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저녁 9시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현민국(가명·32) 사장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인근의 다른 휴대폰 대리점을 바라보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스펙’ 비용 4269만원보단 적어
비정규직 되기 싫어 사업했는데…
“안철수 ‘새 정치’ 기대했었죠” ■ “빚만 8000만원입니다” 창동 중심가 300m 거리에만 14개의 휴대전화 판매점이 모여 있다. 창동을 걷다 보면 20초에 한 번씩 휴대전화 판매점을 만날 수 있다. 서로 경쟁하느라 점포마다 천장을 형광등으로 가득 채웠다. 창동 거리에서 가장 밝은 불빛으로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형광등 아래서 젊은 사장들은 신음하고 있다. “빚만 8000만원입니다.” 현민국(가명·32) 사장은 그래서 난방기를 틀지 않는다.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 그래도 매달 100만원이 넘는 적자가 난다. 적자는 빚으로 충당한다. 이미 6000만원을 빌린 은행에서는 더이상 대출이 안 된다. 대부업체에 진 빚만 벌써 2000만원이 넘는다.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매달 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아무리 더하고 빼도 현 사장의 사업에는 출구가 없다. 그는 2007년 창동에 휴대전화 판매점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 판매점은 3~4곳밖에 없었다. 2008년 창동에 2호점을 냈다. 매달 700만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러나 젊은 현 사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예비 자영업자’들이다. 돈 버는 업종이라는 소문이 돌면 그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비슷한 가게를 차린다. 휴대전화 판매점도 마찬가지였다. 경쟁 점포들이 창동 거리 곳곳에 들어섰다. 2009년부터 손해보는 달이 생겼다. 현 사장은 새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다른 업종에 진출했다. 2010년 휴대전화 액세서리 가게를 새로 열었다. 처음엔 장사가 잘됐다. 그러나 그 역시 소문이 돌아 경쟁 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투자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현 사장은 지방대를 11년 만에 졸업했다.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다. 그나마 지방대 졸업장은 취업엔 별 소용이 없었다. 2006년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휴대전화 대리점이 생각났다. 현 사장이 휴대전화 판매점을 창업한 것은 ‘방어적 선택’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요즘 현 사장은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과 제 인생을 비교해 본다. 친척 동생은 연봉 8000만원을 받으며 삼성전자에 다닌다. 친척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현 사장은 그 동생이 부럽지 않다. “제가 올려다볼 나무가 아니잖아요. 제 실력으로 대기업 취업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오히려 현 사장은 동갑내기 고등학교 친구가 부럽다. 친구는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달 80만원을 번다. 빚 걱정 없이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다고 현 사장은 생각한다. 요즘 현 사장은 손님이 끊긴 매장에 앉아 취업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월급 200만원 정도의 회사를 찾고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그 정도 돈을 줄 회사가 없더라고요.”
후보들 채무정책 줄줄이 꿰
문 ‘이자율 25%’ 부작용 우려
박 ‘18조 행복기금’ 현실성 걱정 ■ “대출부담 줄여주는 후보 찍고 싶어요” 망해가는 가게를 지키고 있는 젊은 사장들에게도 ‘역할모델’이 있다. “안철수는 아이티(IT)로 자수성가했잖아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요.” 2년 전 휴대전화 판매점을 연 고수찬(가명·33) 사장은 안철수 전 대선 후보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사하고 있었다. “안철수로 단일화됐으면 찍으려고 했죠.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독재정권을 두번이나 무너뜨린 ‘야도’ 마산의 흔적은 이들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10대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었고, 20대 들어 하루하루 이문을 따지며 장사하느라 바빴던 젊은 사장들의 정치 의식은 정교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들처럼 작은 사업체를 운영해 자수성가한 안철수 전 후보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새 정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안철수가 좋아요. 뭔가 바뀔 것 같아서. 새 정치를 한다잖아요.” 김형국 사장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온갖 추문이 돌았지만 대선 때마다 나오는 흑색선전이라 믿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추문은 현실이 됐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정치를 가장 짧게 한 사람이 가장 믿음직스러워요.” 김 사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안 전 후보의 사퇴를 전후로 창동 20~30대 자영업자들에게 지지 후보를 물었다. 사퇴 전 기준으로 30명 가운데 11명이 안 전 후보를 지지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각각 10명과 4명이 지지했다. 지지 후보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5명이었다. 안 전 후보 사퇴 이후 안 전 후보 지지자 11명 가운데 2명은 박근혜 후보, 5명은 문재인 후보로 지지 후보를 바꿨다. 4명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번듯한 일자리가 없어 영세 자영업으로 밀려난 젊은층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자영업자들의 쇠락은 그 열망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민국 사장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면서도 각 대선 후보의 채무정책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는 대부업체 최대 이자율을 39%에서 25%로 줄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대부업체들이 망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부업체도 아닌 제도권 밖의 사채를 써야 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박근혜 후보는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채무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만들겠어요. 현실성이 있을까요?” 현 사장은 카드빚을 막지 못해 사채까지 알아봤다. “대출부담 줄여주는 후보가 있다면 어떻게든 찍고 싶어요.” 현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창원/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매일 가게를 열어도 적자만 남는 젊은 사장들의 이야기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의 젊은 자영업자 약전’을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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