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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황우석 교수님, 먼저 털어놓으시죠”

등록 2012-11-23 19:19수정 2012-11-24 11:08

줄기세포 허위 배양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2005년 12월16일 서울대에서 연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줄기세포 허위 배양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황우석 교수가 2005년 12월16일 서울대에서 연 기자회견. 황우석 교수는 사실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4> 황우석 교수 사건
줄기세포 덕에 내가 안 죽으면 손자들은 어찌 사누
2005년 12월15일 <한겨레21> 인터넷판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이 빨갱이 변호사 새끼, 결국 노무현 코드에 엠비시 이사까지 해먹는구나.”

황우석 교수가 정말로 줄기세포를 만들었느냐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황 교수가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를 모세포나 <사이언스> 논문 것과 유전자 비교 해보면 간단히 이 소동은 끝날 거란 의견을 냈었다. 문화방송 피디수첩 팀이나 황 교수 중 어느 한쪽 편을 든 것도 아니고 검증해서 빨리 결론을 내란 너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무수한 욕설과 협박 글이 올라왔다.

노무현도 박근혜도 지지했던 그분

당시 나는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직을 맡고 있었다. 방문진 이사만 되어도 어깨에 힘깨나 줄 만했다. 그 막강한 방송사의 본사, 지방사, 계열사 등 20여개 회사 사장들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으니 그랬다.

설이며 추석 때는 전국 엠비시 방송사들에서 명절 선물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리 비싼 건 아니고 수만원짜리 지역 특산품 같은 것들이었지만 십수개가 배달되는 통에 어머니는 며칠 동안은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뭘 이렇게들 보내느냐면서도 그 맛에 명절을 기다리시는 듯도 했다.

겨우 방문진 이사도 이런데, 우리나라에 힘센 자리가 어디 한둘인가. 군에 있을 때 사단장은 그 지역 대통령인 양 행세했다. 하긴 헌병대장만 되어도 지역이 제 것인 양 큰소리쳤으니까.

대통령이 되면 더 말해서 무엇하리. 그러니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편이 갈려 죽어라 싸운다.

사실 나는 당시 댓글에 나오듯 노무현 대통령 백으로 이사가 된 건 전혀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여러 재판과 활동을 하면서 고문, 조작간첩, 군의문사, 언론탄압, 사형제도, 과거사, 노동사건 등등 <피디수첩>이나 <시사매거진2580>에 소재를 제법 제공했다.

어느 날 엠비시 노조위원장이 찾아왔다. 지금은 김재철 사장에게 해고되어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최승호 피디였다. 눈이 부리부리하게 큰 딱부리.

“변호사님, 방문진 이사 중 노조 추천 몫이 있는데 한번 맡아주실랍니까?”

나는 노동조합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자유를 주면 한번 해보겠노라 했다. “물론이죠.” 시원스런 그의 답을 듣고 그 끗발 좋은 방문진 이사가 되었다.

그 뒤 직원들 봉급 올리는 거 딴지도 걸고… 얼마 뒤, 처음 최승호 피디와 나눴던 이야기가 바로 현실 문제로 다가왔다. 엠비시 본사 사장을 새로 뽑는데 최문순 기자가 나섰다. 그는 전부터 나와 잘 아는 사이였고 사람 좋은 이였다. 전에 노조위원장도 지냈고. 그를 미는 주변 기자들이 나를 제일 먼저 찾아왔다. 내가 노조 추천 이사인데다가 최 기자나 노조 쪽 사람들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으니 당연히 내가 최대 원군이 될 거라 여겼을 테고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 곰곰 생각하니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되면 노조를 위해서나 회사를 위해서 안 좋을 거 같아 그들의 지원 요청을 어렵게 어렵게 거절했다.

나 독자적으로 다른 이를 사장 후보로 추천하고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성향 이사들과 마음 터놓고 여러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자 어느 날 행정부처 고위 관료가 보자고 했다. 개인 생각이라면서 “아니, 변호사님이 그러시면 됩니까.” 나는 정부가 언론에 간섭하는 건 좀 아니라고 한마디 했다.

그래도 그땐 방문진 이사들 성향이 여야 어등비등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의 향배가 중요했다. 지금의 엠비시나 한국방송 이사회처럼 소수의견은 있으나 마나 한 구조는 방송의 독립성을 위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 진보, 보수 어느 쪽이 정권을 잡는다 해도 그 반대쪽 목소리가 일방적으로 묻혀서는 안 된다.

최문순 사장은 황우석 교수 사건이 터지고 나서 엄청 힘든 시기를 보냈다. 나도 황 교수 지지자들로부터 욕깨나 먹었다. 그때 황 교수의 열렬한 팬들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난리를 쳤다.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이 제일 앞에서 황 교수를 지원했다. 물론 내막을 모르고 그랬겠지만.

노 대통령은 피디수첩의 검증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국가정보원이 황 교수를 경호하도록 했고, 국정원은 사건이 터진 뒤에는 내내 엠비시에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가했다.

하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병원에 있는 황 교수를 찾아가 “우리나라의 보배 중 보배, 황 교수 문제까지 이념적으로 갈려 재단한다면 미래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일갈했다.

황우석 교수의 팬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5년 12월6일 서울대 수의대학에서 열린 난자기증 의사 전달식 참가자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무궁화꽃을 황우석 박사 집무실에 올려놓고, 진달래꽃길을 만들어 황 교수가 빨리 돌아오길 염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황우석 교수의 팬들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2005년 12월6일 서울대 수의대학에서 열린 난자기증 의사 전달식 참가자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무궁화꽃을 황우석 박사 집무실에 올려놓고, 진달래꽃길을 만들어 황 교수가 빨리 돌아오길 염원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구원 난자를 쓴 게 문제되자
어느날 새벽 황 교수가 찾아왔다
난 그에게 간곡하게 권유했다
“만약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 털어놓으세요”
하지만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청와대는 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었어야 했다
전혀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사과했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벼랑에 몰려서야 “줄기세포는 없다”

사실 나는 그 전부터 황 교수와 알고 지냈다. 그의 추천으로 정부 산하 바이오장기사업단 이사가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이사다.

황 교수 쪽에서 먼저 엠비시와의 사이에서 공정한 재판관 노릇을 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해 왔다. 물론 피디수첩 팀장 최승호와 한학수 두 피디도 좋다고 해서 줄기세포 검증에 간여하기 시작했다.

양쪽은 내 앞에서 검증 방법에 동의하고 이의가 있을 때는 일주일 안에 재검증을 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사무실 윤영환 변호사가 제3자로서 검증의 객관성을 담보하는 데 입회했다.

그리고 연구원 난자를 실험에 쓴 게 문제가 되자 어느 날엔가는 새벽같이 황 교수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는 진솔하게 사과하고 모든 공직에서도 물러나라고 간곡히 권유했고 황 교수가 이를 받아들여, 기자회견 문안도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한학수 피디는 “이날 생방송으로 중계된 기자회견은 황 교수의 완승이었다”고 썼다.

나는 당시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기에 황 교수에게 정말로 열심히, 간곡하게 권유했었다. “만일 무슨 문제가 있다면 남이 밝히기 전에 황 선생님께서 먼저 국민들, 아니 사람들 앞에 사실대로 털어놓으십시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 뒤에도 여러차례 그런 뜻을 그에게 전했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 길을 갔다. 그 뒤 황 교수가 피디수첩에 넘겨준 줄기세포가 2005년 사이언스 논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검증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도 황 교수는 당초 내 앞에서의 합의와는 달리 재검증도 마다하고 6개월 시간을 주면 다시 만들어 보이겠노라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재검증은 2, 3일이면 그 결과가 나오는데.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고 한편 안타깝다. 미리 먼저 털어놓지.

그는 나중에 더이상 피할 길이 없어지자 결국 난자를 제공해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원장에게 2005년 사이언스지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가 한 개도 없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이 사건에서 줄기세포가 있느냐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보여준 과도한 애국주의, 냉철한 비판기능을 잃어버린 언론들에 정말로 몸서리쳤다.

노 대통령도 피디수첩이 줄기세포의 진위를 한창 검증하고 있던 무렵 이런 글을 올렸다.

‘엠비시의 이 보도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다.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공포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지도 모른다.’

당시 벌어진 일들은 지금도, 앞으로도 언제나 되풀이될 수 있으리.

그때 나는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줄기세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정부 차원에서 빨리 적절한 대응책을 만들 것을 권했지만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속으로 열불이 났다. 청와대는 재빨리 사실을 파악하고 슬기롭게 퇴로를 만들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나중에 이 일에 대해 사과했다는 소리도 못 들었다.

문화방송이 광고 끊기며 백기를 들 때…

2005년 12월 초, 온 나라가 피디수첩이 애국자를 죽인다고 아우성치자 엠비시는 광고도 끊기고 급기야는 이를 못 견디고 백기를 들었다. 뉴스데스크를 통해 취재 과정에 강압이 있었음을 사과했다. 내부적으로는 다 만들어 놓은 핵심 후속 방송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방문진에서는 최문순 사장을 불렀다. 여러 이사들이 피디수첩과 최 사장을 심하게 탓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엉터리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고. 내가 나섰다. 황 교수와 피디수첩 양측 심판관 입장에서, 지나온 경과를 밝히고 다른 이사들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최 사장을 몰아댔다. ‘취재윤리는 취재윤리고 그것 때문에 방송 자체를 아예 안 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 언론이 여론과 정부 압력에 밀려 진실을 외면한다면 그게 언론이냐.’

이건 사실 최 사장의 입지를 세워주는 힐책이었다. 다른 이사들은 조용해졌다.

최 사장은 본래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방송을 강행했다.

최승호, 한학수 두 피디는 지옥에서 살아났다.

한학수 피디는 나중에 이 사태의 전말을 책으로 썼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그는 책 머리말을 이렇게 마무리지었다.

“줄기세포의 유무라는 결과보다는 ‘한국 사회는 어떻게 이 사태의 진상을 밝히게 되었는가?’ 하는 과정에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드라마보다 더한 드라마를 겪으며 고생했던 내 가족들, 이 사태를 거치며 속상했을 난치병 환자 가족들, 커다란 사건의 소용돌이에서 뜻하지 않게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에게 위로를 전한다.”

얼마 전 일본 의학자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우리 몸의 위벽이나 척수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부위에서 그 일부를 떼어내 신체 여러 기관으로 역분화할 수 있는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다.

황 교수는 여성의 난자를 가지고 시도를 하다 보니 생명윤리 문제에 처음부터 부딪혔다. 그리고 여기서 줄기세포를 유도해낸다 해도 그 자체가 끝없이 분할하는 암덩어리 비슷해서 이걸 인체에 투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도만능줄기세포 역시 암세포로 바뀔 위험이 높다.

앞으로 몇십년 안에, 그렇지만 내가 늙어 죽기 전에 이런 문제들이 다 해결되었다 치자.

술 많이 마셔 망가진 위를 내 위벽 세포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새 위장을 다시 만들어 갈아 끼운다. 몇년 뒤 이번에는 혈관이 문제다. 혈관도 갈아 끼운다. 내 녹슬어 가는 심장도, 신장도 그리고 내 뇌도….

아, 나는 이제 지구가 망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살 수 있다.

아니, 황 교수의 체세포 복제 줄기세포가 성공하면, 푸른 잔디밭을 커다란 귀 펄럭이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저 스너피 개처럼, 나도 나와 똑같은 또다른 ‘김형태’를 복제해서 영원무궁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서, 내가 이 지구에서 사라져 주지 않고 계속 살아 있으면 내 아들, 손자, 손자의 손자들은 어디서 무얼 먹고 사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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