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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그 여름 그는, 왜 저 머나먼 섬 거문도에 갔던 걸까

등록 2012-07-27 13:56수정 2012-07-27 19:24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여흥을 즐기는 이내창(왼쪽)의 생전 모습. 그는 임수경과 전대협 산하 같은 지역 조직에 속해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여흥을 즐기는 이내창(왼쪽)의 생전 모습. 그는 임수경과 전대협 산하 같은 지역 조직에 속해 있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16) 이내창 의문사(상)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씨가
판문점으로 내려온 그날 저녁
거문도 앞바다에 떠오른 주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빽빽한 총학생회 일정도 접고
머리 식히러 그리도 멀리 가서
발 헛디뎌 바다에 휩쓸렸다고?
혹시 정보기관 역공작 과정에서
벌어진 사고는 아니었을까

이슬람교 성전 코란 5장 116절에는 이런 재미난 구절이 있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의 아들 예수야, 네가 백성에게 말하여 하느님을 제외하고 나 예수와 나의 어머니를 경배하라 하였느뇨 하시니. 영광받으소서,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렇게 할 권리도 없나이다. 제가 그렇게 말하였다면 당신께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신은 저의 심중을 아시나 저는 당신의 심중을 모르나니 당신은 숨겨진 것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명한 것 외에는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했나니 나의 주님이요 너희의 주님인 하느님만을 경배하라 하였으며….’

코란에 따르면 예수는 신을 자칭한 적이 없다. 마호메트처럼 여러 예언자 중 한분에 불과하다. 기독교에서도 아리우스파는 예수가 하느님의 피조물이라 하여 이와 같은 견해다. 하지만 하느님과 예수는 동일 본질이라는 삼위일체설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사라졌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보면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코란의 이런 언급 자체가 아마 매우 놀라울 게다.

아니, 영감님들이 내 사무실에서 농성을?

<혹성탈출>이란 영화에서는 원숭이들이 고도의 지능을 지닌 걸로 나온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다.

하느님을 인격신으로 믿는 건 사람들의 한계이자,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생각들은 믿음의 영역에 속하고 사실이나 과학의 영역이 아니니 사람들이 각자 저 믿는 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믿음의 자리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라는 물음이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붓다가 이 세상 참모습이 연기(緣起)라는 걸 알아 깨친 건 믿음이 아니라 사실의 영역, 경험의 영역이다. 세상 모든 사물이며 사건 중에서 홀로 독립해서 변하지 않고, 이게 바로 그 실체요,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물들 사이의 관계, 사물에 대한 인식, 그 어느 것 하나 절대 불변으로 고정되어 있는 건 없다. 삼라만상이 서로 조건으로 얽혀서 끊임없이 변해간다.

이런 연기의 법은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이 가능한 명제다.

시간은 순간들이 모여 이루어지지만 그 어떤 순간도 손에 잡을 수 없는 허깨비다. 그렇다고 시간이 없다고 할 수도 없으니 있지도 없지도 않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선이 쌓여 면을 이루고 면은 실재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어디, 두께가 전혀 없는 선을 현실에서 잡을 수 있기나 한가. ‘없음’이 모여 ‘있음’을 만들어 낸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동전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 눈에는 동전이 분명 수직으로 아래로 떨어진 걸로 보인다. 하지만 기차 밖 들판에 서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동전이 아기 오줌발처럼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어떤 게 진실일까. 직선? 포물선? 동전이 아래로 떨어진 건 단 한번 일어난, 단 한가지 사실이지만, 진실은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 사이의 관계에 따라 직선도 되고 포물선도 된다. 어떻게 한가지 사실이 두가지로 표현되는 건가. 바로 보는 자와 보여지는 대상이 서로 연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과학에선 상대성 원리라 하던가.

연기는 사실의 영역에서 과학에 의해 참이라는 게 차츰 증명되어간다.

무엇이 진실인가, 진상은 무엇인가. 가령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누군지, 누가 저 올레길을 걷던 여자를 죽였는지, 이런 종류의 물음에는 하나의 답만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도 현실에서는 그 답을 찾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텔레비전 드라마는 어김없이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로 먹고산다.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지난 수십년 세월 동안 공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당한 의문의 죽음들을 밝혀 보라고 2000년 10월에 만들어진 국가기구다. 하지만 진상규명, 이게 원천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가족들이 400여일 동안 길거리에서 눈비 맞아가며 농성을 한 결과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해 여름, 유가족 대표 영감님들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조사를 총괄하는 상임위원을 맡아 달라 부탁을 했다. 나는 1년 전 파업유도 특검 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도 이를 완곡히 거절했다. 그리고 그 상황을 피하려고 가족들과 멀리멀리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10여일 만에 돌아와 보니 웬걸, 영감님들이 사무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할 수 없이 수락을 하고 다시 한번 죽을 자리에 들어가고 말았다.

경찰이 이내창씨의 ‘실족익사’ 지점으로 추정한 거문도 유림해수욕장 500m 앞 바위 지대. 경찰은 “발을 헛디뎌 아래 바위에 부딪친 뒤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시신엔 수상한 흔적이 많았다.
경찰이 이내창씨의 ‘실족익사’ 지점으로 추정한 거문도 유림해수욕장 500m 앞 바위 지대. 경찰은 “발을 헛디뎌 아래 바위에 부딪친 뒤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시신엔 수상한 흔적이 많았다.

윗도리는 벗겨지고 이마엔 골절상이

아마 이런 기구는 전무후무할 게다. 80여명의 조사관들 중 반은 공무원, 반은 민간인. 공무원들도 그냥 공무원이 아니고 검사, 법무관, 경찰, 보안사, 국정원, 헌병 등. 바로 의문사 가해자 의심을 받는 힘 있는 권력기관에서 파견 나온 이들이었다. 거기다가 민간 출신들은 이들의 정반대편에 선, 과거 감옥살이나 운동권 경력이 있는 친구들이 많았으니 이건 문자 그대로 ‘적과의 동침’이었다. 민간과 공무원들이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고, 보안사와 헌병이, 경찰과 검찰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를 견제했다.

조사 대상 기관인 안기부 후신 국정원, 경찰, 검찰, 군은 주요 자료를 제대로 내놓지 않아 진상규명을 어렵게 했고, 유족들은 결과가 영 기대에 차질 않아 불만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위원회는 이데올로기와 이해관계로 극단적인 대립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같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아보는 아주 의미있는 실험이었다.

공무원들은 처음에는 나를 무슨 운동권 수괴쯤으로 여기고 내 지휘를 받는 걸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다. 나는 나름대로는 편을 가르지 않고 무엇이 이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인지를 찾아보려고 애썼다. 이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를 판단하는 건 내 몫이 아니고 민간, 공무원 출신 조사관들 몫이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나를 찾아와 속내를 털어놓는 공무원들이 있는가 하면, 민간 출신들 일부로부터는 상임위원이 진상규명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니 내 나름 시늉을 하기는 했던 거지 싶다.

나는 거기 있던 1년6개월 동안, 사람들이 애초 자신이 바라던 목적을 이루기 어려워 보이는 순간이 오면, 그 속사정을 잘 모르는 외부 사람들이나 자기편을 상대로 지지와 명분이라도 얻으려고 합리적 시시비비의 자세를 저버리는 걸 여러 번 보았다. 공무원이고 민간 출신이고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럴 소지가 다분했지만 안 그러려 열심히 노력했다.

돌아보면 정말 아쉬운 사건들이 여럿 있다. 장준하, 박창수, 최종길, 이내창, 신호수 등등.

1989년 8월15일 낮,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청년학생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과 그를 데리러 갔던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남으로 내려왔다. 온 나라에 난리가 났던 바로 그날 저녁 7시께, 저 남쪽 거문도 유림해수욕장에서 중앙대생 이내창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해수욕장 방갈로 5, 6m 앞 바다에 떠 있던 사체 윗도리는 맨몸에다 바지 혁대도 없었다. 이마 오른쪽에는 12㎝×6㎝ 크기의 골절상이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는 이랬다.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이던 이내창은 등록금 동결 및 총장 직선제라는 학내 문제가 잘 안 풀리자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8월14일 밤 안성을 출발해서 기차 편으로 여수로 갔다. 다음날인 8월15일 오전 8시 신영 훼리 배를 타고 거문도에 도착, 오후 2시께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3시30분 선착장에서 나룻배를 타고 유림해수욕장에 갔다. 그리고 부근 암석 해안을 거닐다가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져 바위에 부딪친 후 바닷물에 휩쓸려 죽었다.’

사실 이 사건은 1991년부터 98년까지 무려 7년 동안이나 내 옆방 조용환 변호사가 엄청나게 애를 끓여가며 법정에서 다투어 온 사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내용을 대략 알고 있었기에 위원회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했고 실제로 상당 부분 진전이 있었다.

배에 함께 탄 신원불상 남녀 두명의 정체

조사를 총괄한 나로서는 이 사건은 정보기관이 임수경 방북이 북과의 내통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몰고 가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1990년 무렵은 정보기관들이 이른바 프락치를 활용해서 운동권 정보를 탐지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역공작을 펴서 함정에 몰아넣고 사건을 만들어 낸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학생들을 주사파로 만들고 정작 자신은 전향해서 북한 인권운동을 한다는 김아무개가 평양에 가서 김일성 주석까지 만나고 왔다는 시절이었으니 역공작의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내창은 임수경과 전대협 산하 같은 지역 조직에 속해 있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내창이 무얼 하러 아무 연고도 없는 그 머나먼 남쪽 섬 거문도까지 갔다는 말인가. 그는 8월15, 16, 17일 지역 대표자 회의 참석, 총장 면담, 학생회 집행부 합숙 등의 공식 일정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머리를 식히러 그 먼 섬까지?

8월14일 오후 신원불상 남녀 2명이 학교로 이내창을 찾아왔다. 그리고 이내창은 안성 시내를 몇 차례 갔다 왔다.

8월17일 이내창의 변사 소식을 들은 중앙대 학생 150명과 부총장 등 교수 5명은 여수와 거문도에 내려가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 거문리 선착장에서 사진을 들고 탐문을 벌이던 학생들은 큰 수확을 올렸다. 횟집 2곳을 방문하고 세번째 들른 다방에서, 이내창이 8월15일 오후 거기에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종업원 최아무개는 이내창이 어떤 젊은 여자와 같이 다방에 들어와 사이다를 마셨으며 또다른 젊은 남자는 다방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기다리다가 셋이 같이 갔다는 거였다. 그 무렵 장임원 교수와 다른 학생들은 나룻배 덕성호를 운행하는 선장 이아무개로부터 자신이 8월15일 오후 이내창과 젊은 남녀 2명을 거문리에서 유림해수욕장 부근 방파제까지 태워다 주었다는 진술을 들었다. 이내창은 이들 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유림해수욕장으로 걸어가는 걸 보았다고 나중에 법정에서 증언했다.

한편 여수경찰서는 8월15일 여수에서 거문도까지 이내창을 태우고 온 배의 승선자 명단을 확인했다. 이내창 바로 뒤에 오아무개, 박아무개라는 남녀 두 사람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경찰 역시 이 선장의 진술을 토대로 얼굴을 알고 있는 선장과 함께 이틀 동안 이 두 남녀를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나중에 밝혀지는 대로 젊은 여성, 오아무개는 안기부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8월17일 아침 거문리 선착장에서 경찰은 이 선장의 지목에 따라 여수 가는 배를 타러 나온 오, 박 두 사람을 검문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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