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허위 배양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2005년 12월16일 서울대에서 연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4> 황우석 교수 사건
줄기세포 덕에 내가 안 죽으면 손자들은 어찌 사누
<24> 황우석 교수 사건
줄기세포 덕에 내가 안 죽으면 손자들은 어찌 사누
2005년 12월15일 <한겨레21> 인터넷판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 빨갱이 변호사 새끼, 결국 노무현 코드에 엠비시 이사까지 해먹는구나.”
황우석 교수가 정말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느냐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황 교수가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를 모세포나 <사이언스> 논문 것과 유전자 비교 해보면 간단히 이 소동은 끝날 거란 의견을 냈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팀이나 황 교수 중 어느 한쪽 편을 든 것도 아니고 검증해서 빨리 결론을 내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무수한 욕설과 협박 글이 올라왔다.
노무현도 박근혜도 지지했던 그분
당시 나는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방문진 이사만 되어도 어깨에 힘깨나 줄 만했다. 그 막강한 방송사의 본사, 지방사, 계열사 등 20여개 회사 사장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으니 그랬다.
설이며 추석 때는 전국 엠비시 방송사들에서 명절 선물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리 비싼 건 아니고 수만원짜리 지역 특산품 같은 것들이었지만 십수개가 배달되는 통에 어머니는 며칠 동안은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뭘 이렇게들 보내느냐면서도 그 맛에 명절을 기다리시는 듯도 했다.
겨우 방문진 이사도 이런데, 우리나라에 힘센 자리가 어디 한둘인가. 군에 있을 때 사단장은 그 지역 대통령인 양 행세했다. 하긴 헌병대장만 되어도 지역이 제 것인 양 큰소리쳤으니까.
대통령이 되면 더 말해서 무엇하리. 그러니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편이 갈려 죽어라 싸운다.
사실 나는 당시 댓글에 나오듯 노무현 대통령 백으로 이사가 된 건 전혀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여러 재판과 활동을 하면서 고문, 조작간첩, 군의문사, 언론탄압, 사형제도, 과거사, 노동사건 등등 <피디수첩>이나 <시사매거진2580>에 소재를 제법 제공했다.
어느 날 엠비시 노조위원장이 찾아왔다. 지금은 김재철 사장에게 해고되어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최승호 피디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딱부리.
“변호사님, 방문진 이사 중 노조 추천 몫이 있는데 한번 맡아주실랍니까?”
나는 노동조합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자유를 주면 한번 해보겠노라 했다. “물론이죠.” 시원스런 그의 답을 듣고 그 끗발 좋은 방문진 이사가 되었다.
그 뒤 직원들 봉급 올리는 거 딴지도 걸고… 얼마 뒤, 처음 최승호 피디와 나눴던 이야기가 바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엠비시 본사 사장을 새로 뽑는데 최문순 기자가 나섰다. 그는 전부터 나와 잘 아는 사이였고 사람 좋은 이였다. 전에 노조위원장도 지냈고. 그를 미는 주변 기자들이 나를 제일 먼저 찾아왔다. 내가 노조 추천 이사인데다가 최 기자나 노조 쪽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니 당연히 내가 최대 원군이 될 거라 여겼을 테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곰곰 생각하니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되면 노조를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 안 좋을 거 같아 그들의 지원 요청을 어렵게 어렵게 거절했다.
나 독자적으로 다른 이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성향 이사들과 마음 터놓고 여러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자 어느 날 행정부처 고위 관료가 보자고 했다. 개인 생각이라면서 “아니, 변호사님이 그러시면 됩니까.” 나는 정부가 언론에 간섭하는 건 좀 아니라고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땐 방문진 이사들 성향이 여야 어등비등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의 향배가 중요했다. 지금의 엠비시나 한국방송 이사회처럼 소수의견은 있으나 마나 한 구조는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진보, 보수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 반대쪽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묻혀서는 안 된다.
최문순 사장은 황우석 교수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엄청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나도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욕깨나 먹었다. 그때 황 교수의 열렬한 팬들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난리를 쳤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일 앞에서 황 교수를 지원했다. 물론 내막을 모르고 그랬겠지만.
노 대통령은 피디수첩의 검증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국가정보원이 황 교수를 경호하도록 했고, 국정원은 사건이 터진 뒤에는 내내 엠비시에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가했다.
하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병원에 있는 황 교수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 황 교수 문제까지 이념적으로 갈려 재단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연구원 난자를 쓴 게 문제되자
어느날 새벽 황 교수가 찾아왔다
난 그에게 간곡하게 권유했다
“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 털어놓으세요”
하지만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청와대는 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었어야 했다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사과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벼랑에 몰려서야 “줄기세포는 없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황 교수와 알고 지냈다. 그의 추천으로 정부 산하 바이오장기사업단 이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사다. 황 교수 쪽에서 먼저 엠비시와의 사이에서 공정한 재판관 노릇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해 왔다. 물론 피디수첩 팀장 최승호와 한학수 두 피디도 좋다고 해서 줄기세포 검증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양쪽은 내 앞에서 검증 방법에 동의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일주일 안에 재검증을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사무실 윤영환 변호사가 제3자로서 검증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데 입회했다. 그리고 연구원 난자를 실험에 쓴 게 문제가 되자 어느 날엔가는 새벽같이 황 교수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모든 공직에서도 물러나라고 간곡히 권유했고 황 교수가 이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문안도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한학수 피디는 “이날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은 황 교수의 완승이었다”고 썼다. 나는 당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황 교수에게 정말로 열심히, 간곡하게 권유했었다. “만일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에 황 선생님께서 먼저 국민들, 아니 사람들 앞에 사실대로 털어놓으십시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뒤에도 여러차례 그런 뜻을 그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그 뒤 황 교수가 피디수첩에 넘겨준 줄기세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검증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황 교수는 당초 내 앞에서의 합의와는 달리 재검증도 마다하고 6개월 시간을 주면 다시 만들어 보이겠노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재검증은 2, 3일이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고 한편 안타깝다. 미리 먼저 털어놓지. 그는 나중에 더이상 피할 길이 없어지자 결국 난자를 제공해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에게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가 한 개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줄기세포가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애국주의, 냉철한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언론들에 정말로 몸서리쳤다. 노 대통령도 피디수첩이 줄기세포의 진위를 한창 검증하고 있던 무렵 이런 글을 올렸다. ‘엠비시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당시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으리. 그때 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줄기세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빨리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 것을 권했지만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속으로 열불이 났다. 청와대는 재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문화방송이 광고 끊기며 백기를 들 때… 2005년 12월 초, 온 나라가 피디수첩이 애국자를 죽인다고 아우성치자 엠비시는 광고도 끊기고 급기야는 이를 못 견디고 백기를 들었다. 뉴스데스크를 통해 취재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내부적으로는 다 만들어 놓은 핵심 후속 방송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방문진에서는 최문순 사장을 불렀다. 여러 이사들이 피디수첩과 최 사장을 심하게 탓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고. 내가 나섰다. 황 교수와 피디수첩 양측 심판관 입장에서, 지나온 경과를 밝히고 다른 이사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최 사장을 몰아댔다. ‘취재윤리는 취재윤리고 그것 때문에 방송 자체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이 여론과 정부 압력에 밀려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게 언론이냐.’ 이건 사실 최 사장의 입지를 세워주는 힐책이었다. 다른 이사들은 조용해졌다. 최 사장은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방송을 강행했다. 최승호, 한학수 두 피디는 지옥에서 살아났다. 한학수 피디는 나중에 이 사태의 전말을 책으로 썼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그는 책 머리말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줄기세포의 유무라는 결과보다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에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를 겪으며 고생했던 내 가족들, 이 사태를 거치며 속상했을 난치병 환자 가족들, 커다란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뜻하지 않게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얼마 전 일본 의학자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 몸의 위벽이나 척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부위에서 그 일부를 떼어내 신체 여러 기관으로 역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황 교수는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시도를 하다 보니 생명윤리 문제에 처음부터 부딪혔다. 그리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유도해낸다 해도 그 자체가 끝없이 분할하는 암덩어리 비슷해서 이걸 인체에 투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역시 암세포로 바뀔 위험이 높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그렇지만 내가 늙어 죽기 전에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치자. 술 많이 마셔 망가진 위를 내 위벽 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새 위장을 다시 만들어 갈아 끼운다. 몇년 뒤 이번에는 혈관이 문제다. 혈관도 갈아 끼운다. 내 녹슬어 가는 심장도, 신장도 그리고 내 뇌도…. 아, 나는 이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살 수 있다. 아니,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공하면, 푸른 잔디밭을 커다란 귀 펄럭이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저 스너피 개처럼, 나도 나와 똑같은 또다른 ‘김형태’를 복제해서 영원무궁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 내가 이 지구에서 사라져 주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내 아들, 손자, 손자의 손자들은 어디서 무얼 먹고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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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교수의 팬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5년 12월6일 서울대 수의대학에서 열린 난자기증 의사 전달식 참가자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무궁화꽃을 황우석 박사 집무실에 올려놓고, 진달래꽃길을 만들어 황 교수가 빨리 돌아오길 염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어느날 새벽 황 교수가 찾아왔다
난 그에게 간곡하게 권유했다
“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 털어놓으세요”
하지만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청와대는 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었어야 했다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사과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벼랑에 몰려서야 “줄기세포는 없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황 교수와 알고 지냈다. 그의 추천으로 정부 산하 바이오장기사업단 이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사다. 황 교수 쪽에서 먼저 엠비시와의 사이에서 공정한 재판관 노릇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해 왔다. 물론 피디수첩 팀장 최승호와 한학수 두 피디도 좋다고 해서 줄기세포 검증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양쪽은 내 앞에서 검증 방법에 동의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일주일 안에 재검증을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사무실 윤영환 변호사가 제3자로서 검증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데 입회했다. 그리고 연구원 난자를 실험에 쓴 게 문제가 되자 어느 날엔가는 새벽같이 황 교수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모든 공직에서도 물러나라고 간곡히 권유했고 황 교수가 이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문안도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한학수 피디는 “이날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은 황 교수의 완승이었다”고 썼다. 나는 당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황 교수에게 정말로 열심히, 간곡하게 권유했었다. “만일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에 황 선생님께서 먼저 국민들, 아니 사람들 앞에 사실대로 털어놓으십시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뒤에도 여러차례 그런 뜻을 그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그 뒤 황 교수가 피디수첩에 넘겨준 줄기세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검증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황 교수는 당초 내 앞에서의 합의와는 달리 재검증도 마다하고 6개월 시간을 주면 다시 만들어 보이겠노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재검증은 2, 3일이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고 한편 안타깝다. 미리 먼저 털어놓지. 그는 나중에 더이상 피할 길이 없어지자 결국 난자를 제공해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에게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가 한 개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줄기세포가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애국주의, 냉철한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언론들에 정말로 몸서리쳤다. 노 대통령도 피디수첩이 줄기세포의 진위를 한창 검증하고 있던 무렵 이런 글을 올렸다. ‘엠비시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당시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으리. 그때 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줄기세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빨리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 것을 권했지만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속으로 열불이 났다. 청와대는 재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문화방송이 광고 끊기며 백기를 들 때… 2005년 12월 초, 온 나라가 피디수첩이 애국자를 죽인다고 아우성치자 엠비시는 광고도 끊기고 급기야는 이를 못 견디고 백기를 들었다. 뉴스데스크를 통해 취재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내부적으로는 다 만들어 놓은 핵심 후속 방송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방문진에서는 최문순 사장을 불렀다. 여러 이사들이 피디수첩과 최 사장을 심하게 탓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고. 내가 나섰다. 황 교수와 피디수첩 양측 심판관 입장에서, 지나온 경과를 밝히고 다른 이사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최 사장을 몰아댔다. ‘취재윤리는 취재윤리고 그것 때문에 방송 자체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이 여론과 정부 압력에 밀려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게 언론이냐.’ 이건 사실 최 사장의 입지를 세워주는 힐책이었다. 다른 이사들은 조용해졌다. 최 사장은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방송을 강행했다. 최승호, 한학수 두 피디는 지옥에서 살아났다. 한학수 피디는 나중에 이 사태의 전말을 책으로 썼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그는 책 머리말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줄기세포의 유무라는 결과보다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에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를 겪으며 고생했던 내 가족들, 이 사태를 거치며 속상했을 난치병 환자 가족들, 커다란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뜻하지 않게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얼마 전 일본 의학자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 몸의 위벽이나 척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부위에서 그 일부를 떼어내 신체 여러 기관으로 역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황 교수는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시도를 하다 보니 생명윤리 문제에 처음부터 부딪혔다. 그리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유도해낸다 해도 그 자체가 끝없이 분할하는 암덩어리 비슷해서 이걸 인체에 투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역시 암세포로 바뀔 위험이 높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그렇지만 내가 늙어 죽기 전에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치자. 술 많이 마셔 망가진 위를 내 위벽 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새 위장을 다시 만들어 갈아 끼운다. 몇년 뒤 이번에는 혈관이 문제다. 혈관도 갈아 끼운다. 내 녹슬어 가는 심장도, 신장도 그리고 내 뇌도…. 아, 나는 이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살 수 있다. 아니,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공하면, 푸른 잔디밭을 커다란 귀 펄럭이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저 스너피 개처럼, 나도 나와 똑같은 또다른 ‘김형태’를 복제해서 영원무궁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 내가 이 지구에서 사라져 주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내 아들, 손자, 손자의 손자들은 어디서 무얼 먹고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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