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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SK 봐주기 지시’ 보도 나가자 한상대 “니들이 날 흔들어?”

등록 2013-02-01 08:31수정 2013-02-01 14:27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검찰 개혁안 발표가 미뤄지면서, 이에 야당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길 건너 서울고검, 서울지검의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검찰 개혁안 발표가 미뤄지면서, 이에 야당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은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길 건너 서울고검, 서울지검의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치검사의 민낮 ④ 파국 맞은 MB검찰
대검 간부회의서 격분해 고성
“이무렵 한상대 총장 평소와 달라
보고하면 ‘네 배후가 누구냐’ 물어”
참모들도 돌아서며 점차 고립


“지난 5년 검찰은 5공 때로 돌아가”
정권 입맛에 맞춰 충성하며 출세
그 대가로 검찰은 국민신뢰 잃어
“개혁 앞서 인적 청산 필요” 목소리

최재경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현 전주지검장)은 검찰 ‘조직’을 가장 우선시했다. 평소에도 “총장을 잘 모셔야 검찰이 잘된다”고 말했다.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칙에 충실했고, 한상대 검찰총장(퇴임)과 의견이 다를 때도 결국 한 총장의 의견에 따랐다. 검찰총장의 ‘오른팔’인 중수부장을 연임하며 한 총장과 호흡을 맞췄다. 그런 두 사람이 정권 말에 서로 칼을 겨누면서 ‘이명박 검찰’이 자체 붕괴한 것은 아이러니다.

■ 꼬이기 시작한 그날 2012년 11월22일 오후 3시. 대검찰청 출입 기자들은 8층 회의실에서 한 총장과 만났다. 검찰에 불리한 보도 내용에 대해 ‘부인’으로 일관하는 한 총장의 폐쇄적인 언론 대응에 불만을 나타내고 개선을 요구하는 자리였다. 한 총장과 기자들의 대화가 오가는 도중, 전아무개 서울동부지검 검사가 여성 피의자와 검사실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기사가 기자들의 스마트폰에 뜨기 시작했다. 한 총장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이미 보고받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검찰개혁 방안과 관련해 “중수부 폐지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는 말을 은근슬쩍 꺼냈다. ‘중수부 폐지’를 공론화해 ‘성검사’ 사건을 물타기 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성검사 사건과 한 총장의 중수부 폐지 검토 발언이 알려지면서 중수부와 특수부 검사들은 동요했다. 중수부의 한 검사는 “그때 한 총장이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 사건과 전아무개 검사의 성추문 사건을 뭉개려 중수부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3일 최 중수부장은 한 총장을 독대했다. 최 중수부장은 “국민들이 선택해 중수부를 없애야 한다면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기능은 어떻게든 남겨야 합니다”라는 뜻을 밝혔다. 한 총장은 “그럼,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면 중수부장은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물었고, 최 중수부장은 “제가 사표를 내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총장이 “그럼 다른 검사들도 사표 내겠네. 다 사표 내라. 그러면 나도 사표 낼게”라고 말했다.

최 중수부장은 이후 한 총장 방에 발길을 끊었다. 한 총장은 30일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공표한 상태였는데, 최 중수부장은 하루 전인 29일에 사표를 내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게 중수부장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한상대 총장의 고립 11월26일 아침 대검 간부회의에선 고성이 터졌다. 한 총장은 “나를 흔들려고 해?”라며 격분했다고 한다. 이날치 <한겨레>에 한 총장이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에스케이(SK) 최태원 회장에 대한 ‘봐주기 구형’을 지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앞서 2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에스케이 횡령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최태원 회장에게 양형기준상 최저 형량인 징역 4년을 구형해 비판을 받고 있었다.

검찰 관계자는 “한 총장은 자신이 중수부를 폐지하려고 하자, 최 중수부장이 이끄는 중수부와 특수부 사단이 일부러 ‘봐주기 구형’ 지시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난리가 났었다”고 전했다. 김광준·전아무개 검사 사건 등으로 한 총장 사퇴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그 사건들은 ‘개인 비리’ 차원이어서 총장 사퇴 요구는 무리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에스케이 ‘봐주기 구형’은 차원이 달랐다.

27일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의 주례보고 때도 한 총장의 흥분 상태는 가라앉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한 총장이 최 지검장한테도 ‘니들이 나를 흔들려고 해?’ 하면서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가 방 밖으로까지 들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에스케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서 수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즈음 검찰 게시판에 실명으로 검찰개혁을 촉구했던 윤대해 검사가 ‘내가 올린 개혁안이 검찰에 불리할 것이 없다. 평검사회의를 이용해 한 총장의 검찰개혁안 발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쓴 문자메시지가 이날 공개됐다. 검찰이 스스로 내놓을 개혁안은 나오기도 전부터 의심을 받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그 무렵부터 한상대 총장은 평소와 달라 보였다. 보고하러 들어가면 검찰 출신 선배들을 거론하며 ‘네 배후에는 누가 있어?’라고 할 정도였다. 윤대해 검사 사건도 마치 배후에 누가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때부터 참모들인 대검 간부들도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자신을 흔드는 세력이 있다는 의심을 깊게 품은 한 총장은 점점 스스로 고립돼 갔다.

■ 이명박 검찰의 몰락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28일 오후 5시40분, 기자들에게 한통의 문자메시지가 전달됐다. ‘대검 감찰본부, 오후 6시20분 브리핑 예정.’ 브리핑할 만한 사안이 없었던 상황이라 궁금증은 커졌다. 그런데 막상 오후 6시20분이 돼도 감찰본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20분쯤 지난 6시40분 이준호 감찰본부장이 상기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기자들은 귀를 의심했다. “누구요?” “최 중수부장입니다.”

앞서 이날 오후 5시40분께,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의 비리를 수사한 김수창 특임검사는 한 총장에게 수사결과를 보고했다. 최 중수부장이 김 검사에게 언론대응 방식을 조언했지만 문제는 없으며,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악용될 수 있다는 취지의 보고였다. 한 총장의 생각은 달랐다. 한 총장은 감찰본부장을 불러 “최 중수부장을 감찰하고 곧장 언론에 알리라”고 지시했다.

이를 전해들은 대검 간부들이 감찰본부장을 막고, 한 총장을 말렸다. 이들은 “감찰은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공개 감찰은 안 됩니다”라고 했다. 대치 국면은 20여분간 이어졌고, 애초 브리핑 예정 시각을 넘겼다. 브리핑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파악한 한 총장은 감찰본부장에게 직접 전화해 큰 소리로 다그쳤다. “당장 기자실 내려가서 공개 안 하고 뭐해!” 검찰총장이 자신의 ‘오른팔’인 중수부장에게 칼을 들이댔고, 중수부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검찰 조직은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다음날인 29일 대검 간부들과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이 ‘수장’을 치려고 일어났다. 오전 9시, 오전 11시 각각 대검의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과 기획관·단장 및 과장들이 한 총장을 면담했다. “물러나십시오.” “니들도 나가라. 그렇게는 못한다.” 총장실에선 고성이 터졌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도 한 총장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낮 12시까지 물러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한 총장은 오후 1시50분께 백기를 반쯤 들었다. 그는 “30일 개혁안 발표 후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깨끗한 사의가 아니라 청와대에 신임을 묻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날 밤 한통의 전화를 받고 말이 달라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 전화는 청와대에서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총장은 30일 ‘표표히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최 중수부장도 사표를 냈으나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반려했다.

한 검찰 간부는 “김광준·전아무개·윤대해 검사 사건이 잇따라 터진 가운데서도 한 총장의 목적은 하나였다. 바로 임기를 채우는 것이었다. 잇단 악재를 중수부 폐지로 덮으려고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자리 보전에 모든 초점을 맞추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의 한 특수부장은 “한 총장은 사건을 가장 많이 흔든 총장이었다”고 말했다. 총장으로서 신망을 잃어, 한 총장이 물러나는 게 순리였다고 보는 검사들이 많았다.

다른 견해도 있다. 한 검찰 간부는 “결과적으로 그건 하극상이었다. 검찰로서는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검찰’의 두 축이었던 ‘티케이’(TK·대구경북)와 ‘고려대’의 권력투쟁으로 보기도 한다.

뇌물수수 검사와 성추문 검사 파문 등 검찰의 위기 속에 사퇴를 발표했던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뇌물수수 검사와 성추문 검사 파문 등 검찰의 위기 속에 사퇴를 발표했던 한상대 검찰총장이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스1
■ ‘그들’이 출세한 대가 어찌됐든 ‘이명박 검찰’은 막장드라마를 연출하며 파국을 맞았다. 검찰은 정치권력에는 탐나는 통치수단이다. 길들이기는 간단하다. 이명박 정권처럼 ‘충성하면 인사로 챙겨준다’는 공식을 실천하면 된다. 이런 구조에서 검사들이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 인사권자다. 정권의 입맛에 맞아야 출세한다. 한 검찰 간부는 “김대중 정권 때는 호남 검사들이 검찰을 망쳤다.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호남 출신 간부들이 수사와 인사를 다 해먹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는 정권 초기 갈등이 있었지만 검찰을 통제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검찰을 너무 풀어놨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검찰이 다시 5·6공화국 시절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정권에 충성한 일부 검사들은 출세의 길을 달렸다. 2009년 전임 부장검사의 수사 거부 파동 끝에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를 자원해 맡았던 전현준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장은, 이 사건을 기소한 이후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장,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연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화려한 승진 코스를 밟았다. 이명박 정권 초기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과 미네르바 사건 등에 발을 담근 검사들도 ‘충성 보상’을 받았다.

일부 검사들이 출세한 대가로 전체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수도권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개혁을 논하기 전에 이상한 수사를 한 검사들을 먼저 날려야 한다. 그렇게 보여줘야 후배들이 나쁜 짓을 따라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인적 청산’이 절실한 이유다.

김정필 기자 fermat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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