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2월 한국소방화재학회에 의뢰해 용인에 있는 경기도 소방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화재 실험, 아파트 안방과 장롱 모형을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 첨단 측정 장비들을 넣고 불을 질렀다. 발화 3분 만에 불길이 확 올랐다가 산소 부족으로 꺼졌다. 일요신문 제공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21>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5-마지막)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21> 치과의사모녀 살인사건(5-마지막)
국내 법의학계와 싸워야 했다
시반과 시강, 위 음식물을 통한
국과수의 사망시각 추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증거를 모두 묵살했다
이번엔 화재를 실제로 재현했다
연기가 밖으로 샌 건 10~20분 뒤
사실 너무나 뻔한 결과였다
남자의 무죄는 확실히 증명됐다 마당 한구석에 하얗게 무리지어 핀 구절초. 그걸 보고 느끼는 이 가을의 정취도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엄청난 세월의 진화를 통해 얻은, 내 뇌에서 일어난 전기신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과학을 유물론이라고 깎아내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대개는 이 개체적 삶의 유한성에 허무해하고, 무언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와 그 무엇을 찾아 헤맨다. 나는 법으로 밥 벌어먹고 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다툴 때마다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뇌에서 그가 겪은 일들이 기억되어 있는 동영상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이 지난한 재판의 수고를 피할 수 있을 건데. 그러면 거짓말하는 사람도, 억울한 사람도 없어질 텐데. 아내 죽은 지 “최대 12시간” 대 “최대 4시간” 뇌 동영상은 몰라도 시반, 시강, 위 음식물이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 건 맞다. 우선 시반. 사람이 죽으면 중력 때문에 피가 사체 아랫부분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혈구가 용해되어 붉은 색소가 사체 아랫부분 조직세포에 들러붙어 검붉은 색으로 보인다. 혈색소가 주위 조직에 붙기 전에 사체를 뒤집으면 피가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반대편에 시반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사후 4~12시간대에 사체를 뒤집으면 고착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져서 시반 일부는 본래 아래쪽에, 일부는 뒤집은 뒤 아래쪽에, 즉 ‘양측성 시반’이 생긴다. 그 전에 뒤집으면 ‘이동성 시반’이라 해서 아직 혈색소가 아랫부분에 붙기 전이라 애초 아래쪽에는 시반이 생기지 않고 뒤집은 뒤 아래쪽으로 다 이동한다. 그 시간대 뒤에 뒤집으면 본래 아래쪽에 다 고착되어서 뒤집어도 다시 아래쪽으로 시반이 이동하지 않는다. 처와 딸은 6월12일 아침 욕조 물에 엎어진 채 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오전 11시30분에 사체를 뒤집어 바로 눕힌 뒤 검안이 이루어졌다. 당시 처의 사체 전면 목, 어깨, 가슴, 대퇴부 오른쪽, 아랫배, 우측 사타구니에 시반이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10시30분 국과수 의사가 부검을 할 때 보니 등 쪽에 시반이 생기고 검안 당시 사체 전면 목, 어깨 등에 있던 시반은 “대개는 소실되고” 우측 대퇴부에만 속옷 고무줄 자국을 따라 검은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과수는 애초 사체 전면 우측 대퇴부에 생긴 시반이 12일 오전 11시30분 검안을 위해 사체를 뒤집었음에도 그대로 고착되어 남아 있었다며 양측성 시반으로 보았다. 따라서 사체를 뒤집은 12일 오전 11시30분으로부터 4~12시간 전인 11일 밤 11시30분에서 12일 아침 7시30분 사이에 죽은 거라고 추정했다.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측 대퇴부 시반은 고무줄 압력으로 생긴 것으로 양측성 시반이라 보기 어렵다. 사체 전면 목, 어깨, 가슴, 아랫배, 우측 사타구니에 뚜렷이 보이던 시반들은 다 없어지지 않았느냐. 아직 시반이 고착되기 전이고 백보를 양보해 양측성 시반으로 보아도 초기이다. 따라서 양측성 시반의 시간 범위 중 가장 짧은 4시간 이내에 사체를 뒤집은 걸로 보아야 한다. 검안 시각이 11시30분이니 처가 죽어서 욕조에 엎어진 상태로 된 시점은 그로부터 4시간 이내인 7시30분 이후이다. 남자 출근 이후이니 이건 무죄를 적극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항소심은 기본적으로 나의 주장에 동의했다. 나는 법의학계의 저명한 교수들과 법정에서 공방을 벌였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사체 전면에 있던 대부분의 시반들이 사라졌으니 양측성 시반 초기이거나 그 전단계인 이동성 시반이 아니냐는 취지로 신문을 해나가자, 과학자로서 납득되기 힘든 주장을 했다. ‘처음 전면에 생겼던 시반들도 당연히 있어야 마땅하다. 분명 있을 것이다.’ 사체를 직접 부검한 국과수 의사가 대퇴부 빼고는 사체 전면 다른 시반들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법의학자는 사체 전면도 아니고 측면을 멀리서 찍은 사진만을 보고 ‘사체 전면의 당초 시반들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내가 보기엔 결론을 먼저 내고, 엄연한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거였다. 또 한 사람은 나의 이동성 시반 주장에 대해 사체가 물에 떠 있었으므로 부력의 영향으로 시반이 늦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책이나 논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주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반의 형성 시간은 책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체의 신체적 특성, 사체가 놓인 환경에 따라 시반 형성 과정이나 시간이 저마다 다를 거였다. 엄밀한 정합성을 지닌 물리, 화학, 수학 공식이 아니라 그저 통계에 불과한 걸 근거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그 통계는 편차도 몇 시간이나 되었다. 10분, 20분에도 범인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판인데. 기본적으로 우리 법의학계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에 대해 잘 모르면서 종종 너무 과도한 단정을 해왔다. 법률가는 법의학을 모르고 법의학자는 법률을 잘 모르니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감정결과 맹신하는 검사의 큰일날 소리
검사는 항소심 무죄가 난 뒤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이렇게 썼다. ‘법원이 감정결과에 이르게 된 논리적·과학적 추론과정을 모두 이해해야 합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감정들의 추론과정에 대해서 검사의 입장에서도 전문지식이 부족하여 일일이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인으로 하여금 감정하게 한 것이 아닙니까.’ 이건 정말 큰일 날 소리다.
판례와 교과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법원은 감정인이 제시한 견해를 무비판적으로 채택해서는 안 되며 독자적 입장에서 감정의견의 증명력을 판단해야 한다.’
나는 잘 모르는 법의학을 열심히 공부했다. 내 의견을 독자적으로 내진 못해도 남의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때까지.
둘째, 시강. 시강이란 사체가 딱딱하게 굳어졌다가 도로 풀어지는 현상이다. 죽으면 근육의 수축·이완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 공급이 끊겨 생기는 현상이다.
국과수는 12일 오전 11시30분 검안 당시 처의 손가락 관절까지 굳어져 있다며 전신강직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로부터 6~12시간 전인 11일 밤 11시30분에서 12일 아침 5시30분 사이에 사망한 걸로 추정했다.
외국 법의학 책을 보니 시반처럼, 사체가 완전히 굳는 데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었다. 한 통계에서는 113구의 사체 중 완전강직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에서부터 13시간까지 다양했다. 국과수가 내세운 완전강직 6~12시간은 52구였고, 5시간 이내가 그보다 많은 61구나 되었다.
남자가 7시에 출근하고 제3자가 범행을 했다 해도 검안시각 11시30분까지는 4시간30분. 위 통계에 따르면 4시간 안에 전신강직이 온 사체도 47구나 되었다. 전신강직이 왔으니 전날 밤 11시30분부터 12일 새벽 5시30분 사이에 죽었다고 단정하고 사형 선고를 한다고? 시강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옆방 이석태 변호사도 멋진 소식을 들고 왔다. 서울 의대 도서관을 뒤져 일본 자료를 찾아냈다. 시강은 생물물리학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온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근육의 이완·수축은 열에 민감하다.
국과수나 다른 검사측 법의학자들은 처의 사체가 더운 물에 담겨 있었던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체가 최고 섭씨 43도에서 최저 32도까지 차츰 식어간 물에 담겨 있었다는 거였다. 일본 자료엔 41도에서는 2시간20분, 37도에서는 2시간35분, 29도에서는 4시간10분 만에 완전강직이 온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다시 만세를 불렀다. ‘그렇다면 처의 사망시각은 검안시각인 11시30분으로부터 4시간10분~2시간20분 전인 12일 아침 7시20분부터 9시10분 사이다. 시반으로 보아도 7시30분 이후였고, 시강으로도 7시 출근 뒤이니 무죄 증명이다.’
항소심은 이 부분도 대체로 내 의견에 동의했다.
셋째, 위 음식물. 처의 위에는 쌀밥알, 고춧가루, 양파, 배추, 미역, 생선조각 등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는 죽상의 음식물이 약 480g 남아 있었다. 국과수는 소화 정도로 보아 12일 새벽 4시 이전에 죽은 거라 했다.
장모는 딸이 한끼 밥을 세끼로 나누어 먹을 정도로 소식을 한다고 증언했다. 나는 밥, 국, 김치 등의 무게를 이리저리 달아 보았다. 각 1그릇씩 하면 700g가량, 3분의 2는 450g, 절반은 380g. 밥과 국 한그릇씩 먹었다 해도 위에는 절반 이상이 남아 있는 셈. 이건 식사 후 한두 시간밖에 안 돼서 죽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서울대 의대 안규리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식사 후 음식물이 위에 절반 남는 데 걸리는 시간에 관해 세계적으로 논문이 엄청 많았다. 방사성 동위원소를 음식물에 넣고 재는 최첨단 기법으로, 19~20세기의 법의학적 통계와는 그 정확도에서 차원이 달랐다. 법의학자들은 이 기법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메드라인>이라는 세계적 의학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많은 논문을 검색했다. 그리고 자신을 얻어 위장관학회에 사실조회를 했다. 그 결과 위에 반이 남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40분가량이라는 답을 얻었다.
6월12일 아침 남자가 출근하고 난 직후인 7시 무렵 밥을 먹었다면 사망시각은 8시에서 8시40분. 더운물에 따른 빠른 강직, 양측성 시반 초기, 화재 추정시각과도 일치한다. 백보를 양보해도 최소한 위 음식물 역시 사망시각의 대략적 추정일 뿐 유죄 증거로 쓸 수는 전혀 없는 거였다.
한국에 직접 날아와 증언한 크롬페처 교수
1996년 6월. 항소심을 맡아 정신없이 뛰어다닌 지 석달 반. 새벽까지 변론요지서를 쓰고 사무실 밖을 나서니 젊은 남녀가 강남역 큰길 한가운데서 포옹을 하고 서 있었다. 무슨 별천지에 온 거 같았다.
그리고 운명의 항소심 선고 날. 법정에 앉아 있는데 머리 꼭대기부터 쥐가 난 것처럼 저려왔다. 대입이나 사법시험 발표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부장판사의 선고가 이어지면서 안절부절못하던 어느 순간, 감이 딱 왔다. 아, 무죄구나. 다른 이들은 한참 뒤에야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원심 판결을 파기한다. 피고인은 무죄.”
남자는 그날 저녁 풀려났다. 카메라 수십대가 먹이를 낚아채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남자는 상처받은 짐승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세상과 언론을 향해 소리쳤다.
“아무도 못 믿는다.”
정말로 못 믿을 손. 그로부터 2년 뒤,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변호인이 편 여러 입증과 주장을 다 묵살하고 유죄 취지로 고등법원에 다시 돌려보냈다.
대법원이 이랬으니 남자는 이제 죽은 목숨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 남자에게 외국으로 도망가라고 했다. 법률가로서 할 얘기가 아니었지만 법률가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누가 악법을 법이라 하더냐.
뜻밖에도 남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나에게 이랬다. “내 목숨이 필요하다면 가져가라고 하세요. 죽으라면 그냥 죽겠어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시 힘든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외국 법의학자들에게 편지와 함께 검안 동영상, 부검 사진, 부검 소견서, 검사측 법의학자들 의견서를 보냈다. 영국의 버나드 나이트, 바네지스 교수, 독일 헨스게, 피셸 교수 등 여럿이 답신을 보내왔다. 그 어떤 대가도 없이.
그들은 하나같이 ‘이 사건 더운 욕조에선 3시간 안팎으로 시강이 완성된다. 시반도 양측성 시반으로 볼수 없다. 위 음식물은 사망시각 추정자료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스위스의 크롬페처 교수는 한국에 직접 날아와 증언했다. 그의 결론. ‘처가 7시 전에 죽었다고 확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이후 죽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 다른 외국 교수들도 큰 틀에서 다 같은 의견이었다.
다음으로 한국소방화재학회에 부탁하여 화재를 실제로 재현했다. 경기도 소방학교 운동장에 아파트 안방과 장롱 모형을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 첨단 측정장비들을 넣고 불을 질렀다. 그 결과를 가지고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가 증언을 했다.
발화 3분 만에 불길이 확 올랐다가 산소 부족으로 꺼져갔다. 연기가 밖으로 나간 건 발화 후 10~20분. 그럼 그렇지. 이건 사실 불 지르고 말고 할 필요도 없이 너무도 뻔한 얘기였다.
8시50분에 연기가 발견되었으니, 파기 후 두번째 항소심은 발화시각을 12일 8시30분에서 40분 사이로 보았다. 남자 출근 후 1시간 반 뒤였다.
나는 화재나 법의학 모두 남자의 무죄를 확실히 증명한 거라고 확신한다.
2001년 2월 두번째 항소심은 다시 무죄를 선고했다.
그리고 2003년 2월 대법원은 남자의 무죄를 확정했다.
한 남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8년간의 지루한 싸움은 ‘해피엔드’로 끝났다.
이게 정말 해피엔드일까? 이제 다 끝났으니 남자는 행복할까?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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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반과 시강, 위 음식물을 통한
국과수의 사망시각 추정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과는 애초에 거리가 멀었다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증거를 모두 묵살했다
이번엔 화재를 실제로 재현했다
연기가 밖으로 샌 건 10~20분 뒤
사실 너무나 뻔한 결과였다
남자의 무죄는 확실히 증명됐다 마당 한구석에 하얗게 무리지어 핀 구절초. 그걸 보고 느끼는 이 가을의 정취도 과학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엄청난 세월의 진화를 통해 얻은, 내 뇌에서 일어난 전기신호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 꽃의 아름다움이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과학을 유물론이라고 깎아내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대개는 이 개체적 삶의 유한성에 허무해하고, 무언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와 그 무엇을 찾아 헤맨다. 나는 법으로 밥 벌어먹고 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다툴 때마다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곤 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의 뇌에서 그가 겪은 일들이 기억되어 있는 동영상을 읽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이 지난한 재판의 수고를 피할 수 있을 건데. 그러면 거짓말하는 사람도, 억울한 사람도 없어질 텐데. 아내 죽은 지 “최대 12시간” 대 “최대 4시간” 뇌 동영상은 몰라도 시반, 시강, 위 음식물이 죽음에 대해 최소한의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 건 맞다. 우선 시반. 사람이 죽으면 중력 때문에 피가 사체 아랫부분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혈구가 용해되어 붉은 색소가 사체 아랫부분 조직세포에 들러붙어 검붉은 색으로 보인다. 혈색소가 주위 조직에 붙기 전에 사체를 뒤집으면 피가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반대편에 시반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사후 4~12시간대에 사체를 뒤집으면 고착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져서 시반 일부는 본래 아래쪽에, 일부는 뒤집은 뒤 아래쪽에, 즉 ‘양측성 시반’이 생긴다. 그 전에 뒤집으면 ‘이동성 시반’이라 해서 아직 혈색소가 아랫부분에 붙기 전이라 애초 아래쪽에는 시반이 생기지 않고 뒤집은 뒤 아래쪽으로 다 이동한다. 그 시간대 뒤에 뒤집으면 본래 아래쪽에 다 고착되어서 뒤집어도 다시 아래쪽으로 시반이 이동하지 않는다. 처와 딸은 6월12일 아침 욕조 물에 엎어진 채 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오전 11시30분에 사체를 뒤집어 바로 눕힌 뒤 검안이 이루어졌다. 당시 처의 사체 전면 목, 어깨, 가슴, 대퇴부 오른쪽, 아랫배, 우측 사타구니에 시반이 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10시30분 국과수 의사가 부검을 할 때 보니 등 쪽에 시반이 생기고 검안 당시 사체 전면 목, 어깨 등에 있던 시반은 “대개는 소실되고” 우측 대퇴부에만 속옷 고무줄 자국을 따라 검은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국과수는 애초 사체 전면 우측 대퇴부에 생긴 시반이 12일 오전 11시30분 검안을 위해 사체를 뒤집었음에도 그대로 고착되어 남아 있었다며 양측성 시반으로 보았다. 따라서 사체를 뒤집은 12일 오전 11시30분으로부터 4~12시간 전인 11일 밤 11시30분에서 12일 아침 7시30분 사이에 죽은 거라고 추정했다.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우측 대퇴부 시반은 고무줄 압력으로 생긴 것으로 양측성 시반이라 보기 어렵다. 사체 전면 목, 어깨, 가슴, 아랫배, 우측 사타구니에 뚜렷이 보이던 시반들은 다 없어지지 않았느냐. 아직 시반이 고착되기 전이고 백보를 양보해 양측성 시반으로 보아도 초기이다. 따라서 양측성 시반의 시간 범위 중 가장 짧은 4시간 이내에 사체를 뒤집은 걸로 보아야 한다. 검안 시각이 11시30분이니 처가 죽어서 욕조에 엎어진 상태로 된 시점은 그로부터 4시간 이내인 7시30분 이후이다. 남자 출근 이후이니 이건 무죄를 적극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항소심은 기본적으로 나의 주장에 동의했다. 나는 법의학계의 저명한 교수들과 법정에서 공방을 벌였다. 그중 한 사람은, 내가 사체 전면에 있던 대부분의 시반들이 사라졌으니 양측성 시반 초기이거나 그 전단계인 이동성 시반이 아니냐는 취지로 신문을 해나가자, 과학자로서 납득되기 힘든 주장을 했다. ‘처음 전면에 생겼던 시반들도 당연히 있어야 마땅하다. 분명 있을 것이다.’ 사체를 직접 부검한 국과수 의사가 대퇴부 빼고는 사체 전면 다른 시반들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 법의학자는 사체 전면도 아니고 측면을 멀리서 찍은 사진만을 보고 ‘사체 전면의 당초 시반들이 그대로 있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내가 보기엔 결론을 먼저 내고, 엄연한 사실관계를 부정하는 거였다. 또 한 사람은 나의 이동성 시반 주장에 대해 사체가 물에 떠 있었으므로 부력의 영향으로 시반이 늦게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그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책이나 논문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새로운 주장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반의 형성 시간은 책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체의 신체적 특성, 사체가 놓인 환경에 따라 시반 형성 과정이나 시간이 저마다 다를 거였다. 엄밀한 정합성을 지닌 물리, 화학, 수학 공식이 아니라 그저 통계에 불과한 걸 근거로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그 통계는 편차도 몇 시간이나 되었다. 10분, 20분에도 범인이냐 아니냐가 갈리는 판인데. 기본적으로 우리 법의학계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는 증명”에 대해 잘 모르면서 종종 너무 과도한 단정을 해왔다. 법률가는 법의학을 모르고 법의학자는 법률을 잘 모르니 구멍이 생길 수 있다.
1999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스위스의 크롬페처 교수가 방송 인터뷰에서 ‘처가 7시 전에 죽었다고 확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이후 죽었을 가능성은 아주 높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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