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⑧ 목포의 이주유권자 - 우리도 국민이다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동화주의’로 집약된다. 인종·종교·문화적 배경이 무엇이건 ‘한국화’시키겠다는 정책이다. 그 핵심 단위는 가족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들에게만 가족 단위로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에 입각한 대표적 이주민 정책이 ‘다문화 가정 지원’이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올해만 40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200여곳의 다문화 가정 지원센터를 운영중이다. 이주민의 한국 정착에 필요한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어 교육, 한국 요리 강의 등이 중심을 이룬다. 다른 중앙부처의 관련 사업도 대부분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의 다문화 지원 총예산은 2011년 865억원에서 2012년 925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5년 체류에 재산 3천만원 등…’
국적취득 요건 충족 거의 불가능
귀화자 대다수가 결혼이주여성 유럽선 미귀화 영주권자도 투표
국내선 정당가입·후원까지 봉쇄
“불만 폭발 전에 대안 마련해야” 그러나 이주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책의 주체가 되어, 한국 사회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직접 표현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돼 있다.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한국 국적이 있어야 하는데, 국적 취득 요건부터 까다롭다.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주권을 얻거나 귀화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성인 △3000만원 이상의 예금 또는 부동산 보유자 △연간 소득이 한국인 1인당 총소득의 2~3배 이상인 자 △한국어 능력 및 한국 문화 이해 필기시험 통과자 등의 자격을 고루 갖춰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더 까다로운 면접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외국인 고용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 출신 취업자의 3분의 2는 월소득 200만원 이하의 빈곤계층이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약 140만명의 외국인 가운데 귀화자는 12만여명이고 그 대부분인 10만여명이 여성이다. 영주권자는 이보다 훨씬 적은 1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국적 취득을 기다리는 이주자는 극히 드물고,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만 주로 한국 국적을 얻어 참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는 외국 여성 이주민을 제외한 120만여명의 이주민은 한국 사회 최하층에 놓여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물게 된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은 “그만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사회경제적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반영할 통로까지 막혀 있으니, 끓어오르는 솥을 틀어막고 있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곽 소장은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잠재된 불만을 제도권 내로 수용하는 통로를 만들어 궁극적으론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내 거주 외국인의 참정권 확대는 다양성을 갖춘 사회통합 정책을 펴는 데 크게 기여한다”며 재일동포의 참정권 운동을 예로 들었다.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일본이 역사적·경제적 필요에 의해 불러들인 재일한국인에게도 일본 정치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게, 재일동포 참정권 보장 운동의 핵심이다. 오 교수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동포들이 일본 내 참정권 운동을 벌이는 것을 우리 정부가 지지하는 것처럼, 한국 거주 외국인의 참정권 확대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주민에게 참정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지는 영주권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된다. 귀화자에겐 자국민과 동등한 참정권을 보장하고, 일시체류자의 참정권은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세계에서 공통적이다. 다만 유럽 나라들의 경우, 자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납세 의무를 이행하는 영주권자들에게 참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은 귀화한 외국인은 물론 영주권자인 외국인에게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준다. 이런 권리는 유럽연합 국가 출신이 아니라도 누릴 수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영주권자인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10개국 정도다. 선거권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도 다른 방식의 참정권을 허용한다. 독일은 영주권자에게 정당 가입 및 정당 활동의 권리와 자유를 허용한다. 영국은 영주권자인 외국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지방자치 선거권도 주고 있다. 이에 비하자면 한국은 걸음마 수준이다. 국적 및 영주권 취득의 문턱이 높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영주권자가 누릴 수 있는 참정권의 범위가 매우 제한돼 있다. 영주권이 있더라도 정당 가입은 금지돼 있고 정당 활동을 못하는 것은 물론 정당 후원금도 낼 수 없다. 피선거권이 없어 이주민 등을 대표할 수도 없다. 다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영주 자격을 얻은 지 3년이 지난 이주민에게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참정권을 요구하는 이주민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국내 체류 재중동포를 중심으로 한 ‘재한중국동포 유권자연맹’이 지난달 결성됐다. 취업, 체류기한 연장, 국적 취득 등에 대한 재중동포의 요구를 한국 정부에 집단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주 유권자 참정권 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황규 목사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국내 체류 이주 유권자 운동이 적잖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종·종교·국적별로 뭉친 이주자들이 누적된 불만을 폭발시키기 전에 우리 사회가 적절한 ‘대의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독일의 ‘외국인 자문위원회’, 일본의 ‘외국인 대표자회의’처럼 이주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를 우리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주민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대신,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각 주정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자문위원회’에 참가해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제를 채택한 독일은 각 주가 철저한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는데, 12개의 주정부가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한 외국인 자문위원회가 400여개에 이르고 이를 통해 독일 거주 외국인들이 주정부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달한다고 윤 교수는 소개했다. 일본의 가와사키시도 시장 직속으로 외국인 대표자회의를 설치해, 국적은 얻지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인과 다름없는 장기체류 이주민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주민들에게 참정권 보장의 폭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당장 이뤄지기 힘든 면이 있으므로, 우선 이러한 제도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⑧ 목포의 이주유권자 - 우리도 국민이다 이주민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는 ‘동화주의’로 집약된다. 인종·종교·문화적 배경이 무엇이건 ‘한국화’시키겠다는 정책이다. 그 핵심 단위는 가족이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민들에게만 가족 단위로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에 입각한 대표적 이주민 정책이 ‘다문화 가정 지원’이다. 여성가족부의 경우, 올해만 406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국 200여곳의 다문화 가정 지원센터를 운영중이다. 이주민의 한국 정착에 필요한 각종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한국어 교육, 한국 요리 강의 등이 중심을 이룬다. 다른 중앙부처의 관련 사업도 대부분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가족부를 비롯한 중앙부처의 다문화 지원 총예산은 2011년 865억원에서 2012년 925억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5년 체류에 재산 3천만원 등…’
국적취득 요건 충족 거의 불가능
귀화자 대다수가 결혼이주여성 유럽선 미귀화 영주권자도 투표
국내선 정당가입·후원까지 봉쇄
“불만 폭발 전에 대안 마련해야” 그러나 이주민이 정책의 대상이 아닌 정책의 주체가 되어, 한국 사회에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직접 표현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돼 있다.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한국 국적이 있어야 하는데, 국적 취득 요건부터 까다롭다. 한국인과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주권을 얻거나 귀화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5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성인 △3000만원 이상의 예금 또는 부동산 보유자 △연간 소득이 한국인 1인당 총소득의 2~3배 이상인 자 △한국어 능력 및 한국 문화 이해 필기시험 통과자 등의 자격을 고루 갖춰야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 국적을 취득하려면 이런 조건을 바탕으로 더 까다로운 면접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외국인 고용 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 출신 취업자의 3분의 2는 월소득 200만원 이하의 빈곤계층이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약 140만명의 외국인 가운데 귀화자는 12만여명이고 그 대부분인 10만여명이 여성이다. 영주권자는 이보다 훨씬 적은 1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국적 취득을 기다리는 이주자는 극히 드물고,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 여성들만 주로 한국 국적을 얻어 참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다문화 가정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는 외국 여성 이주민을 제외한 120만여명의 이주민은 한국 사회 최하층에 놓여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에 머물게 된다. 곽재석 이주·동포정책연구소 소장은 “그만큼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사회경제적 불만도 높아질 수밖에 없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반영할 통로까지 막혀 있으니, 끓어오르는 솥을 틀어막고 있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곽 소장은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은 잠재된 불만을 제도권 내로 수용하는 통로를 만들어 궁극적으론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내 거주 외국인의 참정권 확대는 다양성을 갖춘 사회통합 정책을 펴는 데 크게 기여한다”며 재일동포의 참정권 운동을 예로 들었다.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일본이 역사적·경제적 필요에 의해 불러들인 재일한국인에게도 일본 정치에 직접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게, 재일동포 참정권 보장 운동의 핵심이다. 오 교수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은 재일동포들이 일본 내 참정권 운동을 벌이는 것을 우리 정부가 지지하는 것처럼, 한국 거주 외국인의 참정권 확대를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주민에게 참정권을 어느 정도 보장하는지는 영주권자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된다. 귀화자에겐 자국민과 동등한 참정권을 보장하고, 일시체류자의 참정권은 원칙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세계에서 공통적이다. 다만 유럽 나라들의 경우, 자국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납세 의무를 이행하는 영주권자들에게 참정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은 귀화한 외국인은 물론 영주권자인 외국인에게도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모두 준다. 이런 권리는 유럽연합 국가 출신이 아니라도 누릴 수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영주권자인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주지 않는 나라는 10개국 정도다. 선거권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도 다른 방식의 참정권을 허용한다. 독일은 영주권자에게 정당 가입 및 정당 활동의 권리와 자유를 허용한다. 영국은 영주권자인 외국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지방자치 선거권도 주고 있다. 이에 비하자면 한국은 걸음마 수준이다. 국적 및 영주권 취득의 문턱이 높은 것은 둘째 치고라도 영주권자가 누릴 수 있는 참정권의 범위가 매우 제한돼 있다. 영주권이 있더라도 정당 가입은 금지돼 있고 정당 활동을 못하는 것은 물론 정당 후원금도 낼 수 없다. 피선거권이 없어 이주민 등을 대표할 수도 없다. 다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영주 자격을 얻은 지 3년이 지난 이주민에게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에서도 참정권을 요구하는 이주민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국내 체류 재중동포를 중심으로 한 ‘재한중국동포 유권자연맹’이 지난달 결성됐다. 취업, 체류기한 연장, 국적 취득 등에 대한 재중동포의 요구를 한국 정부에 집단적으로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주 유권자 참정권 운동을 벌이고 있는 최황규 목사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국내 체류 이주 유권자 운동이 적잖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종·종교·국적별로 뭉친 이주자들이 누적된 불만을 폭발시키기 전에 우리 사회가 적절한 ‘대의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독일의 ‘외국인 자문위원회’, 일본의 ‘외국인 대표자회의’처럼 이주민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기구를 우리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은 이주민에게 참정권을 주지 않는 대신,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각 주정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자문위원회’에 참가해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제를 채택한 독일은 각 주가 철저한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있는데, 12개의 주정부가 다양한 목적으로 설치한 외국인 자문위원회가 400여개에 이르고 이를 통해 독일 거주 외국인들이 주정부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달한다고 윤 교수는 소개했다. 일본의 가와사키시도 시장 직속으로 외국인 대표자회의를 설치해, 국적은 얻지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일본인과 다름없는 장기체류 이주민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윤 교수는 “이주민들에게 참정권 보장의 폭을 확대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당장 이뤄지기 힘든 면이 있으므로, 우선 이러한 제도라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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