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명선 사회부 24시팀 기자 torani@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일단 생김새는 확실히 친절한 진명선 기자라고 합니다. 지난 4일 오전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을 관람하려다 관객들의 항의를 받고 퇴장한 ‘현병철 극장 굴욕 사건’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드리려고 해요. 당시 극장을 찾은 인권단체 활동가는 관객들에게 현 위원장과 용산참사의 인연을 설명했고, 장관급 인권위원장이 관객들로부터 내쫓기는 굴욕을 당했지요. 대체 무슨 인연일까요?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의 보온병 굴욕,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굴욕 등 그동안 무수한 스타를 배출한 굴욕의 세계에서 ‘현병철’은 나름 입지가 탄탄해요. 인권위원장인데 ‘인권 문외한’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예요. ‘살색’이 인종차별적이라며 ‘살구색’으로 바꿔달라는 청원을 초등학생이 하는 시대에, 대학교수 출신 현 위원장은 흑인을 ‘깜둥이’라고 표현한 사실이 들통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요.
이런 현 위원장에게 ‘용산참사’는 ‘나에게 인권은 이런 거다’라는 일종의 커밍아웃을 한 계기가 된 사건이에요.
극장에서는 현 위원장이 강제로 쫓겨났지만, 현 위원장 스스로 용산참사를 논의하던 자리를 박차고 퇴장한 적이 있답니다. 2009년 12월28일 인권위가 용산참사 관련 재판부에 ‘경찰 진압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었다’는 의견을 전달해야 한다는 안건이 인권위원 11명이 모이는 전원위원회에 상정돼요. 과반수가 의견 표명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자, 갑자기 현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회의를 폐회시키고 퇴장해 버려요. 당시 현 위원장은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죠.
2009년 1월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비극에 대해 검찰과 사법부는 당시 망루에서 농성했던 철거민에게만 책임을 물었어요. 철거민 개인, 경찰 개인으로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호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강제철거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 각종 진압장비로 무장한 공권력의 충돌로 보면 적군을 상대로 한 전쟁을 방불케 했던 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경찰은 책임을 면할 수 없지요.
사실 이런 게 하루이틀 된 일은 아니에요.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똘똘 뭉쳐 가진 자와 있는 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하지 않아요. <부당거래>라는 영화도 있잖아요.
인권위는 달라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공권력에 의한 국민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라’고 돼 있어요. 인권위는 태생이 공권력의 편이 될 수 없어요. 인권위는 교도소 편이 아니라 재소자 편이에요. 법을 어기고 죄를 저지른 재소자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인권위의 전제거든요. ‘법’, ‘법치주의’ 이런 거 좋아하시는 분들은 씁쓸하시겠지만, 인권위에는 그게 ‘법’이니 받아들이셔야 해요. 인권위는 용산참사 유가족의 편을 들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이에요.
하지만 인권위 수장인 현 위원장께서는 유가족이 아닌 공권력의 편에 섰어요. 2009년 12월 용산참사 관련 재판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 ‘경찰 진압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었다’는 의견을 내자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중단시키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대요. 결국 이 일을 맡았던 인권위 직원은 사직서를 썼어요.
그로부터 11개월 뒤 9명의 철거민은 경찰 1명을 사망에 이르게 한 데 대해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됩니다.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인권위원장으로 재임하면서 현 위원장은 “이거 꼭 해야 하나”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킵니다. 직원들이 인권위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올린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 가장 흔하게 보인 반응이라네요.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타는 망루에서 뛰어내려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지난 3년간 10여차례 수술로 영구장애를 안은 김영근·지석준씨의 항소심이 오는 10일 재개됩니다. 검찰은 부상이 심한 두 분을 당시 구속시키지 않았다가 뒤늦게 재판에 넘겼습니다.
현 위원장의 임기도 끝나지 않습니다. 원래 오는 17일이 임기 만료인데, 이명박 대통령이 현 위원장의 연임을 결정했거든요. 16일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두 개의 문> 관람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청문회 예습이 아니냐는 것이지요.
<두 개의 문> 상영관에서 현 위원장이 딱 걸렸을 때, 인권단체 활동가는 관객들에게 이런 전사를 설명했지요. 관객들은 현 위원장에게 “나가라”고 했고요. 여러분은 현 위원장에게 <두 개의 문>을 볼 자격을, 아니 인권위원장으로서의 자격을 주시렵니까?
진명선 사회부 24시팀 기자 torani@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박근혜 캠프 이상돈 “5.16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 없어”
■ ‘내 가족 3명 죽였지만, 유영철 사형은 안됩니다’
■ “동양 최대 규모” 룸살롱 압수수색 현장가보니
■ 그날 ‘북극곰’ 얼음이는 쾅쾅쾅 철문을 쳤습니다
■ [화보] 안철수의 침묵, 아직…
■ 박근혜 캠프 이상돈 “5.16 쿠데타라고 폄하할 수 없어”
■ ‘내 가족 3명 죽였지만, 유영철 사형은 안됩니다’
■ “동양 최대 규모” 룸살롱 압수수색 현장가보니
■ 그날 ‘북극곰’ 얼음이는 쾅쾅쾅 철문을 쳤습니다
■ [화보] 안철수의 침묵, 아직…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