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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저 죽을 구덩이 판 노인과 군인도 과연 한 형제?

등록 2012-12-07 19:23수정 2012-12-07 21:23

삽을 든 아낙이 섞인 촌사람들 예닐곱이 환히 웃고 있는 군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촌사람들은 그 뒤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군인들은 구덩이 안으로 총을 쏘고 흙으로 덮는다. 1951년 4월 대구 인근에서 부역 혐의자로 지목된 이들을 국군이 구덩이에서 학살하는 장면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삽을 든 아낙이 섞인 촌사람들 예닐곱이 환히 웃고 있는 군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촌사람들은 그 뒤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군인들은 구덩이 안으로 총을 쏘고 흙으로 덮는다. 1951년 4월 대구 인근에서 부역 혐의자로 지목된 이들을 국군이 구덩이에서 학살하는 장면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자료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5> 보도연맹 사건(하)
태초에 세포 한 개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점심때 먹은 된장찌개 속 돼지고기도, 양파도.

겨울비 속에 마지막까지 가지에 매달려 팔랑대는 저 단풍잎도 조상은 나와 하나, 최초의 세포 한 개다.

나는 어머니와 일촌, 동생과는 2촌, 내 아들과 여동생 딸은 4촌.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3억7천만년쯤 전에 땅으로 올라온 물고기는 나에게 10의 수천만제곱 촌 조상이요, 최초의 ‘세포 하나’는 거기에 또 10을 수억번 곱한 촌수의 윗대 한아비이시니. 나는 37억년 전 그 한아비를 같은 시조로 둔 내 동생 돼지를 잡아먹고, 내 형 나뭇잎을 밟으며 겨울산을 오른다.

어디 풀잎이나 바퀴벌레만 나와 형제이랴. 저 북한산 인수봉 바위도, 그걸 하얗게 덮는 눈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150억년 전엔 크기가 전혀 없는 하나의 점으로 뭉쳐 있었다니, 이들도 내 친척.

이건 무슨 꾸며낸 동화도 아니요, 생물, 물리 교과서에 나오는 진실이다. 문자 그대로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 천지만물이 한 뿌리요, 하나이다. 모든 종교가 하나의 은유처럼 읊조리는 이 가르침이 그저 단순한 은유가 아닌 명백한 사실이다. 얼치기로 공부한 사람들이 도통한 척 폼 잡으려 하는 헛소리가 아니다.

불을 지르고 주민들 끌어낸 뒤
마을 논 앞에서, 강변도로에서
계곡으로 끌고 가서 사살했다
80명…313명…66명…340명
모두 군인아저씨들이 죽였다

누가 언제 어디서 처형됐는지
유족들은 알 길이 없었다
2011년 울산보도연맹 소송은
‘국가배상’으로 최종 판결났다
60여년 전 구덩이에 쓰러져 간
그 원한은 조금이라도 풀렸을까

확인된 희생자는 십수만명 중 겨우 5천명

빛바랜 사진 속에 촌사람들 예닐곱이 무명 저고리에 솜바지 차림으로 우두커니 서 있다. 뒤쪽에 서 있는 아낙은 삽을 들었고 얼굴에는 살짝 미소도 보이는 듯하다. 머리 박박 깎은 노인 옆 국군 아저씨는 어찌 저리도 환히 웃고 있는가.

바로 다음 순간 그 촌사람들은 자신들이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환히 웃던 군인 아저씨가 구덩이 안으로 총을 쏜다. 확인 사살도 한다. 흙으로 덮기.

1951년 4월 어느 봄날 찍은 사진 네 장. 보도연맹원들은 그 전해 전쟁 터지고 바로 처단했기에 그 시점으로 보아 인민군 점령 때 부역을 한 혐의로 저리 총살을 한 거지 싶다.

겨울산, 발에 밟히는 낙엽이 내 형제란 건 고사하고 저 군인과 제 손으로 저 죽을 구덩이를 판 저 시골 아낙이 무슨 한 형제라는 말일까?

일제 때 광주학생운동을 주동하다 퇴학 맞고 일본 도쿄(동경)제대를 나온 인텔리 사회주의자 김사량은 1950년 인민군 종군기자로 내려왔다. 그는 공주 보도연맹, 대전형무소 학살사건 뒤끝을 목격하고 <종군기>에 이리 썼다.

“금강변 텅 빈 마을에서였다. 개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빈집 속에서 한 영감이 뛰쳐나오더니 인민군이 아니냐고 소리쳐 물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를 부여잡고 목을 놓아 울면서 원수를 갚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는 대전형무소에서 아들 두 형제를 잃었다. 조치원에서도 100여명을 구덩이 속에 생매장했다면서 ‘강물이요? 얕소. 얕소. 어서 건너가 원수를 갚아주소!’ 하더니 옷을 입은 채로 후더덕 물속에 뛰어들었다.”

금강변 왕촌 살구쟁이에서 500여명이 죽었다.

한국전쟁 중 민간인 피학살자는 최소 수만명에서 최대 십수만명에 이르는 걸로 추정된다. 4·19 혁명 이후 반짝, 국회 차원에서 진상조사를 하려고 희생자 접수도 받았다. 하지만 곧 이어진 5·16 쿠데타로 유족들이 다시 빨갱이로 몰려 사형, 무기 등 징역살이까지 하게 되자 그 이후 40년간 유족들은 조용히 숨죽이고 살아왔다. 연좌제로 사회활동에 커다란 제약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양민 수만 내지 십수만명을 학살한 이 희대의 사건은 철저히 묻혀 있다가 1999년 노근리 미군 학살사건이 드러나는 걸 기점으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미군은 노근리 철길에서 피난민 300여명을 비행기로 폭격하고 굴다리에 숨은 이들을 사흘 동안 총으로 사살했다. 2000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이 공식 사과를 했다.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의 무차별 폭격 등으로 많은 양민들이 죽었다. 단양 곡계굴에서 200명, 인천 월미도 100명, 포항, 서울 등 전국 여러 곳에서.

2005년 5월 국가기구 과거사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한국전쟁 중 민간인 희생 사건들 조사가 시작되어 2010년 문을 닫을 때까지 약 5천명의 희생자가 확인되었다.

수십만명의 억울한 죽음들 중 겨우 5천명.

2001년, 경남 거창 신원면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첫 소송을 냈다.

1951년 2월9일 육군 11사단 9연대는 함양, 거창, 산청 등 지리산 남부에 출몰하는 공비를 소탕한다며 신원면으로 들어왔다. 덕산리 민가 78가구에 불을 지르고 주민 80명을 눈 쌓인 마을 앞 논으로 끌어내 사살하고, 다음날 인근 여러 마을들에 불을 지르고 소개시킨다며 끌고 가던 노약자 20명을 강변도로에서, 노약자·부녀자·어린이들 100여명을 계곡에서 사살하고 나뭇가지로 덮고 기름을 뿌린 뒤 불을 질렀다. 그 다음날은 면 주민 1000명을 초등학교에 모은 뒤, 군인, 경찰, 공무원, 청년단 가족들은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머지 540여명의 주민들을 근처 계곡으로 끌고 가 사살하고 불을 질렀다. 10살 아래 아이들이 313명, 60살 이상이 66명, 그 사이가 340명, 모두 719명을 ‘군인 아저씨’들이 죽였다.

‘피고 대한민국’의 터무니없는 주장

국회 조사단이 현지조사를 가려 하자 국군 수색소대는 공비로 위장하고 총격을 가하여 저지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희생자가 187명이고 모두 부역자여서 재판을 거쳐 처형한 거라 거짓말을 했다. 나라가 발칵 뒤집혀 결국 연대장은 무기징역, 대대장 징역 10년, 정보장교는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 시작한 거창양민학살사건 민사재판은 2008년 5월, 대법원에서 3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유족들 패소가 확정되었다. 유족들은 국가가 끔찍한 불법을 저질러 놓고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민법 제2조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사건 직후 국가가 가해자를 형사처벌까지 했으므로 “피고 국가가 원고들의 권리행사나 시효중단을 불가능 또는 현저히 곤란하게 하거나…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내가 울산보도연맹 소장을 준비하는 동안 이 거창 대법원 판결이 났다. 나는 거창사건 재판이 진행중인지도 몰랐다. 재판을 시작도 하기 전에 대법원 패소판결이 나오니 난감했다. 하지만 학살 전모가 밝혀지고 주모자들이 형사재판을 받은 거창은 특별한 케이스였고 나머지 사건들은 희생자들이 언제, 어디서, 어찌 죽었는지 시신도 확인 못한 경우가 많았다. 시신을 수습했더라도 군경의 행위가 적법한지 위법한지를 유족들로서는 알 길이 전혀 없었다.

‘다른 보도연맹사건들은 당연히 국가가 소멸시효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재판을 시작했다.

국가는 울산 재판에서 ‘유족들이 1960년 유골 발굴 때 이미 피해 사실을 알지 않았느냐, 당시 군경은 계엄 선포에 따른 직무를 수행한 사실이 있을 뿐 불법은 없었다. 월북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주장을 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 시절도 아니고, 2008년의 대한민국 정부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을 죽이고 처형자 명부를 만들어 숨겨왔다. 1975년부터는 아예 이걸 3급 비밀로 분류했다. 재판에서 이 명부를 내놓으라고 하자 국가는 이게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며 거부했다. 이건 국가가 지금까지도 유족들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신의칙에 반하는 행위였다.

나는 1961년 박정희 정권이 ‘특수범죄처벌법’을 소급입법해서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빨갱이’로 처벌한 것, 백조일손 묘를 해체한 것도 국가가 권리행사를 방해한 거라 주장했다.

국가의 터무니없는 주장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되돌아갔다.

2009년 2월 울산보도연맹사건 1심 법원은 거창 대법원 판결과 반대로 유족 손을 들어 주었다.

전국 수많은 유족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전시 중에 경찰이나 군인들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거의 알기 어려워 원고들로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거치지 않고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존부를 확정하기가 곤란하였다 할 것이고, 이러한 상태에서 원고들이 희생자들의 사망과 관련한 국가의 위법에 대한 의심만으로 소송을 제기하여 그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어서 위 2007.11.27.(과거사위원회의 진상규명 결정일)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

1심 유족 승소, 2심 패소, 대법서 다시 승소

2009년 항소심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한술 더 떠서 이런 주장을 했다.

‘울산보도연맹사건이 발생한 때는 국가존망의 전시상황이었다. 북한군의 남하로 경주·포항이 점령 위기였고 서울·경인 북한군 점령 지역에서는 보도연맹원 수천명이 반국가적 행위를 자행했다. 전쟁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보도연맹원들에 대한 처형 사실이 밝혀졌다는 이유로 이를 당연히 위법하다고 보는 것은 부당하다.’

요컨대 지금이라도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그때처럼 군경이 볼 때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민간인들을 잡아다가 재판 없이 총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국가가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재판을 하고 있는 나도 잡아갈까?

2009년 8월 고등법원은 엉뚱하게도 1심을 뒤집었다. ‘처형자 명부를 비밀 지정한 게 1975년이니 그 전에는 유족들이 소송을 할 수 있지 않았나. 4·19 이후 유골 발굴하고 합동묘를 설치했으니 피해사실을 그때 이미 알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 이전에도 처형자 명부가 비밀이었기에 1975년에 비밀 지정한 것이고, 처형되었는지조차 모르는데 유족들이 무슨 소송을 할 수 있었겠나. 그리고 유골들이 수백구씩 섞여 있어서 백조일손지묘라 한 것이었다.

고등법원은 얼마 전 내려진 문경 사건 1심 판결문을 상당부분 그대로 베꼈다. 고등법원이 하급심 것을, 그것도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사건의 판결문을 그대로 베낀다? 그러다보니 이 사건에서 내가 주장한 적이 전혀 없는 논점들, 문경 사건에서 담당 변호사가 했던 주장들을 판결문에 늘어놓아가며 장황하게 판단을 했다. 판사님, 내가 언제 그런 주장을 했나요? 정작 내가 제기한 여러 쟁점은 전혀 언급도 하지 않았다.

전국 유족들이 깊은 낙담에 빠졌다.

그리고 2년 뒤인 2011년 6월, 대법원은 다시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고 1심과 같은 취지의 판단을 했다.

“전쟁이나 외란들에 의하여 조성된 위난의 시기에 개인에 대하여 국가기관이 조직을 통하여 집단적으로 자행한, 또는 국가권력의 비호와 묵인하에 조직적으로 자행된 기본권 침해에 대한 구제는 통상의 법절차에 의하여서는 사실상 달성하기가 어려운 점들에 비추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던 때까지는 객관적으로 원고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할 것이다.” 국가는 유족들에게 배상하라.

칠순이 넘은 울산 유족회 총무는 대법원 판결 날, 새벽 마지막 뉴스가 끝날 때까지 이 뉴스가 또 안 나오나, 보고 또 보았다.

이제 60년도 더 전에 철사 줄에 두 손 꽁꽁 묶여 반정 고개 구덩이에서 쓰러져 간 그 아버지의 원이 조금이라도 풀렸을까.

나는 오늘도 먼 옛날 ‘세포 하나’를 같은 할아버지로 둔, 내 동생 돼지를 잡아먹고, 내 형 낙엽을 밟으며 겨울산을 오른다.

그런데 저 빛바랜 사진 속 박박머리 노인과 그 옆에서 환히 웃고 있는 군인 아저씨도 과연 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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