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철 사회부 24시팀 기자 fkcool@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2012년을 맞아 친철한 기자로 거듭날 마음을 굳게 먹고 있던 차에, 때마침 들어온 섭외를 냉큼 받아챙긴 박현철 기자입니다. 지난 화요일부터 어제까지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를 했습니다. 오늘은 대법관이란 분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그런 일이 있었어?’라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겁니다. 지난 한주 동안 신문·방송의 주요 뉴스들은 ‘한물간 권력’ 이상득 전 의원의 구속이나 ‘유력 차기권력’ 박근혜 의원의 대선 출정식으로 채워졌으니까요. 청문회를 치른 4명의 후보자는 이 전 의원과 박 의원에게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형님권력’은 5년도 채 안 돼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자그마치 6년 동안 대한민국 사법부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바로 대법관입니다. 2012년 7월 현재 우리나라엔 2731명의 판사들이 있습니다. 그중 대법관은 14명, 14명의 대법관 중 대법원장·법원행정처장을 뺀 12명의 대법관이 4명씩 3개의 소부를 이뤄 최종심 재판을 합니다. ‘대법관이 누가 되든 내 삶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 싶은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일 겁니다. 형사사건이나 개인간의 민사소송에 휘말리지 않는다면 법원에 갈 일이 없는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대법원에 의해 결정되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후보 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운명도 대법원 손에 넘어갔습니다. 시민들이 직접 뽑은 교육감의 ‘생사’가 대법관들의 판단에 달린 겁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공사와 관련해 환경단체나 주민들이 제기한 소송도 대법관들의 판단에 따라 운명을 달리합니다.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을 상대로 한전이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사실을 알고 계시죠? 한전은 하루에 100만원씩 공사 방해에 따른 과태료를 부과해달라며 가처분 신청도 했는데요, 이 사건들 모두 결국 대법원이 최종 판단하게 될 겁니다. 어르신들의 목숨이 대법관들 손에 달린 거죠. 용산참사나 쌍용차 사태, 모두 대법원을 거쳐갔습니다.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보지만 그걸 들어줘야 할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일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은 법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대법관 구성이 다양해야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겠죠.
이쯤 되면 대법관이란 자리가 단순히 사법부 최고권력 집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걸 아시겠죠? 그래서인지 많은 판사가 대법관의 꿈을 안고 재판을 합니다. 독자님들 중에 혹시 판사를 개인적으로 만날 일이 생긴다면, 그런데 딱히 나눌 말이 없다면, “판사님 장차 대법관 하셔야죠”라고 해보세요. 빈말인지 알더라도 좋아할 겁니다.
아무나 오를 수 없는 자리인 만큼 청문회 과정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이번에 청문회를 치른 고영한·김병화·김신·김창석 네 후보자도 과거 위장전입·부동산 투기·종교·재벌 편향적 판결 등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특히 검찰 출신 김병화 후보자는 저축은행 수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안에서도 ‘불가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낙마하는 최초의 대법관 후보자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신영철 대법관 얘길 해야겠네요.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이던 2008년 촛불집회에 참석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재판을 “현행법에 따라 빨리 처리하라”며 형사단독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대법관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의 ‘아킬레스건’ 같은 사건들을 빨리 처리하라며 판사들을 독촉한 것이죠. 말이 좋아 독촉이지 판사들의 재판 독립을 침해하고 재판에 개입한, 사법 역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었죠.
2009년 3월 이메일이 공개되고 단독판사들이 퇴진을 촉구했지만 신 대법관은 버텼습니다. 그가 만약 그 당시에 물러났다면 그는 대법관을 꿈꾸는 판사들의 ‘반면교사’가 되었겠지만, 그는 이제 ‘엠비(MB) 정권의 삼철이’(신영철·현병철·김재철) 중 한명이 되었습니다. 신 대법관의 임기는 아직 3년이나 남았습니다.
헌법에 보장된 대법관의 임기는 6년입니다. 웬만해선 그들을 끌어내릴 수 없어요. 우리 손으로 직접 뽑으면 좋으련만 하루아침에 제도가 바뀌진 않을 테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대법관이 누가 될지, 누가 되어선 안 되는지 관심을 가지고 여론을 만들고, 우리를 대신해 청문회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을 잘 뽑는 일일 겁니다.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함은 물론이고요.
박현철 사회부 24시팀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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