장이었다. 이런 상황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어차피 검찰을 수사하다 보면 반드시 부닥치게 될 일이기도 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강 특검이 직접 내 방으로 왔다. 서로 협조해서 처리하면 될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면서 같이 살펴보라는 거였다.

강원일 특별검사는 검사장까지 지낸, 원칙과 소신을 지닌 변호사로 알려져 있던 분이었다. 5공비리 수사를 맡았을 때는 전두환 대통령 실세 동생인 전경환을 처벌하려고 검찰 수뇌부와 대립했던 강골이기도 했다. 그분은 특검을 시작할 때,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서 문제를 드러내어 갈등을 봉합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두자고 했다. 그리고 수사 대상인 검사들도 같은 국민이니 원수 취급하지 말자며 화합을 강조했다.

원론적으로 맞는 말이긴 했지만, 특검 제도는 기본적으로 정치가 아니고 죄를 파헤쳐야 하는 검사 역할이다. 결과적으로 나중에 파업 유도 특검 수사가 갈팡질팡하게 된 건 검사의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특검법에 따라 수사 대상이 되어 있는 대전지검으로서는 당연히 자신들에게 불리한 건 빼려 할 것인데 어떻게 그들과 협조를 하라고? 내가 보기에는 이건 수사를 포기하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그럴 수 없다고 거절하자 강 특검은 나와 같이 특검에 들어갔던 민간 출신 특별수사관들에게 호통을 쳤다. “누구 지시 받는 거야. 내 지시 안 받는 거야. 이 자료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내 지시를 따르란 말이야.” 대전 검사들 보는 앞에서 떡이 되어 버린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 방에 있던 모두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아니 이게 무슨 반민특위 꼴이냐, 이런 식의 특검, 수사절차에는 입회할 수가 없다.” 이승만 정권 시절, 온 국민의 바람으로 친일파를 처벌하려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승만의 비호를 받은 친일파 경찰들이 총을 빼들고 들어가 거꾸로 이들을 체포한 거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압수 서류를 돌려달라며
수사대상 검사들이 쳐들어왔다
죄를 파헤쳐야 할 강원일 특검은
되레 “협조하라”고 지시했다
검사들은 내 방까지 뒤지겠다고…

그 서류엔 다른 ‘개입 흔적’이 있었으리라

내가 방을 나온 뒤 특별수사관들은 대전 검사들과 함께 압수서류들을 검토한 뒤 대부분돌려주었다. 내 판단으로는 그 서류들 중에는 이번 조폐공사 이외에 다른 회사들에도 검찰이 적극 개입해온 흔적들이 분명 들어 있었다. 조폐공사 파업에 검찰이 개입해서 사용자 편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했음을 입증해 줄 수 있는 중요한 간접증거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전지검 검사들이 내 방에 쳐들어오는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돌려받으려 한 것이리라.

그들은 자료를 돌려받아 가면서 결정적인 무리수를 하나 더 두었다. 서류들 중 일부가 없어진 것 같으니 특검보 방을 뒤져 보겠다고 했다. 나는 밖에서 이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이어져온 검찰의 사용자 편들기 ‘관행’을 이참에 뿌리뽑겠다는 철없는 객기를 반쯤 접었다. 그리고 글쎄, 이걸 그저 ‘관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문제인가. 노동자들은 상급단체나 다른 노조 대표가 파업 현장에 와서 지지 연설을 하기만 해도 3자 개입으로 감옥에 끌려가야 했다.

수사 대상 검사들이 수사 주체인 검사장급 특검보 방을 뒤지겠다고 나오게 만든 건 강 특검이 실패하게 된 이유의 전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특검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크게 반발했다. 노조는 노조대로, 사용자 단체인 전경련도, 수사 대상이었던 검찰도, 대다수 국민들도. 나는 강 특검이 사심에서 검찰을 봐주려고 그런 건 아니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때 그분이 ‘화합이나 제도 개선’ 말고, 죄를 파헤치는 특별검사로서의 자세를 분명히 했더라면 100퍼센트는 몰라도 70퍼센트는 성공하지 않았을까.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너무나 안타깝다.

압수물 반환을 둘러싸고 이 사달이 일어나게 된 건 사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었다. 그 전날인 10월27일 대전지검에 갈 때 나는 판사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으려 했다. 대전지검 공안부 검사들 업무수첩과 컴퓨터, 서류들을 그들 모르게 영장을 발급받아 압수해야 뭐라도 나올 거라 여겨졌다. 물론 진형구 검사의 폭탄 발언 이후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이미 한차례 수사를 마쳤기 때문에 쓸 만한 증거들이 그냥 남아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가 다시 특검까지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들은 싹 치워 버렸을 걸로 예상되긴 했다. 하지만 상대가 검사들인 만큼 원칙대로 정석을 밟아가는 게 나중에도 문제가 없지 싶었다. 그런데 강 특검은 특검을 원만하고 무리 없이 진행하자는 원칙하에, 일을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고 했다. 대전지검에 가서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들을 받아 오는 수밖에 없었다. 임의제출 형식이긴 해도 검사들 방을 뒤진다는 게 부담스럽긴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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