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의 결론은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 노동자와 조폐공사 노조원 9명은 1999년 12월10일 서울 역삼동 강원일 특별검사 사무실에서 강 특검의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⑬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하)
⑬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하)
“검사를 수사하는 것이니
검찰 인사들은 사건에서 빼자”
압수서류를 빼앗긴 다음날
나는 강 특검에게 제안했다가
수사권을 뺏기고 특검을 떠났다 진형구 부장은 이미 자백을 했고
수사기록엔 증거가 넘쳤다
그런데도 결론은 걸작이었다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책임”
특검은 아무도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도로 검찰에 넘겨버렸다 “스님, 실체로서 ‘나’도, 열반도 없는데 누가 어떤 열반에 듭니까. 그저 실체 없이 변해서 흘러갈 뿐. 연기(緣起)의 이치가 그러하다는 걸 ‘잘 알면’ 그뿐이지요. 성불(成佛)이라, 불성(佛性)이라 신비화하니까 또 무슨 초월의 세계가 저 멀리 어디에 있는가 찾게 되네요.” 세상 이치를 꼭 알고 싶은 에니어그램 5번 유형들이나 관심을 가질 법한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들. 이걸 안주삼아 막걸리잔을 쉼 없이 들고 놓다가 그만 음주운전하고 경찰에 붙들린 순간, 나는 알고 지내던 경찰·검사들에게 전화할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 아는 이들 전화번호를 누를 정도로 정신이 있었다면 어디 운전을 했겠는가. 파업유도 특검 수사 대상 검사들도 이런저런 경로로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도둑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검사들도 제가 수사를 받게 되면 별수 없었다. 이렇게 이리저리 연락을 해오는 정황을 나는 그들이 ‘자백’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옷로비 특검은 어릿광대, 파업유도 특검은 햄릿” 1999년 10월, 사상 첫 특검은 두 개가 출발했다.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 남편 선처를 부탁하려고 검찰총장 부인 옷값을 대신 지불한 이른바 ‘옷로비’ 특검도 같이 시작되었다. 법무법인 덕수에서 같이 근무하던 최병모 변호사가 그 특검에 임명되었다. 최 변호사는 판사 시절 피고인 인권 보호 차원에서 직권 보석을 많이 해서 검찰에 ‘악명’을 날렸다. 법률 이론에 아주 밝은 분이었다. 그분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옷로비 특검은 어릿광대고, 파업유도 특검은 햄릿이다.’ 그렇다. 재벌 부인이 검찰총장 부인 옷값을 대납했나 안 했나 하는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흥밋거리로 그만이었지만, 여기에 온 나라가 달려들어 특검까지 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에 비해 파업유도 특검은 해방 이후 수십년간 국가 공권력이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어 노동자들을 탄압해온 잘못을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조금씩이라도 고쳐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두 개의 특검을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해야 했다. 당장 소속 변호사들을 특별수사관으로 보내고, 특검 진행이 국민 뜻에 맞도록 지켜낼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워낙 국민적 관심이 옷로비로 쏠리자 민변도 주로 그쪽에 지원을 하는 게 아닌가. 내가 특별수사관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민변 변호사들을 대개 옷로비 쪽으로 보냈다. 나는 민변 창립 멤버였는데 그때는 많이 섭섭했다. 민변으로서는 당연히 노동탄압과 검찰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터였다. 나는 민변을 찾아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모임을 탈퇴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동·시민운동단체 추천을 받아 민변의 김동균, 고태관 변호사, 참여연대 김형완,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래가 특별수사관으로 와서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실 무엇보다도 대한변협이 두 특검을 바꾸어 추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강원일 특검은 퇴직 뒤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검사로 여기던 분이라, 검찰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파업유도 특검 역할을 하기에는 원초적 한계가 있었다. 최병모 특검이 이쪽으로 왔더라도 일을 풀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리라. 10월18일 대통령 임명장을 받자마자 나는 즉시 ‘검찰특별수사본부’ 수사기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단 하루 만에 쾌재를 불렀다. 거기에는 파업유도 증거들과 심지어는 검찰의 공문서 변조 의혹까지 담겨 있었다. 애초 문건에는 ‘임금 삭감안 철회, 구조조정계획 제시 유도’라고 씌어 있었다. 임금을 둘러싼 쟁의는 합법이니 구조조정으로 쟁점을 바꾸고, 이때 파업을 하면 불법이므로 그때 검찰이 나서서 노조를 손봐주겠다. 이게 파업유도로 문제가 되자 담당 검사는 문구를 슬쩍 바꾸었다. ‘구조조정계획 제시 유도’를 ‘구조조정관련 협의 지속추진 결정’으로. 검사도 처벌을 피하려고 문서를 변조하는구나! 한국조폐공사는 돈이나 수표를 찍어내는 곳이다. 옥천과 부여, 경산에 공장이 있고, 직원 2600여명의 민주노총 주요 공기업 사업장이었다. 1997년 아이엠에프 이후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이러한 정부 정책을 앞장서서 수행하기로 마음먹고 조폐공사를 그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그는 <한겨레> 강희철 기자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가 만든 거”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불법을 막아야 할 검찰이 거꾸로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하도록 유도하고, 다시 이를 잡아다 처벌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니.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의 도덕성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다. 아, 검사도 처벌 피하려 문서 변조 하는구나 진 부장은 이미 기자들 앞에서 공개 자백을 했고, 수사기록에는 이 자백을 뒷받침해주는 대검과 대전지검 공안부 파업유도 관련 문서들이 줄줄이 들어 있었다. 나는 특검 시작 하루 만에 증거들을 따로 모아 철을 만들고 여유를 부렸다. 김형완 특별수사관에게 “우리 한달 동안 놀다가 한 보름 수사하면 될 거 같은데” 하고 농담도 했다. 특검에서 따져볼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구조조정의 정당성 여부. 물론 이 부분은 법적으로 필수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판 전체를 크게 평가해볼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본론인 검찰의 파업유도 여부. 대검 공안부에서 더 나아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그리고 경제부처, 청와대 어느 선까지 개입이 되어 있는지. 나는 며칠 만에 대체적인 수사방향과 계획을 만들어 강 특검과 의논했다. 대전지검과 대검 공안부 검사들의 개입은 확실하고 증거도 이미 확보되어 있으며, 공안 합수부와 윗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는 게 필요하다는 내 의견에 강 특검도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중요한 제안을 했다. 검사들을 기소하려면 아무래도 특검에 파견 나와 있는 공안부 출신 부장검사와 검사, 검찰 직원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안부 근무를 했던 특수수사관 변호사에게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 친정을 수사해야 하는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의미도 있었다. 이 역시 강 특검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황을 낙관했다. 부장검사는 나와 연수원 동기였다. “당신이 친정에 돌아가면 껄끄러울 수도 있으니 구체적 수사 내용은 모르는 편이 낫지 않겠나.” 멀찍이 서 있어 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흔쾌히 자신도 그게 편하다며 고맙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에 따라 전체 수사관 회의에서는 자세한 수사상황은 안건에 올리지 않고 행정절차 같은 문제만 논의했다. 그래도 민간 출신 수사관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했다. 중요한 논의는 밖에서 따로 모여 했고 간단한 이야기도 건물 바깥까지 나가서 했다. 수사 전문가인 검사들을 상대로 한 특검이니만치 도청 우려까지 철저히 대비해야만 했다. 일부에서는 민간 출신 수사관들의 수사경험 부족 때문에 검사 파견이 필수적이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민간 출신 수사관들의 수사계획서는 지금 보아도 훌륭하다. 옷로비는 몰라도, 검찰이 수사대상인 파업유도 특검은 검사 파견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민간 출신들은 특히 변호사 사무실 문까지 닫고 온 전직 검사를 제일 경계했다. 왜 특검에 들어온 걸까.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10월28일 대전 검사들은 그의 안내로 내 방에 쳐들어와 강 특검의 지시 아래 전날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한 서류들을 돌려받아 갔다.
네 가지 사항 요구에 “협박하는 거냐?”
다음날인 10월29일, 나는 민간 출신 수사관들과 의논해서 네 가지 사항을 회의 석상에서 공식 요구했다. 첫째, ‘특검의 1차 수사 대상은 대검 공안부다.’ 이건 법에 적혀 있는 당연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특검 내에서는 실제 파업유도를 기획해 실행에 옮긴 검찰보다는, 구조조정을 기획한 경제부처나 청와대를 겨냥하려는 기미가 보였다. 구조조정 자체는 법 위반의 문제가 아니고 정책의 차원이었으므로 정치적 책임을 묻는 건 별론으로 하고 이게 특검의 주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이건 검찰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꼼수로 보였다.
둘째, ‘검찰 관련 인사들의 사건 간여 배제’. 셋째, ‘특검보와 수사관들이 파업유도 간여자로 판단한 공안합수부 관계자들은 모두 기소한다.’ 이것 역시 특검 목적상 당연한 거였지만 강 특검은 이와 달리 제도개선과 화합을 중시했기에 나온 거였다. 넷째,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 유지.’ 이는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공격하려는 야당과 옹호하려는 여당, 양쪽에서 특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 자리에서 강 특검은 ‘협박하는 거냐’며 나의 수사권을 박탈했다. 그리고 11월1일 전체 수사관 회의에서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 사람은 밖으로 나가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나와 김동균, 고태관 변호사, 김형완, 오창래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순간 파업유도 특검은 사실상 물건너간 거였다. 뒤에 대한변협 중재로 우리는 두번째 요구사항만 들어주어도 특검에 복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특검 수사는 파견 검사와 검찰 출신 수사관들이 진행했고, 구조조정을 한 경제부처 장관 등이 불려 다녔다.
특검의 결론이 참으로 걸작이었다. 애초 검찰 수사 결과는 진형구 공안부장이 강희복 사장을 밀어붙여 구조조정을 강행하게 함으로써 회사업무를 방해하고 노사관계 3자 개입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 부장 단독 범행이 아닐 테니 대검 공안부 등을 더 수사하라고 시작한 특검의 결론은 전혀 엉뚱했다. 진 부장은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강 사장이 단독으로 무리한 통폐합을 한 것으로, 이는 회사에 대한 업무방해란다. 검찰은 이미 진 부장을 기소했는데 진 부장은 잘못이 없고 강 사장 단독 책임이다? 검찰도 황당해했다. 재계도 발끈했다. 경영자의 고유 권한인 구조조정이 회사에 대한 업무방해라고? 한편 공안부 검사들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파업유도를 한 양 업적으로 부풀린 거고 이건 허위공문서 작성죄란다.
대검 공안부장이 기자들 앞에서 공공연히 자백한 건 주정뱅이 헛소리고, 그 말에 부합하는 검사들이 만든 수많은 공문서도 다 거짓말을 써 놓은 거라고? 아마 발표한 자신들도 믿지 못했을 거라. 여론이 빗발치자 대전 공안검사 둘은 3자 개입이라고 결론을 바꾸었다. 그나마 특검은 아무도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도로 검찰에 넘겨 버렸다.
이건 슬픈 코미디였다.
그때 특검이 이걸 제대로 파헤쳐 일벌백계했더라면, 김대중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재검토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작은 보탬이라도 되지 않았을까.
그 특검 시절은 나에게 굴욕으로, 슬픔으로,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검찰 인사들은 사건에서 빼자”
압수서류를 빼앗긴 다음날
나는 강 특검에게 제안했다가
수사권을 뺏기고 특검을 떠났다 진형구 부장은 이미 자백을 했고
수사기록엔 증거가 넘쳤다
그런데도 결론은 걸작이었다
“조폐공사 사장의 단독 책임”
특검은 아무도 기소하지 않고
사건을 도로 검찰에 넘겨버렸다 “스님, 실체로서 ‘나’도, 열반도 없는데 누가 어떤 열반에 듭니까. 그저 실체 없이 변해서 흘러갈 뿐. 연기(緣起)의 이치가 그러하다는 걸 ‘잘 알면’ 그뿐이지요. 성불(成佛)이라, 불성(佛性)이라 신비화하니까 또 무슨 초월의 세계가 저 멀리 어디에 있는가 찾게 되네요.” 세상 이치를 꼭 알고 싶은 에니어그램 5번 유형들이나 관심을 가질 법한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들. 이걸 안주삼아 막걸리잔을 쉼 없이 들고 놓다가 그만 음주운전하고 경찰에 붙들린 순간, 나는 알고 지내던 경찰·검사들에게 전화할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 아는 이들 전화번호를 누를 정도로 정신이 있었다면 어디 운전을 했겠는가. 파업유도 특검 수사 대상 검사들도 이런저런 경로로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도둑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검사들도 제가 수사를 받게 되면 별수 없었다. 이렇게 이리저리 연락을 해오는 정황을 나는 그들이 ‘자백’하는 걸로 받아들였다. “옷로비 특검은 어릿광대, 파업유도 특검은 햄릿” 1999년 10월, 사상 첫 특검은 두 개가 출발했다.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 남편 선처를 부탁하려고 검찰총장 부인 옷값을 대신 지불한 이른바 ‘옷로비’ 특검도 같이 시작되었다. 법무법인 덕수에서 같이 근무하던 최병모 변호사가 그 특검에 임명되었다. 최 변호사는 판사 시절 피고인 인권 보호 차원에서 직권 보석을 많이 해서 검찰에 ‘악명’을 날렸다. 법률 이론에 아주 밝은 분이었다. 그분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옷로비 특검은 어릿광대고, 파업유도 특검은 햄릿이다.’ 그렇다. 재벌 부인이 검찰총장 부인 옷값을 대납했나 안 했나 하는 문제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흥밋거리로 그만이었지만, 여기에 온 나라가 달려들어 특검까지 할 정도의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에 비해 파업유도 특검은 해방 이후 수십년간 국가 공권력이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어 노동자들을 탄압해온 잘못을 만천하에 드러내 놓고 조금씩이라도 고쳐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두 개의 특검을 떠받치는 기둥 노릇을 해야 했다. 당장 소속 변호사들을 특별수사관으로 보내고, 특검 진행이 국민 뜻에 맞도록 지켜낼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워낙 국민적 관심이 옷로비로 쏠리자 민변도 주로 그쪽에 지원을 하는 게 아닌가. 내가 특별수사관으로 데려가고 싶었던 민변 변호사들을 대개 옷로비 쪽으로 보냈다. 나는 민변 창립 멤버였는데 그때는 많이 섭섭했다. 민변으로서는 당연히 노동탄압과 검찰의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터였다. 나는 민변을 찾아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모임을 탈퇴하겠노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노동·시민운동단체 추천을 받아 민변의 김동균, 고태관 변호사, 참여연대 김형완,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래가 특별수사관으로 와서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사실 무엇보다도 대한변협이 두 특검을 바꾸어 추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강원일 특검은 퇴직 뒤에도 여전히 스스로를 검사로 여기던 분이라, 검찰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파업유도 특검 역할을 하기에는 원초적 한계가 있었다. 최병모 특검이 이쪽으로 왔더라도 일을 풀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으리라. 10월18일 대통령 임명장을 받자마자 나는 즉시 ‘검찰특별수사본부’ 수사기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단 하루 만에 쾌재를 불렀다. 거기에는 파업유도 증거들과 심지어는 검찰의 공문서 변조 의혹까지 담겨 있었다. 애초 문건에는 ‘임금 삭감안 철회, 구조조정계획 제시 유도’라고 씌어 있었다. 임금을 둘러싼 쟁의는 합법이니 구조조정으로 쟁점을 바꾸고, 이때 파업을 하면 불법이므로 그때 검찰이 나서서 노조를 손봐주겠다. 이게 파업유도로 문제가 되자 담당 검사는 문구를 슬쩍 바꾸었다. ‘구조조정계획 제시 유도’를 ‘구조조정관련 협의 지속추진 결정’으로. 검사도 처벌을 피하려고 문서를 변조하는구나! 한국조폐공사는 돈이나 수표를 찍어내는 곳이다. 옥천과 부여, 경산에 공장이 있고, 직원 2600여명의 민주노총 주요 공기업 사업장이었다. 1997년 아이엠에프 이후 김대중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은 이러한 정부 정책을 앞장서서 수행하기로 마음먹고 조폐공사를 그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 그는 <한겨레> 강희철 기자에게 “조폐공사 파업은 사실 우리가 만든 거”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불법을 막아야 할 검찰이 거꾸로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하도록 유도하고, 다시 이를 잡아다 처벌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니.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권의 도덕성을 단숨에 날려버릴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었다. 아, 검사도 처벌 피하려 문서 변조 하는구나 진 부장은 이미 기자들 앞에서 공개 자백을 했고, 수사기록에는 이 자백을 뒷받침해주는 대검과 대전지검 공안부 파업유도 관련 문서들이 줄줄이 들어 있었다. 나는 특검 시작 하루 만에 증거들을 따로 모아 철을 만들고 여유를 부렸다. 김형완 특별수사관에게 “우리 한달 동안 놀다가 한 보름 수사하면 될 거 같은데” 하고 농담도 했다. 특검에서 따져볼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구조조정의 정당성 여부. 물론 이 부분은 법적으로 필수적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판 전체를 크게 평가해볼 필요는 있었다. 그리고 본론인 검찰의 파업유도 여부. 대검 공안부에서 더 나아가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그리고 경제부처, 청와대 어느 선까지 개입이 되어 있는지. 나는 며칠 만에 대체적인 수사방향과 계획을 만들어 강 특검과 의논했다. 대전지검과 대검 공안부 검사들의 개입은 확실하고 증거도 이미 확보되어 있으며, 공안 합수부와 윗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는 게 필요하다는 내 의견에 강 특검도 전적으로 동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중요한 제안을 했다. 검사들을 기소하려면 아무래도 특검에 파견 나와 있는 공안부 출신 부장검사와 검사, 검찰 직원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공안부 근무를 했던 특수수사관 변호사에게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 친정을 수사해야 하는 어려움을 덜어주자는 의미도 있었다. 이 역시 강 특검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상황을 낙관했다. 부장검사는 나와 연수원 동기였다. “당신이 친정에 돌아가면 껄끄러울 수도 있으니 구체적 수사 내용은 모르는 편이 낫지 않겠나.” 멀찍이 서 있어 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흔쾌히 자신도 그게 편하다며 고맙다는 소리까지 했다. 그에 따라 전체 수사관 회의에서는 자세한 수사상황은 안건에 올리지 않고 행정절차 같은 문제만 논의했다. 그래도 민간 출신 수사관들은 보안 유지를 위해 전전긍긍했다. 중요한 논의는 밖에서 따로 모여 했고 간단한 이야기도 건물 바깥까지 나가서 했다. 수사 전문가인 검사들을 상대로 한 특검이니만치 도청 우려까지 철저히 대비해야만 했다. 일부에서는 민간 출신 수사관들의 수사경험 부족 때문에 검사 파견이 필수적이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민간 출신 수사관들의 수사계획서는 지금 보아도 훌륭하다. 옷로비는 몰라도, 검찰이 수사대상인 파업유도 특검은 검사 파견을 받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민간 출신들은 특히 변호사 사무실 문까지 닫고 온 전직 검사를 제일 경계했다. 왜 특검에 들어온 걸까. 우려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10월28일 대전 검사들은 그의 안내로 내 방에 쳐들어와 강 특검의 지시 아래 전날 임의제출 형식으로 압수한 서류들을 돌려받아 갔다.
황당한 특검의 피해자? 강희복 전 조폐공사 사장은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에 대한 업무방해를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