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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노무현 대통령,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이었다면…

등록 2012-09-07 19:27수정 2012-09-09 14:22

퇴임 두 달 전의 뒷모습.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28일 청와대 본관 들머리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퇴임 두 달 전의 뒷모습.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12월28일 청와대 본관 들머리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기다리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0) 노무현 전 대통령 소송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눈은 둘이요, 귀도 둘이요, 코는 하나요, 입도 하나요.’ 요즈음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선문답하나 싶은 동요를 그때 아이들은 열심히 선생님 따라 동작을 해가며 불렀다. 1960년대, 막 입학한 초등학교 1학년 코딱지들에게 숫자 개념을 가르치는 노래였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공부는 초, 중, 고, 대학, 연수원까지 20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 뒤 30년 세월 혼자 공부한 것에 비하면 학교 공부는 공부랄 것도 없단 생각이 든다. 그 공부란 게 책을 통해, 책을 넘어서서 열심히 혼자 궁리를 해야, 세상에서 깨져 보아야 알짜배기 제 것이 되는 법.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상에 크게 깨지고 자신을 바위 아래 던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죽기 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남긴 말이니, 그 무게가 그저 남의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는 데 비할 바가 아니리.

91년 박창수 의문사 사건 때
김문수 의원과 노무현 변호사,
행동대장 격인 나는 동지였다
동지는 떠나고 깃발만 나부꼈다
김문수 의원은 장수천 샘물로
노무현 대통령을 물고 늘어졌다

조중동까지 꼬투리잡기를 하자
청와대에서 재판 의뢰가 왔다
농담조로 좀 깎아달라고 했다
난 이기면 많이 달라고 했다

“김 변호사, 나 좀 덕수에 들어가면 안 될까”
일찍이 싯다르타는 네가지 질문에 침묵으로 답하셨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사람들이 그 답을 알 수도 없다. 설령 답을 안다 해도 당장 눈앞에 닥친 인간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지 못하니 아무 쓸모가 없다.

그래도 나는 그분 가르침 뒤에 계속 진전을 이룬 인류의 성과들을 공부하면서 이 네가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 나섰다.

첫째 물음, 이 세계는 영원한가. 당신께선 침묵하셨지만 현대물리학의 성과에 따르면 이 우주의 역사는 137억년이고 수많은 우주가 났다가 사라진다. 세계는 영원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둘째, 이 세계는 공간적으로 끝이 있는가. 지금의 우주는 맨 처음 한 점에서 시작했지만 모든 별들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멀어져가서 현재 크기는 빛이 10억년 동안 가는 거리다. 그럼 이 우주 바깥은? 없다. 그래도 계속 한 방향으로 가면 도로 제자리이니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도무지 우리 머리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가로와 세로만 있는 2차원에 사는 존재는 높이까지 있는 3차원 같은 구부러진 지구 표면을 죽었다 깨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와 같다. 2차원 존재에게 지구 표면은 가도 가도 그 끝도 밖도 없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셋째, 신체와 영혼, 마음은 같은가. 뇌과학에 의하면 물질인 신체를 떠나 별도의 영혼, 마음이란 없다. 하지만 물질인 뇌신경 다발의 상호작용으로, 물질을 넘어서는 생각, 마음이라는 게 창발적으로 나타났다. 신체와 마음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

뇌에는 자아를 밖의 세계와 구별하여 인식하게 하는 영역이 있다. 고도의 정신집중을 통해 외부 감각 정보들이 유입되는 게 끊어지면 생리적으로 자아와 외부가 구별이 안 되어서 마치 초월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느끼게 된다. 각자 믿는 종교에 따라 신이나 브라만과의 합일, 또는 내가 사라지고 청정한 한 마음을 보았다고 표현하지만, 이건 그저 물질인 뇌의 특정한 상태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면 도로 원점.

넷째,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붓다의 수백년 뒤 제자 나가르주나에 따르면 생사윤회와 열반해탈은 한 치도 다르지 않다. 어디 별도의 여래라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어서, 깨달음을 통해 비로소 어디 별도의 극락 같은 열반의 장소로 가는 게 결코 아니다. 났다가 사라졌다가, 수많은 조건들이 모이고 흩어져 생사(生死)라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연기의 실상, 그래서 세상 만물이, 사건이 하나로 그물처럼 이어져 있는 상태가 바로 열반이니.

지금은 여기까지가 나의 공부 결과다. 이 공부는 앞으로도 계속 변해 가겠지.

법조 선배인 노무현 변호사는 나보다 가방끈이 대학 4년 기간만큼 짧았지만, 그 4년을 혼자 책 보고 궁리하고 깨져 보았을 테니 공부의 양과 질을 그저 가방끈 길이로 잴 건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가방끈 길이로 쉽게 사람을 평가한다.

그래서였을까?

1998년, 99년 무렵 노 변호사는 여러 차례 나에게 우리 덕수합동법률사무소에 들어오고 싶다는 뜻을 비쳤다. “김 변호사, 나 좀 덕수에 들어가면 안 될까.”

“봉하에 한번 찾아가 옛날 이야기를 나누리라, 미루는 새에 그분은 갔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 당사 외부에 대형 펼침막이 붙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봉하에 한번 찾아가 옛날 이야기를 나누리라, 미루는 새에 그분은 갔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당 당사 외부에 대형 펼침막이 붙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정정보도 신청
만일 노 변호사가 경기고등학교에 서울법대를 나왔다면 우리나라 기득권층이, 아니 말년에는 일반 대중들까지도 그를 그렇게 함부로 막 보지는 못했을 거다. 그럼 그가 그렇게 황망하게 가지도 않았을 거다. 아이고, 그놈의 학벌, 그놈의 빽.

5공 청문회 이후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가던 정치인 노무현 변호사에게 덕수는 어느 정도 울타리 노릇을 할 수도 있었다. 1970년대 시작한 가장 오래된 공증인가 합동법률사무소였고, 박정희 정권에 소신을 보이다 물러난 고재호, 유재방 대법관을 필두로 이돈명, 황인철, 김창국, 최병모 변호사 등 인권변론의 대선배들이 맥을 이어갔다. 거기다 시끄러운 후배들도 여럿이었으니까.

나는 이석태, 조용환 변호사와 상의 끝에 노 변호사를 만나 거절을 했다. “노 선배가 우리 사무실에 오시면 노무현 이름에 가려 덕수는 완전히 죽어요. 정치사무실 될 거 같아요.” 말을 꺼내기가 몹시 미안했지만 그렇게 말했다.

그 뒤에 또다시 말이 나와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반동업 비슷하게 일을 꾸렸다. 노 변호사가 자문하던 회사가 수십개였는데 그 사무장을 우리 사무실에 데려다 놓고 관리를 하게 했다. 당시 기업 인수·합병이 유행하기 시작했던 때라 노변이 사건을 맡아오는 ‘찍새’를 하고 우리는 그걸 처리하는 ‘딱새’를 하기로 했다. 실제로 사건 처리는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그는 결국 다른 사무실에 적을 두었다.

2003년 2월 노 변호사가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하고 얼마 안 되어 환경운동 쪽에서부터 일이 터졌다. 1990년에 경부고속철도가 계획되면서 경남 양산 천성산 터널 구간 13㎞와 부산 금정터널 구간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천성산은 자연 늪지가 22개나 있고 사찰이 여럿 있는 청정자연지역이었다. 2002년 대선 때부터 시민단체들은 노 후보에게 전면 구간변경을 요구했고 대통령이 되자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이 노선 재검토 지시 보름 만에 1년에 2조원씩 추가되는 공사비 문제로 재검토를 철회하고 원점으로 돌렸다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그런 적이 없다며 동아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해왔다. 아, 그럼 재검토를 하겠다는 것이구나 하고 반기며 신청을 준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국무총리 산하 노선 재검토 위원회에서 결국 기존 노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 정정보도 신청은 없던 일로 끝났다. 국정 경험이 없다는 걸 감안해도 좀 걱정이 되었다.

9월에는 천성산 공사가 재개되었고 지율 스님의 45일에 걸친 단식과 천성산 도롱뇽들을 원고로 하는 초유의 환경재판이 열렸다. 법원은 도롱뇽은 원고가 될 수 없고 환경영향평가상으로도 별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2003년 5월 무렵에는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이 대통령을 매일 물고 늘어졌다.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땅과 장수천 샘물이라는 회사가 사실은 노 대통령 것인데 형 노건평씨나 다른 이름으로 소유하면서 부동산실명제법을 어기고 투기를 했다는 거였다. 노 후보가 대선 당시 관훈토론회에 나와서 자신이 숨겨 놓은 재산이 나중에라도 드러나면 대통령 자리도 내놓기로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설령 재산을 차명으로 한 게 사실이라 해도 이 정도 일로 막 대통령이 된 사람에게 자리를 내놓으란 건 지나친 억지였다.

김문수 의원은 1991년 박창수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안양병원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무현 변호사, 그리고 행동대장 격인 나와 함께 열심히 노력하던 ‘동지’였다.

이제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꼈다.

김문수 의원 오른팔인 차명진 전 의원과 내 막내동생, 내 고등학교 동창, 이 세 빵잽이들은 함께 모여 부평역 앞에서 ‘한권의 책’이란 운동권 책방을 했다. 그 옛날 우린 차명진을 ‘까치’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대통령의 명예는 금액으로 얼마나 될까
김문수 의원은 노 대통령에 대해 몇 가지 의혹을 더 내놓았다. 장수천 샘물이 빚 때문에 리스회사가 경매에 부쳐 그 돈을 받아간 사실이 있었다. 그런데 김 의원은 장수천에 투입된 공적자금 19억원을 회수하지 못해 국민 세금을 축냈다며 노 의원이 국회의원 신분을 이용해 어떤 압력이나 뒷거래를 했던 게 아니냐고 따졌다. 도대체 공적자금이 투입된 적이 없으므로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더해서 리스회사는 왜 보증인 노무현의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월급과 1350만원 상당 사무실 보증금을 가압류하지 않았느냐고 따졌다. 리스회사가 신용정보회사에 재산조회를 한 결과대로 가압류했던 거고 나중에 다 변제를 받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조선, 동아, 중앙, 한국일보는 이 발언들을 일부씩 받아 기사로 썼다. 이런 식으로 별 근거도 의미도 없는 과거 일로 꼬투리 잡기를 시작하는 건 내가 보아도 아니올시다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 장철영씨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 미공개 사진. 장철영씨 제공
청와대에서 민형사 재판을 해 달라는 의뢰가 왔다. 나는 고위 참모를 만나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이제 국가원수의 지위에 있는 대통령이 되셨으니, 지지자들뿐 아니라 모든 정파, 특히 반대자들의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들을 상대로 재판을 하는 건 별로 적절해 보이지 않으니 싸움이 아닌 다른 좋은 방법을 찾아보심이 어떨는지.’

일개 변호사 주제에 국정에 대해 뭐라 뭐라 하는 게 도에 지나친 건 아닐까. 대통령을 직접 대면하고 이야기하면 그분 성격상 더 편할 것도 같았다. 참모는 그냥 진행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개인돈으로 선임료를 내는 것이니 깎아달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그 대신 이기면 많이 달라고 했다.

대통령의 명예는 금액으로 얼마나 될까. 오래전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가 한겨레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걸어 왔을 때 금액이 10억원이었다. 결국에는 그 소송을 취하했지만. 이 기회에 나도 돈 좀 벌어볼까. 배상액에 대한 궁금증은 끝까지 남았다. 그 이듬해 노 대통령도 결국 소송을 취하했다.

그 뒤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겠다는 대통령 발언에 크게 실망했다.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으로 이어지는 정책들에서도 그랬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고 그분의 참모들과는 별 재미를 못 보았다.

2009년 5월 어느 날 북한산을 오르다 문득 그분 서거 소식을 들었다. 봉하에 한번 찾아가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나누리라, 미루는 새에 그분은 갔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말씀만 남기고 그분은 가셨다.

너무 슬퍼할 것도 없다. 본디 생사와 열반이 하나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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