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으로 몰렸던 피해자 남편의 오른팔 위에는 손톱자국 세 개가 안쪽으로 볼록하게 나 있었다.(오른쪽) 그는 집에 불이 난 직후 들어가지 못하고 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팔짱을 낀 양손에 온 힘을 주다가 생긴 흔적이라고 말했다. 법원에 제출하기 위해 같은 자세로 실험(왼쪽과 가운데 사진)을 해보았더니 손톱자국은 같은 형태로 나왔다. 그러나 검사는 이 생채기가 끈으로 목이 졸린 피해자가 남편에게 저항하다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태 변호사 제공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1)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
사형, 무죄, 사형, 무죄, 무죄
(21)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
사형, 무죄, 사형, 무죄, 무죄
처와 딸의 죽음 앞에서
경찰 제지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왜? 왜? 하고 울부짖으며
주먹으로 현관을 치던 남편 그의 오른팔에 손톱자국 세개
검사는 피해자의 저항으로
이 흉터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판사도, 변호사인 나도
처의 목을 끈으로 조르는
흉내를 내며 시험을 해보았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죄송스런 요청입니다만 별지의 사진을 다시 한번 유심히 관찰해 주십시오. 멀리서도 보시고 가까이서도 보아주십시오. 피고인이 위 세 개의 선명한 손톱자국을 발견하고 취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마도 수없이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병원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솜을 알코올에 묻혀 수없이 닦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이것이야말로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이요, 단서입니다.’ 맞다. 피고인의 오른팔 상완에는 손톱자국 세 개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검사가 이 생채기를 보고 발동한 상상력은 참으로 문학적이기까지 했다. 검사의 참으로 문학적인 상상력
그래, 그가 자기 처와 이제 막 돌 지난 어린 딸을 목 졸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범인이라면, 그리고 처가 죽기 전 저항을 하면서 그의 팔에 생채기를 냈다면, 나중에 자기 팔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자국을 발견하고는 거의 히스테리 상태에 빠졌을 게다. 이걸 어쩌나, 손으로 문질러도 보고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있는 솜으로 알코올을 묻혀 빡빡 닦고 또 닦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손톱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처와 딸을 살해한 범인임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이 손톱자국. 하지만 그 피고인의 변호사였던 나는 검사의 이 논고를 읽고 그저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검사에게 정작 필요한 건 추리소설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고 냉철한 이성에 바탕한 세밀한 관찰이다. 그래야 갖은 수로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려 하는 범인을 잡아낼 수 있고, 반대로 억울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1995년 6월12일. 저녁 뉴스 화면은 서울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욕조에서 치과의사인 30대 여자와 한 살짜리 딸이 끈에 목이 졸려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안방 장롱 가운데 칸과 천장은 불에 타다 말았다. 아파트 경비원은 아침에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았는데 그 안에서 아이 목을 조르는 데 쓰일 수도 있는 치실이 발견되었다는 거였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치실로 아이 목을 졸라? 나도 처음엔 보도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이후 그 남자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사랑하는 처와 딸을 잃은 그는 석달 뒤인 그해 9월 초 오히려 처와 딸을 죽인 흉악범으로 몰려 구속되었고, 이듬해 2월, 1심에서 사형. 그해 6월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2년이 지난 1998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이건 다시 사형시키란 소리다. 그리고 3년 뒤인 2001년 2월, 고등법원에서 다시 무죄. 2년 뒤인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8년 뒤, 그리고 나는 1심 사형선고 뒤, 고등법원부터 맡았으니까 관여한 지 7년 만에 엎치락뒤치락하던 긴 재판이 완전히 끝났다. 검사의 상고로 사건이 첫번째 대법원에 올라갔을 때 나는 이렇게 답변서에 썼다. ‘언론은 미국의 미식축구선수 오 제이 심슨 살인 사건에 대비하여 마치 피고인이 범인인데도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피고인은 두번, 세번 이미 죽었고 변호인들은 살인 범인을 빼내는 법 기술자로 전락했습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결백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살인 범인을 빼주는 법 기술자로 전락되는 한이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범인이라도 풀어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이번 사건을 통하여 확실하게 확인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이번 대법원 판결이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이를 만들지 않는 일대 전기가 될 것을 믿습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왜 극렬히 항의하고 확인하지 않았냐고?
나는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 죽어서도 영혼으로 남는 ‘나’가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나는 수십억년 진화를 통해 형성된 커다란 유전자 풀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나란 존재로 잠시 동안 모인 일부 유전자의 집합이니, ‘나’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이나 ‘흐름’일 뿐이라고 여긴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은 썩어 다른 것들에 흡수될 거고,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이 죽는 사건, 흐름을 통해 더 큰 흐름, 전체에 안기는 거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 스스로에게 ‘참, 잘했어요’ 하고 칭찬하고 싶은 일 몇 개가 있다. 처자의 죽음 앞에서 경찰의 제지로 제집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왜? 왜? 하며 소리치던 이 남자에게 내가 손을 내밀어 주었던 일. 온 나라가 간첩이라고, 친한 선후배들도 변호해 주지 말라고 충고할 때 송두율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던 일. 이건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은 법의학, 화재실험 등 수많은 과학적 쟁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런 과학수사에 경험이 없던 수사기관들의 미숙한 대응, 졸지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 유족들의 고통과 원망.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 엄청나게 쏠린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당국의 옹색한 처지, 이웃집 불이 나면 속으론 신나게 불구경하는 우리 모두의 심리를 이용해 대목을 만난 황색 저널리즘.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길고도 지루한 법정 드라마가 계속되었다. 이제 17년 세월이 지나갔다. 진짜 범인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니 두 다리 뻗고 자고 있을까. 긴 세월이 갔지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무죄’라며 두번, 세번 죽은 남자도, 딸과 동생을 잃은 피해자 유가족들도 그 마음의 상처는 아마 죽는 날까지 아물지 못하리라. 그날은 남자가 병역의무인 3년 공중보건의사 생활을 마치고 병원을 개원하는 첫날이었다.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10시 좀 넘어 아파트에 도착하니 난리가 나 있었다. 처와 딸이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경찰이 현장감식을 하느라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검사는 ‘의사라는 인텔리 계층인 피고인이 이를 극렬히 항의하고 확인하려 들 것이 당연한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처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일 남자가 처자식 목 졸라 죽이고 수사를 혼동시키기 위해 사체를 뜨거운 물에 담가 놓고 장롱에 불까지 질러 지연화재를 시도한 것이라면, 이렇게 교활한 범인으로서는 주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말 검사 말마따나 문 지키는 경찰을 밀어제치고 마구 소리 지르며 울며불며 안으로 뛰어들었겠지. ‘아, 저 남편이 정말 괴롭고 슬퍼하는구나, 참 안됐다.’ 이리 유도했겠지. 나는 검사의 이런 대목이 진범을 놓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원인이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 증언에 의하면 남자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왜, 왜” 하고 외치며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주먹으로 현관을 쳐서 손등에 상처를 입었다. 죽은 여자의 친정어머니도 당시 같이 있었는데 그 역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남자는 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팔짱을 낀 양손에 온 힘을 주고 어금니도 꼭 물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검사는 이때 생긴 오른팔 세 개의 손톱자국을 피해자의 저항에서 생긴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피고인의 주장대로 쪼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오른쪽 팔을 잡았다면 손톱의 반원 모양은 피고인의 몸 바깥쪽으로 볼록하게 나야 하는데 안쪽으로 볼록하니 이건 피고인이 끈으로 목을 조르자 처가 왼손으로 목에 감긴 끈을 풀려고 하면서 처의 오른손으로 피고인의 오른팔을 잡아 생긴 것이다.’ 언론이 뭐라 하건 그의 변호를 결심하다
왼손을 오른팔에 그냥 올려놓고만 있으면 검사 주장처럼 중지가 길고 검지, 약지는 짧아 손가락 모양이 몸 바깥을 향해 볼록하다. 하지만 손톱은 손등에 붙어 있기에 그냥 팔에 대고 있어서는 손톱자국이 생기지 않는다. 막상 손톱으로 팔을 움켜쥐게 되면 손가락의 오그리는 정도, 움켜쥐는 살의 양에 따라 손톱자국이 일직선 또는 피고인처럼 안쪽으로 볼록하게 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뒤에서 끈으로 목을 졸리면 당장 급해서 제 목을 조르고 있는 끈을 두 손으로 잡아뜯으려 하지, 오른팔을 뒤로 꺾으면서 조르는 사람의 팔까지 위로 손을 뻗어 꼭 누르는 자세를 취할 리가 없다. 이런 자세로는 효과적으로 힘을 쓸 수가 없다. 손톱자국도 팔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생겨야 한다.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사는 나중에 사석에서 자신의 처를 상대로 끈을 가지고 검증을 해보았다고 했다. 나도 물론 여러차례 처의 목을 끈으로 조르는 흉내를 내면서 검사가 주장하는 자세가 나오는지 시험을 했었다. 이 사건에 얽힌 수많은 법의학, 과학적 쟁점들에 비추면 이 손톱상처 건은 사소한 축에 끼는 거였지만 어쨌든 치밀하지 못한 수사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정황이었다. 나는 1심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97년 2월 어느 날 저녁 남자의 누나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찾아와 내 동생 좀 제발 살려달라고 눈물로 하소연을 했다. 나는 세번인가 구치소로 그를 면회 갔다. 정말 그가 억울한 건지 판단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피고인이 변호사를 속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검사와 1심 재판부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본 주요 논거는 이랬다. 그날 아침 7시 피고인이 출근하려고 아파트를 나선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데 시반과 시강, 위 음식물, 화재 발생 시각 등을 종합하면 모녀의 추정 사망시각은 7시 이전이다. 따라서 범인은 남편일 수밖에 없다. 흉기나 지문 그밖에 다른 직접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사건 당일 욕조에서 꺼낸 처의 사진을 유심히 보니 얼굴에 화장기가 있었다. 특히 눈썹을 그린 흔적이 분명히 보였다. 처는 통상 8시 이후 병원에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하므로 시신 얼굴에 화장기가 있다는 건 남편 출근 후 화장을 한 상태에서 죽은 거란 주장이 가능했다. 나는 부리나케 구치소에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눈썹을 그린 흔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번에 “아닙니다. 변호사님, 그건 화장한 게 아니고 문신이에요” 하는 거였다. 시신은 이미 없어진 상태고, 문신은 남편 이외에 다른 사람은 모르고, 변호사인 나는 신이 나서 화장을 했으니 시간으로 보아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좋아하고 있고. 그가 모른 체하고 넘어갔더라면 나는 화장을 무죄 근거 중 하나로 주장했을 거였다. 오히려 내가 아쉬워서 여러차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게 정말 문신이요? 화장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변호사님. 문신이에요.” 그는 식기세척기 안에 남아 있던 그릇과 수저 개수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을 계속했다. 몇 번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니 그의 사람됨을 대략 알 거 같았다. 나는 언론이 뭐라 보도했건 그의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다음주에 계속>
<한겨레 인기기사>
■ 선관위 “안랩 백신 무료 배포, 선거법 위반 아니다”
■ 안철수 중심으로 헤쳐모여?
■ 태풍 불어 배 떨어지면 농민 책임?
■ 이방인의 ‘리틀 시카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 반미 시위 촉발시킨 동영상 제작자 “영화 만든 것 후회안해”
■ “집안일 많이 하며 죄악을 씻고 있어요”
■ [화보]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의 눈물
경찰 제지로 집에도 못 들어가고
왜? 왜? 하고 울부짖으며
주먹으로 현관을 치던 남편 그의 오른팔에 손톱자국 세개
검사는 피해자의 저항으로
이 흉터가 생겼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판사도, 변호사인 나도
처의 목을 끈으로 조르는
흉내를 내며 시험을 해보았다 ‘존경하는 대법관님! 죄송스런 요청입니다만 별지의 사진을 다시 한번 유심히 관찰해 주십시오. 멀리서도 보시고 가까이서도 보아주십시오. 피고인이 위 세 개의 선명한 손톱자국을 발견하고 취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마도 수없이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병원 사무실에 비치되어 있는 솜을 알코올에 묻혀 수없이 닦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 이것이야말로 지울 수 없는 범죄의 흔적이요, 단서입니다.’ 맞다. 피고인의 오른팔 상완에는 손톱자국 세 개가 선명하게 나 있었다. 검사가 이 생채기를 보고 발동한 상상력은 참으로 문학적이기까지 했다. 검사의 참으로 문학적인 상상력
그래, 그가 자기 처와 이제 막 돌 지난 어린 딸을 목 졸라 죽이고 집에 불까지 지른 범인이라면, 그리고 처가 죽기 전 저항을 하면서 그의 팔에 생채기를 냈다면, 나중에 자기 팔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자국을 발견하고는 거의 히스테리 상태에 빠졌을 게다. 이걸 어쩌나, 손으로 문질러도 보고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에 있는 솜으로 알코올을 묻혀 빡빡 닦고 또 닦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손톱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처와 딸을 살해한 범인임을 만천하에 증명하는 이 손톱자국. 하지만 그 피고인의 변호사였던 나는 검사의 이 논고를 읽고 그저 허탈한 웃음밖에 안 나왔다. 검사에게 정작 필요한 건 추리소설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고 냉철한 이성에 바탕한 세밀한 관찰이다. 그래야 갖은 수로 법의 그물망을 빠져나가려 하는 범인을 잡아낼 수 있고, 반대로 억울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1995년 6월12일. 저녁 뉴스 화면은 서울 불광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살인 사건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욕조에서 치과의사인 30대 여자와 한 살짜리 딸이 끈에 목이 졸려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안방 장롱 가운데 칸과 천장은 불에 타다 말았다. 아파트 경비원은 아침에 남편이 쓰레기를 버리는 걸 보았는데 그 안에서 아이 목을 조르는 데 쓰일 수도 있는 치실이 발견되었다는 거였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치실로 아이 목을 졸라? 나도 처음엔 보도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날 이후 그 남자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사랑하는 처와 딸을 잃은 그는 석달 뒤인 그해 9월 초 오히려 처와 딸을 죽인 흉악범으로 몰려 구속되었고, 이듬해 2월, 1심에서 사형. 그해 6월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2년이 지난 1998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이건 다시 사형시키란 소리다. 그리고 3년 뒤인 2001년 2월, 고등법원에서 다시 무죄. 2년 뒤인 2003년 2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사건이 일어난 때로부터 8년 뒤, 그리고 나는 1심 사형선고 뒤, 고등법원부터 맡았으니까 관여한 지 7년 만에 엎치락뒤치락하던 긴 재판이 완전히 끝났다. 검사의 상고로 사건이 첫번째 대법원에 올라갔을 때 나는 이렇게 답변서에 썼다. ‘언론은 미국의 미식축구선수 오 제이 심슨 살인 사건에 대비하여 마치 피고인이 범인인데도 증거가 없어서 무죄가 된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피고인은 두번, 세번 이미 죽었고 변호인들은 살인 범인을 빼내는 법 기술자로 전락했습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결백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호인들이 살인 범인을 빼주는 법 기술자로 전락되는 한이 있어도 증거가 없으면 범인이라도 풀어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이번 사건을 통하여 확실하게 확인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이번 대법원 판결이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이를 만들지 않는 일대 전기가 될 것을 믿습니다. 피고인은 무죄입니다.’
발화 지점이었던 옷장. 검찰은 남자가 처자식을 목 졸라 죽이고 수사를 혼동시키기 위해 사체를 뜨거운 물에 담가놓고 장롱에 불까지 질러 지연화재를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고정되고 변하지 않는 실체로서, 죽어서도 영혼으로 남는 ‘나’가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나는 수십억년 진화를 통해 형성된 커다란 유전자 풀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나란 존재로 잠시 동안 모인 일부 유전자의 집합이니, ‘나’는 어떤 ‘존재’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이나 ‘흐름’일 뿐이라고 여긴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은 썩어 다른 것들에 흡수될 거고, 파도가 바다의 일부이듯이, 이 죽는 사건, 흐름을 통해 더 큰 흐름, 전체에 안기는 거라 여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 스스로에게 ‘참, 잘했어요’ 하고 칭찬하고 싶은 일 몇 개가 있다. 처자의 죽음 앞에서 경찰의 제지로 제집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 왜? 왜? 하며 소리치던 이 남자에게 내가 손을 내밀어 주었던 일. 온 나라가 간첩이라고, 친한 선후배들도 변호해 주지 말라고 충고할 때 송두율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던 일. 이건 나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치과의사 모녀 살해사건은 법의학, 화재실험 등 수많은 과학적 쟁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이런 과학수사에 경험이 없던 수사기관들의 미숙한 대응, 졸지에 가족을 잃은 피해자 유족들의 고통과 원망. 그리고 사회적 관심이 엄청나게 쏠린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당국의 옹색한 처지, 이웃집 불이 나면 속으론 신나게 불구경하는 우리 모두의 심리를 이용해 대목을 만난 황색 저널리즘.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 길고도 지루한 법정 드라마가 계속되었다. 이제 17년 세월이 지나갔다. 진짜 범인은 공소시효가 완성되었으니 두 다리 뻗고 자고 있을까. 긴 세월이 갔지만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어 무죄’라며 두번, 세번 죽은 남자도, 딸과 동생을 잃은 피해자 유가족들도 그 마음의 상처는 아마 죽는 날까지 아물지 못하리라. 그날은 남자가 병역의무인 3년 공중보건의사 생활을 마치고 병원을 개원하는 첫날이었다.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오전 10시 좀 넘어 아파트에 도착하니 난리가 나 있었다. 처와 딸이 욕조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고 경찰이 현장감식을 하느라 집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검사는 ‘의사라는 인텔리 계층인 피고인이 이를 극렬히 항의하고 확인하려 들 것이 당연한데 청천벽력과도 같은 처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만일 남자가 처자식 목 졸라 죽이고 수사를 혼동시키기 위해 사체를 뜨거운 물에 담가 놓고 장롱에 불까지 질러 지연화재를 시도한 것이라면, 이렇게 교활한 범인으로서는 주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정말 검사 말마따나 문 지키는 경찰을 밀어제치고 마구 소리 지르며 울며불며 안으로 뛰어들었겠지. ‘아, 저 남편이 정말 괴롭고 슬퍼하는구나, 참 안됐다.’ 이리 유도했겠지. 나는 검사의 이런 대목이 진범을 놓치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원인이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 증언에 의하면 남자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왜, 왜” 하고 외치며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주먹으로 현관을 쳐서 손등에 상처를 입었다. 죽은 여자의 친정어머니도 당시 같이 있었는데 그 역시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남자는 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팔짱을 낀 양손에 온 힘을 주고 어금니도 꼭 물고 고통을 참고 있었다. 검사는 이때 생긴 오른팔 세 개의 손톱자국을 피해자의 저항에서 생긴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피고인의 주장대로 쪼그리고 앉아 왼손으로 오른쪽 팔을 잡았다면 손톱의 반원 모양은 피고인의 몸 바깥쪽으로 볼록하게 나야 하는데 안쪽으로 볼록하니 이건 피고인이 끈으로 목을 조르자 처가 왼손으로 목에 감긴 끈을 풀려고 하면서 처의 오른손으로 피고인의 오른팔을 잡아 생긴 것이다.’ 언론이 뭐라 하건 그의 변호를 결심하다
왼손을 오른팔에 그냥 올려놓고만 있으면 검사 주장처럼 중지가 길고 검지, 약지는 짧아 손가락 모양이 몸 바깥을 향해 볼록하다. 하지만 손톱은 손등에 붙어 있기에 그냥 팔에 대고 있어서는 손톱자국이 생기지 않는다. 막상 손톱으로 팔을 움켜쥐게 되면 손가락의 오그리는 정도, 움켜쥐는 살의 양에 따라 손톱자국이 일직선 또는 피고인처럼 안쪽으로 볼록하게 나게 된다. 무엇보다도 뒤에서 끈으로 목을 졸리면 당장 급해서 제 목을 조르고 있는 끈을 두 손으로 잡아뜯으려 하지, 오른팔을 뒤로 꺾으면서 조르는 사람의 팔까지 위로 손을 뻗어 꼭 누르는 자세를 취할 리가 없다. 이런 자세로는 효과적으로 힘을 쓸 수가 없다. 손톱자국도 팔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에 생겨야 한다.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판사는 나중에 사석에서 자신의 처를 상대로 끈을 가지고 검증을 해보았다고 했다. 나도 물론 여러차례 처의 목을 끈으로 조르는 흉내를 내면서 검사가 주장하는 자세가 나오는지 시험을 했었다. 이 사건에 얽힌 수많은 법의학, 과학적 쟁점들에 비추면 이 손톱상처 건은 사소한 축에 끼는 거였지만 어쨌든 치밀하지 못한 수사 과정을 잘 보여주는 정황이었다. 나는 1심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소식만 듣고 있었는데 97년 2월 어느 날 저녁 남자의 누나가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찾아와 내 동생 좀 제발 살려달라고 눈물로 하소연을 했다. 나는 세번인가 구치소로 그를 면회 갔다. 정말 그가 억울한 건지 판단을 해보기 위해서였다. 피고인이 변호사를 속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검사와 1심 재판부가 피고인을 범인으로 본 주요 논거는 이랬다. 그날 아침 7시 피고인이 출근하려고 아파트를 나선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데 시반과 시강, 위 음식물, 화재 발생 시각 등을 종합하면 모녀의 추정 사망시각은 7시 이전이다. 따라서 범인은 남편일 수밖에 없다. 흉기나 지문 그밖에 다른 직접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사건 당일 욕조에서 꺼낸 처의 사진을 유심히 보니 얼굴에 화장기가 있었다. 특히 눈썹을 그린 흔적이 분명히 보였다. 처는 통상 8시 이후 병원에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하므로 시신 얼굴에 화장기가 있다는 건 남편 출근 후 화장을 한 상태에서 죽은 거란 주장이 가능했다. 나는 부리나케 구치소에 찾아가 사진을 보여주며 여기 눈썹을 그린 흔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번에 “아닙니다. 변호사님, 그건 화장한 게 아니고 문신이에요” 하는 거였다. 시신은 이미 없어진 상태고, 문신은 남편 이외에 다른 사람은 모르고, 변호사인 나는 신이 나서 화장을 했으니 시간으로 보아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좋아하고 있고. 그가 모른 체하고 넘어갔더라면 나는 화장을 무죄 근거 중 하나로 주장했을 거였다. 오히려 내가 아쉬워서 여러차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게 정말 문신이요? 화장한 거 아니야?” “아닙니다, 변호사님. 문신이에요.” 그는 식기세척기 안에 남아 있던 그릇과 수저 개수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주장을 계속했다. 몇 번을 만나 이야기하고 나니 그의 사람됨을 대략 알 거 같았다. 나는 언론이 뭐라 보도했건 그의 변호사가 되기로 했다. <다음주에 계속>
■ 선관위 “안랩 백신 무료 배포, 선거법 위반 아니다”
■ 안철수 중심으로 헤쳐모여?
■ 태풍 불어 배 떨어지면 농민 책임?
■ 이방인의 ‘리틀 시카고’ 그곳에 사람이 산다
■ 반미 시위 촉발시킨 동영상 제작자 “영화 만든 것 후회안해”
■ “집안일 많이 하며 죄악을 씻고 있어요”
■ [화보] 인혁당 사건 피해 유족들의 눈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