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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한인들, 커뮤니티 소극적…한국정치보다 미국에 더 관심 뒀으면”

등록 2012-06-17 20:32수정 2012-06-17 21:22

강석희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 시장이 6일(현지시각) 어바인시청 시장실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목표, 11월 연방 하원의원 선거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바인/권태호 특파원
강석희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 시장이 6일(현지시각) 어바인시청 시장실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목표, 11월 연방 하원의원 선거 전망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바인/권태호 특파원
한겨레가 만난 사람
강석희 미국 어바인 시장

강석희 미국 어바인 시장

강석희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시 시장이 11월에 열리는 연방 하원의원 총선 결선에 올랐다. 한인으로선 김창준 전 하원의원에 이어 13년 만에 미국 연방의회 진출에 바짝 다가섰다. 민주당 후보로 예선에서 2위를 한 강 시장은 1위를 한 공화당 존 캠벨 의원과 결선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출마한 지역이 공화당 강세지역이지만, 강 시장이 시장직을 연임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데다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당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강 시장을 지난 6일(현지시각) 시청사에서 만났다. 전날 있었던 예비선거 개표 결과를 지켜보느라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했고, 이날 아침부터 신문·방송 인터뷰가 이어졌고, 당일 시정도 챙겨야 하는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넓지 않은 시장실과 소탈한 표정,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 등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흔히 볼 수 있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인터뷰/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먼저 예비선거 통과를 축하한다. 그러나 11월 본선거를 놓고 한인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 어바인은 공화당 세가 강한 곳 아닌가?

“전국적으로도 공화당이 특히 강한 지역이다. 또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어 힘든 싸움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다. 돈도 많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텔레비전 광고 등을 통해 나를 알리고, 상대방 후보에 대해서도 공세적인 전략을 펴려 한다.”

연방 하원의원 결선투표 진출
소수민족 보호한다는 판단에
공화당 강세지역서 민주당 선택

-시의원, 시장 선거 때도 출발 때는 뒤처져 있지 않았나?

“그렇다. 출발점은 (지금보다) 더 뒤처졌다. 미국 와서 한 번도 좋은 상황에서 뭘 시작해본 적이 없다. 직장도 그렇고.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결과를 만든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도 힘들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가능성이 없다고 보진 않는다.”

-한인들 지지는?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15년 동안 한인사회 봉사활동 하면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에 한인들이 무슨 일이 있든 많이 지원한다.”

-어바인은 백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시장실에 와보니 한국적인 소품이 많다. 한국을 너무 앞세우는 걸 싫어하는 주민들도 있지 않을까?

“어바인이 다민족·다문화 사회로 되고 있어 그런 분위기는 없다. 내 스태프들도 한인들이 제일 많다. 처음에는 조금 꺼리는 모습도 있었지만, 내가 각 커뮤니티를 다 만나고, 다 참석하고 다니고 그랬다. 그래서인지 오해가 쌓이진 않더라.”

-선거 캠페인에선 어떤 곳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교육이다. 캘리포니아의 주 교육예산이 줄고 있다. 이를 시 재정으로 메꿔나가고 있다. 내가 시장이 된 뒤 ‘100만달러 매칭 후원’ 제도를 마련했다. 어떤 커뮤니티가 100만달러의 후원금을 걷으면, 시에서도 그곳에 100만달러의 재정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이 돈으로 우선 학급당 인원수가 늘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에서 교사들을 자주 해고해 학급당 학생 수가 늘고 있다. 교사와 학생들간 대면접촉을 늘려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하는 것, 학급에 필요한 시청각 교재와 책을 많이 구비하는 것, 카운슬러 고용 등에 그런 돈을 쓰고 있다. 또 한가지는 교통이다. 캘리포니아주로부터 1억2000만달러의 예산을 얻어내 마을버스를 운영한다. 어바인의 산업지역 두 곳을 주로 운행해 교통수요를 줄여 친환경에도 기여하고 있다.”

선거캠페인 교육에 초점둘 것
‘100만달러 매칭 후원제’ 통해
교육여건 악화 안되도록 노력

-캘리포니아주의 재정 악화로 어바인시도 영향을 받지 않나?

“처음 시장 됐을 때에 비해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판매세가 25% 줄었다. 이는 시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 효율을 높여 시 재정을 규모있게 쓰고, 별도의 인원보충을 않으면서 돈을 많이 절약했다. 이를 통해 (시장으로 있는) 3년 반 동안 매년 균형예산을 이룩했다. 그러면서도 시의 커뮤니티 서비스, 노인 서비스를 1달러도 삭감하지 않았다. 시 직원도 단 한 명 해고하지 않았다. 시 관련 세금도 인상하지 않았다. 시장이 된 뒤 첫 시정연설에서 이 3가지를 약속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지켜오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재정악화에도
내부효율 높여 매년 균형 예산
시 직원 해고않고 증세도 안해

-무일푼으로 이민 와서 미국의 시장이 되었다.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이민 와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다 보니, 나도 몰랐던 내 잠재력을 발견했다. 그 잠재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내가 시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람은 불굴의 정신력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본다. 가능성의 힘이다. 자신감을 갖고 남을 위해 봉사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결실도 아주 크게 나타나는 것 같다.”

-1977년 이민을 와서 전자제품 판매회사인 ‘서킷시티’의 판매왕도 됐다. 어떻게 판매왕을 단시일에 할 수 있었나?

“나보다 먼저 이민 온 형을 쫓아 막연히 미국으로 이민 왔다. 이민 온 지 3개월 만에 어렵게 영업사원으로 첫 직장을 갖게 됐다. 시간당 2.5달러를 벌었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달에 400달러라도 번다. ‘판매왕이 되겠다’, 이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 밥 먹고 사는 게 가장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것, 그 생각밖에 없었다. 최선을 다해 일하다 보니 응답이 크게 나오더라. 또 물건을 팔려면 신뢰를 얻어야 되지 않나? 돌이켜보면 은연중에 시장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일 안 하면 밥을 못 먹으니까 열심히 일했고, 그러다 보니 판매왕도 됐다. 가장 우수한 실적을 쌓은 매니저도 되었고. 그런 것들이 시장이 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주었던 게 아닌가 싶다.”

-정치할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나는 원래 ‘정치 무끼’(정치에 적합한 성향)가 아니다. 성격도 조용한 스타일이다. 그런데 엘에이 폭동을 겪으면서, 그때 오렌지카운티에서 신발가게를 하던 나는 별다른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상처를 많이 받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너무 나 자신, 내 가족만을 위해 산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내가 한국 사람이니 한국 사람을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한미연합회, 한미민주당협회, 한미장학회 등에서 활동했다. 그때도 정치활동이 아닌 사회봉사 활동이었는데, 하다 보니 정치로 이어졌다.”

-향후 장기적인 정치적 방향은?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고자 했다면, (어바인이 아닌) 한인들이 많이 사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아야 했다. 공화당세가 강한 오렌지카운티에서는 민주당 갖고는 매우 힘들다. 호남 출신이 영남지역에서 출마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본래부터 정치에 뜻이 있었다면 지역을 잘 골라 거기서 나왔을 것이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내가 살고 있는 오렌지카운티에서 도전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민주당과 공화당 중 민주당을 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영향을 받았다. 피상적이었지만, 당시에는 젊은이의 기수였다. 고등학교 1~2학년 때 존 에프 케네디 전기를 들고 다녔다. 그런 영향도 받았다. 또 엘에이 폭동을 겪으면서 ‘소수계 민족을 그래도 보호해주는 정당은 민주당이다’라고 생각해 민주당에 등록했다.”

-한인들이 인구는 많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필리핀, 베트남 교민들보다 오히려 떨어진다고 한다.

“사실이다. 한인들의 응집력이 약하다. 개인적으로는 우수한데, 뭉치지 못한다. 어바인에도 중국 커뮤니티는 단체가 여러 개 있다. 다민족 행사에 가면 한인단체는 거의 없다. ‘왜 한인들은 참여를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영어에 덜 적극적이고, 더불어 같이 잘 살자는 마음가짐이 다른 커뮤니티보다 좀 덜하다. 아쉽다. 그래서인지 미 주류사회는 아직 한국이란 나라를 모른다.

가끔 한국 텔레비전을 통해 다문화 가정에 대한 다큐멘터리 ‘러브 인 아시아’ 같은 프로그램을 종종 본다. 아직도 외국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다문화 사회로 가면 한 껍질 벗겨야 하는, 좀더 진화되고 발전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산업은 눈부시게 발전하는데, 우리 국민 의식 구조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인들 다민족 행사 참여 드물어
정치 영향력 베트남쪽보다 약해
한국도 진보된 다문화사회 돼야

-재외 국민 투표권 문제로 교민사회 분열을 걱정하는 소리도 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한인들의 마음은 항상 한국에 가 있으니까. 한국 정치에 관심 있지, 미국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 나 자신도 한국 프로그램을 더 보고 싶어하고, 오래 살면 살수록 한국 음식을 더 먹고 싶고.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왕 미국에서 살자고 왔으면, 미국 선거, 미국 정치에 더 관심을 두는 게 맞다. 그래야 이민사회의 혜택, 미국 공화당·민주당 정책이 바뀜으로 영향을 받는 자영업자가 많다.”

-가족은?

“아들과 딸이 있다. 32살, 30살이다. 아들은 어바인의 한 회사에서 매니지먼트 일을 맡고 있고, 딸은 변호사로 대형 로펌에서 3년간 일하다 지금은 인터넷 영화회사의 고문변호사로 있다. 자식들이 잘 자라준 것, 그것이 (시장이 된 것보다 더 큰)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석희(59)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
강석희(59)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
미 이민 역사상 첫 한인1세 직선 시장…‘어바인의 오바마’ 별명

강석희는 누구

강석희(59)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은 미 한인사회에서는 ‘아메리칸드림’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는 고려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먼저 미국 이민을 온 형을 따라 1977년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막 결혼한 신부와 함께 그는 처음 몇 달간 형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감자 깎는 일을 하다, 무작정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누나네의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 8명이 함께 살면서 몇 달간 취직을 못해 방황하던 시기가 강 시장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이는 이후 인생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겨낼 수 있는 힘으로 작용했다. 수줍음 많은 성격으로 영업사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렵게 전자제품 판매회사인 ‘서킷시티’에 입사했고, 5달 만에 판매왕에 올랐다. 그리고 입사 2년 반 만에 매니저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후 뛰어난 실적에도 계속 승진에서 누락되는 인종적 ‘유리천장’을 경험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신발가게를 운영했다. 가게 문을 닫는 날은 1년에 딱 사흘이었고, 고객이 원하는 신발을 구하기 위해 100㎞ 떨어진 매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이민생활에 정착할 무렵인 1992년 엘에이 폭동을 경험하면서 그는 자신이 너무 “나 혼자 먹고사는 데만 바빴다”는 반성을 하며 한인사회를 위해 일하기로 마음먹고 봉사활동에 나섰다. 그리고 12년 뒤인 2004년 시의원 출마 제의를 받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선거구 6만가구 중 2만가구를 직접 방문하는 등 온몸을 바치는 선거운동 덕분에 어바인의 시의원이 됐고,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8년 어바인 시장에 출마해 한국인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한인 1세 직선 시장이 되었다. 선거 10개월 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후보에게 10%포인트나 뒤졌으나, 역전시켰다. 당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강 시장에게 ‘어바인의 오바마’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2010년 재선에서는 64.1%의 지지를 얻어 어바인 시장 선거 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중학교 입학시험에 낙방할 정도로 “별다른 재능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두 배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재능보다 능력을 믿는다. 내 인생에 거저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을 더했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 9만9천달러 ‘최상위권 도시’

어바인시는

로스앤젤레스 남쪽으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어바인시는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오렌지카운티에 있다. 어바인 목장이라고 불리는 넓은 평원에 1971년 도시가 들어선 전형적인 계획도시다.

인구 21만여명의 어바인은 ‘교육도시’로 유명하다. 공립학교의 평균 성적은 캘리포니아에서 최고 수준을 기록해 한국의 조기유학생들이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도심에 술집이 없고 음란물 대여점이 없는, 노숙자나 폭주족이 없는 거의 유일한 도시다.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9만9천달러로 미국내 최상위권에 속한다.

어바인은 또 오렌지카운티의 산업 중심지인 ‘산업도시’다. 1만6500여개의 대·중소기업이 들어와 있고,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게임회사 블리자드 본사를 비롯해 <포천>이 선정한 100대 기업 중 36개사의 본사가 있다. 한국 기업 중에서도 기아자동차 미주본사, 현대자동차 디자인센터, 삼성전기, 삼성에스디아이(SDI), 네이버 미주본사 등이 어바인에 있다. 그렇지만 어바인은 도시가 제공하는 별다른 면세 혜택은 없다.

어바인은 또 도시의 녹지 비율이 40%에 이르는 ‘환경도시’다. 환경규제가 엄격하고, 자전거도로를 잘 구축해 놓았다. 어바인은 미국내 인구 10만명 이상 도시 가운데 가장 강력범죄 발생이 적어 연방수사국(FBI)으로부터 2005년부터 8년째 ‘가장 안전한 도시’로 지정됐다.

어바인/권태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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