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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검찰이 미국 목축업자들의 대변인이라도 된 걸까?

등록 2012-12-21 19:27수정 2012-12-21 22:02

2009년 4월8일 검찰은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문화방송 노조원들이 막아서자 박길배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가운데)가 문화방송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영장 집행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09년 4월8일 검찰은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해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사옥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문화방송 노조원들이 막아서자 박길배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가운데)가 문화방송 대표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영장 집행에 협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 김형태 변호사의 비망록
<26>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사건(하)
한 달 전쯤, 추위가 오기 전에 화분들을 집 안에 들여놓았다. 재스민, 유도화, 다육식물들. 그중 어딘가에서 쥐며느리 벌레가 자꾸 나와 마룻바닥을 기어 돌아다닌다. 신문으로 탁 쳐서 죽이려다 참고, 산 채로 잡아서 창문 밖으로 던진다.

이런 나의 ‘절제’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도킨스 같은 사회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이타심’,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결국은 자기 유전자 보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고 여긴다.

인간이 물질에서 출발해서 진화를 거듭하면서, 물질의 ‘창발’인 의식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물질인 뇌, 신경조직들을 떠나서 어디 별도에 ‘나’가 있겠나. 하지만 의식, 곧 되돌아볼 줄 아는 능력이 생기면서 단순한 물질법칙을 넘어섰다.

물질인 이 몸은 식물이나 동물인 남의 목숨을 먹어야 살지만,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는 게 싫듯이 저 소도 나에게 잡아먹히는 게 싫겠지’ 이런 생각을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사회생물학자들이 진화의 결과 생겨난 이 ‘반성할 줄 아는 능력, 곧 생각’을 도외시하고, 자꾸 이기적 유전자니 하면서 물질법칙으로만 모든 걸 환원하는 건 과학적이지 않다.

반성할 줄 아는 능력, 의식은 물질법칙에서 출발해서 물질법칙을 넘어섰다.

판사 화형식까지 벌어지자 두려웠나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이후 우리 사회가 보여준 모습은 좀 아쉬웠다. ‘미친 소’ 때문에 우리의 안위가 위협받는다는 분노를 넘어서서, 우리가 잡아먹는 다른 생명들, 우리가 마구 파헤치는 산과 강에 대해 되돌아보는 데까지 갔더라면….

광우병의 원조인 영국은 소에게 죽은 양고기를 갈아 먹이다가 1996년 파국을 맞았다. 1998년까지 200만마리 소를 불태우고 묻어 죽였다. 광우병에 걸린 사람도 190여명에 이르렀다.

48억년 지구 역사에, 이 세상 생물 종들이 크게 사라진 게 5번. 이제 사람 스스로 만든 6번째 대멸종을 눈앞에 두었다. 사람들은 풀만 먹고 사는 반추동물 소에게 그 사촌쯤 되는 반추동물 양을 먹으라고 들이댄다. 헨젤과 그레텔을 잡아먹으려고 달콤한 과자로 꼬셔간 숲 속의 마귀할멈보다 더하다. 마귀할멈은 먹이인 헨젤과 그레텔이 포동포동 살찌라고 사람을 갈아 먹이지는 않았으니.

미국은 영국에서 난리가 나자 1997년 소나 양 같은 반추동물에게 반추동물을 먹이는 걸 금지했다. 하지만 소에게 닭이나 오리를 먹일 수는 있고 오리, 닭에게 소를 먹일 수도 있다. 소와 닭 사이에는 종간 장벽이 있어서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소의 뇌, 척수 같은 특정위험물질(SRM)을 먹은 오리를 먹은 소를 먹은 사람은 어찌될까.

미국과 같은 사료정책을 쓴 이후에도 캐나다와 일본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나왔다. 국제수역사무국(OIE·세계동물보건기구)은 소의 특정위험물질 닭, 오리에게 먹이지 말 것을 권고했다. 미국도 이 권고를 받아들여, 2004년 7월 닭, 오리 같은 비반추동물에게도 모든 소의 특정위험물질을 금지하는 안을 내놓았지만 축산업자들의 반발로 없던 일이 되었다.

2008년 4월 정부는 협상을 타결한 뒤,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이 권고한 사료 정책을 공표할 경우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협상 당시 미국이 입법예고한 내용은 수역사무국 권고보다 훨씬 후퇴한 것이었고, 우리와 협상을 타결한 뒤 발표한 조처는 이보다도 더 후퇴한 것이었다. 정부의 발표는 전혀 잘못된 것이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몰랐거나, 알면서도 은폐 또는 축소한 채 쇠고기 협상을 체결했다’는 비판은 적절했다.

피디수첩이 그 앞부분에서 다우너 소와 아레사 빈슨, 광우병 위험물질 등을 언급한 뒤 내린 보도 내용의 결론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에 대해 1심 법원도 이 보도는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항소심은 이 부분에서 슬그머니 도망을 갔다. 정부가 미국 사료정책을 알면서도 은폐 또는 축소하였는지는 사실의 문제이므로 진실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하지만 1심 선고 뒤 판사 화형식까지 벌어지자 2심은 이 보도는 단순한 의견 개진에 불과하다며 허위 여부 판단을 하지 않았다. 정부가 은폐했다는 결론을 내렸을 경우 들어올 정치적, 사회적 압력이 두려웠던 걸까. 어쨌든 명예훼손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재판을 하면서 제일 황당했던 건 다우너 소와 아레사 빈슨 부분이었다.

피디수첩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핵심은, 미국 도축 시스템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반영하였는지, 이 두 가지였다.

그런데 검찰은 난데없이 동영상 속 다우너 소가 진짜로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릴 위험성이 높은 소인지 따져보자며 나섰다. 대한민국 검찰이 갑자기 그 다우너 소들을 키운 미국 목축업자의 대변인이라도 된 건가.

대한민국 검찰은 다우너 소들을 키운 미국 목축업자들을 대변이라도 하듯 수사에 임했다. 미국의 동물단체인 휴메인소사이어티가 공개한 다우너 증상 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대한민국 검찰은 다우너 소들을 키운 미국 목축업자들을 대변이라도 하듯 수사에 임했다. 미국의 동물단체인 휴메인소사이어티가 공개한 다우너 증상 소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다우너 소 동영상을 통해
피디수첩은 미국 도축시스템과
정부의 협상과정을 따졌는데
검찰은 난데없이 동영상 속
다우너 소가 진짜 광우병에
걸렸는지 따져보자고 했다

2심도 ‘허위 보도’로 판단했다
하지만 결론이 무죄이니
상고를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로써 검찰은 졌지만 이겼다
대중과 언론이 정부 비판에
겁을 먹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광우병’이 의도적 오역이라는 트집

그 소들은 전기충격이나 물대포로 억지로 일으켜 세운 뒤 도축되어서 어디론가 다 팔려 나갔다. 피디수첩은 이 소들이 실제 광우병에 걸렸는지를 알아볼 방법도, 이유도 없었다.

검사는 ‘젖소’를 ‘이런 소’로, ‘학대당한 소’를 ‘광우병 의심 소’라고 오역하고, 송일준 피디가 방송 도중 ‘아까 광우병 걸린 소’라고 언급하여 동영상 속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거나 위험성이 높은 소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다우너 소는 광우병 외에도 수십 가지 다른 원인으로 주저앉을 수 있고, 그 동영상은 본래 동물학대를 고발한 건데 왜 광우병에 갖다 붙이느냐.

하지만 이 다우너 소 동영상이 미국에서 난리가 난 건 바로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쇠고기가 리콜되고, 의회 청문회가 열리고, 다우너 소를 전면 도축금지하게 된 건 다우너 소가 광우병 의심 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모든 언론들도 다우너 소 동영상에 대해 피디수첩과 똑같은 논조로 보도했다.

피디수첩은 다우너 소 뒷부분에서 분명히 이렇게 밝혔다.

“이 동영상 속 소들 중 광우병 소가 있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이 소들이 실제로 광우병 소인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 이미 도축되어 식용으로 팔려 나갔기 때문이다.”

1심은 동영상 속 다우너 소 보도를 허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항소심이 문제였다. 이 부분에서도 꽁무니를 뺐다. 결론은 무죄라고 하면서도, 실제 내용에서는 검사 손을 들었다. 피디수첩이 ‘동영상 속 다우너 소들이 광우병에 걸린 소이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큰 소들이라고 보도했고, 이 보도 내용은 허위’라고 판결했다.

피디수첩은 그런 보도를 한 적이 없거니와, 2심 판사는 도축되어 팔려 나간 그 소들이 광우병 걸렸다고 무슨 수로 판단을 내린 걸까.

차라리 유죄 선고를 하면 상고라도 하지. 결론은 무죄이니 대법원에 다툴 수도 없었다. 정말 이거야말로 2심 재판부의 ‘꼼수’였다.

아레사 빈슨 보도에 관해서도 그랬다.

검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피디수첩은 아레사 빈슨이라는 미국 여성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인간광우병(vCJD)에 걸려 사망하였거나, 사망하기 전에 오로지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만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이 부분 역시 검사가 방송 내용을 임의로 요약한 거였다. 그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죽었는지 다른 원인으로 죽었는지를 밝히는 게 피디수첩의 마지막 목적일 까닭이 없었다. 방송은 마침 한-미 쇠고기협상 직전에 미국에서 아레사 빈슨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고 사망하였으며, 보건 당국이 사인 규명에 나섰다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었다.

검사는 아레사의 어머니가 “엠아르아이 검사 결과 아레사가 시제이디(CJD)에 걸렸을 거라고 했어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제작진이 고의로 시제이디를 브이시제이디(vCJD)로 오역하여 왜곡보도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CJD, 크로이펠츠-야코프병은 프리온 단백질이 변형을 일으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병인데 유전인자, 병원 감염, 광우병 소 프리온(인간광우병)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아레사 빈슨의 엠아르아이 결과는 분명 인간광우병이었고, 어머니가 말한 시제이디는 브이시제이디, 인간광우병을 포함하는 상위개념이었다.

아레사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몇 번이고 확인해 주었다. 정 못 미더우면 검사가 어머니에게 무슨 의미로 썼느냐고 물으면 간단히 끝날 일을 가지고 재판 내내 의도적 오역이라는 주장을 계속했다.

판사님, 그런 방송 한 적 없거든요

제작진이나 나는 이런 재판을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정말 절망을 느꼈다. 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건가.

검사는 아레사의 유족들이 병원을 상대로 제기한 소장을 입수했다. 소장에서 가족들은 인간광우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는데도 검사는 이를 1심에서 제출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검찰이 준 정보라며 그 소장 어디에도 인간광우병 언급이 없었다고 허위보도를 했다. 검찰이 허위사실을 언론에 흘리기까지 한 거였다.

1심은 방송 당시는 아레사가 인간광우병 의심 진단을 받고 있었으므로 보도 내용은 허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이 부분도 다우너 소와 같은 태도를 보였다. 허위이지만 무죄다. 피디수첩이 방송에서 ‘아레사 빈슨이라는 미국 여성이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것이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이 거의 확실하다’고 보도했으며 이는 허위라고 판시했다.

판사님, 그런 방송을 한 적이 없거든요. 방송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가지 않았나요?

“보건 당국은 아레사가 인간광우병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조사 중에 있다고 밝혔다. 만약 인간광우병으로 최종 진단이 내려진다면 그녀는 미국 내에서 감염 첫 사례가 될 것이다.” 항소심 판사들은 자신들도 까딱하면 1심 판사처럼 화형식을 당할까봐 그리도 두려웠던 걸까.

이 부분도 형식적으로는 무죄가 났으니 허위 여부를 대법원에서 다투어 볼 방법이 없었다. 꼼수쟁이들.

최종 결론에서 1심은 방송 보도 모두가 허위가 아니며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정부 정책을 비판한 행위는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볼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입협상을 수행한 공무원들의 사회적 평가가 저하될 수 있다고 하여 바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반해 항소심은 다우너 소, 아레사 빈슨 보도가 ‘결과적으로 허위’라면서도 이런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이 부분 보도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에 관한 것으로 피해자들의 명예와는 직접적인 연관을 갖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사실적 근거에 바탕을 두었고 전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므로 피해자들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으로 볼 수 없다.’

대법원은 ‘언론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정부 또는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에 관여한 공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 하더라도 개인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한, 공직자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원론적인 판결을 했다.

조능희 피디 등 다섯 피고인들은 본업을 제쳐두고 재판을 받느라 3년 6개월을 끌려다녔다.

법무법인 덕수의 내 후배 김진영, 윤천우 변호사는 A4용지 각각 200장에서 400장에 이르는 변론요지서, 항소, 상고 이유서들을 쓰느라 숱한 밤을 새웠다.

결론은 무죄. 하지만 검찰의 승리.

이제 국민과 언론들은 정부 비판에 겁을 먹게 되었다.

그나저나 나는 이런 난리를 겪고도 여전히 소며 돼지며 닭들을 열심히 먹어댄다.

아, 이 부끄럽고 비참한 삶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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