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인권운동사랑방 엮음,오월의봄, 2013 민홍철 민주당 의원(김해시 갑)이 군대내 동성 성행위를 범죄로 확정하는 군형법을 발의했다가 논란이 일자 “모든 성행위”로 변경했다.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그는 제안 자체로 대한민국 의정사에 영원히 ‘혐오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민주당 의원 20명이 이전 정권 때부터 추진해온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하는 와중에 돌발, 더욱 실망스럽다. 이 책은 비혼모(미혼모가 아니다),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이주자, 청소년, 장애인, ‘HIV/AIDS 감염인’,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런 나열이 민망하다. 인간은 이 책에 나오는 정체성 혹은 차별 경험의 교집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던 정부는 입법예고안에 7가지 항목을 삭제했다. 추가될 내용으로 착각할 정도로 기본적인 사안이다.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지향, 학력, 병력.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해도 된다? 항의하는 전문가들에게 언론은 “차별 피해 사례를 알려 달라”고 했고, 이 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매일 신문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가 바로 피해 사례 아닌가? 그리고 사례를 ‘알려주면’ 그대로 보도하기나 하는가? 언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으면서 “사례를 말하라, 증거를 대라”고 한다. 내 글이 편집자로부터 되돌아올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이거 사실이에요? 누가 믿어요?” 맞다. 경험한 나도 못 믿겠으니까. 사실에 대한 인식의 승리! 이것이 정의가 패배하는 첫번째 순간이다. 문제는 피해 사례가 누구나 겪는 지루하도록 평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당사자의 언어가 곧바로 사회가 인정하는 차별의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문제제기의 시작임은 분명하다(271쪽). 이 책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문제제기도 중요하다. 더불어 내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사회) 사이의 정치학이다. 피해, 정체성,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차별을 받았을 때 우리는 갈등한다.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만(“하소연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내 처지를 수용해 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상황이 개선된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소문만 나고 결핍된 인간으로 취급받을 위험이 더 크다. 말하고 공감 받음이 ‘해결’의 시작이기에 이 욕구는 절실하다. 동시에 낙인으로 인해 사회적 성원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참고 사는 ‘동력’이 된다. 이 내면의 갈등이 격렬한 나머지 남들이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 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 분열 개념은 나치 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의 수위와 표현은 달라진다. 조절하지 못하는/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이 너무 순수해서 아픈 이들이요, 다른 하나는 전직 대통령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권력자다. 두 경우가 아니라면, 협상의 고통을 정치적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나는 증언 형태의 책을 읽을 때 말하는 사람의 갈등을 가장 주의 깊게 살핀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실천이 민주주의다. 이 책,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11쪽)는 정치적, 문학적, 윤리적으로 말하기와 듣기의 모범이다. 말하는 사람은 차별 경험을 본질적 자아로 환원하지 않으며, 듣고 쓰는 12명 저자들의 지성과 성찰은 안쓰러울 정도로 치열하다. 내용은 ‘슬프지만’ 방식은 독자를 위로한다. 앎과 삶을 위해 필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HIV 포지티브(양성)’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어떤 대기(pending) 상태 같은. 내 처지도 그러하다. 문학평론가 김영옥이 쓴 카프카의 산문 <이웃 마을>에 대한 브레히트와 베냐민의 해석도 매혹적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 “굴비야 미안해”…‘영광원전’ 이름 바꾼 사연
■ 문성근 전격 탈당…“민주당 혁신 희망 안보여”
■ 검찰 ‘국정원 댓글작업’ 사이트 8~9곳 전수 조사
■ 김영환 “국회서 왕따당하는 안철수, 신당 추진할 것”
■ “몸도 불편한데 공부해서 뭐해?”
인권운동사랑방 엮음,오월의봄, 2013 민홍철 민주당 의원(김해시 갑)이 군대내 동성 성행위를 범죄로 확정하는 군형법을 발의했다가 논란이 일자 “모든 성행위”로 변경했다. 이번 일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그는 제안 자체로 대한민국 의정사에 영원히 ‘혐오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사태는 민주당 의원 20명이 이전 정권 때부터 추진해온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하는 와중에 돌발, 더욱 실망스럽다. 이 책은 비혼모(미혼모가 아니다),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이주자, 청소년, 장애인, ‘HIV/AIDS 감염인’,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런 나열이 민망하다. 인간은 이 책에 나오는 정체성 혹은 차별 경험의 교집합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던 정부는 입법예고안에 7가지 항목을 삭제했다. 추가될 내용으로 착각할 정도로 기본적인 사안이다. 출신 국가, 언어,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지향, 학력, 병력.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별해도 된다? 항의하는 전문가들에게 언론은 “차별 피해 사례를 알려 달라”고 했고, 이 책이 탄생한 계기가 되었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매일 신문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가 바로 피해 사례 아닌가? 그리고 사례를 ‘알려주면’ 그대로 보도하기나 하는가? 언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이야기해도 믿지 않으면서 “사례를 말하라, 증거를 대라”고 한다. 내 글이 편집자로부터 되돌아올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이거 사실이에요? 누가 믿어요?” 맞다. 경험한 나도 못 믿겠으니까. 사실에 대한 인식의 승리! 이것이 정의가 패배하는 첫번째 순간이다. 문제는 피해 사례가 누구나 겪는 지루하도록 평범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당사자의 언어가 곧바로 사회가 인정하는 차별의 증거가 될 수는 없지만, 문제제기의 시작임은 분명하다(271쪽). 이 책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문제제기도 중요하다. 더불어 내가 가장 주목하는 주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사회) 사이의 정치학이다. 피해, 정체성,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차별을 받았을 때 우리는 갈등한다. 고통과 억울한 심정을 타인에게 말하고 싶지만(“하소연이라도 실컷 해봤으면”) 내 처지를 수용해 줄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고 상황이 개선된다는 보장은 더욱 없다. 소문만 나고 결핍된 인간으로 취급받을 위험이 더 크다. 말하고 공감 받음이 ‘해결’의 시작이기에 이 욕구는 절실하다. 동시에 낙인으로 인해 사회적 성원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두려움은 참고 사는 ‘동력’이 된다. 이 내면의 갈등이 격렬한 나머지 남들이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많다. 차별 경험을 말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을 배려한다. 그래서 경험한 자아와 말하는 자아는 분열된다. 또 분열되어야만 한다. 모든 말하기, 글쓰기가 협상인 이유다. 원래 이 자아 분열 개념은 나치 학살의 생존자들이 자기 경험을 믿어주지 않을 것을 걱정하여 자아를 조정하는 고통에서 발전했다. 지금은 모든 담론 행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의 수위와 표현은 달라진다. 조절하지 못하는/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신이 너무 순수해서 아픈 이들이요, 다른 하나는 전직 대통령처럼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권력자다. 두 경우가 아니라면, 협상의 고통을 정치적 에너지로 삼아야 한다. 나는 증언 형태의 책을 읽을 때 말하는 사람의 갈등을 가장 주의 깊게 살핀다. 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실천이 민주주의다. 이 책, “이야기를 기다리는 이야기”(11쪽)는 정치적, 문학적, 윤리적으로 말하기와 듣기의 모범이다. 말하는 사람은 차별 경험을 본질적 자아로 환원하지 않으며, 듣고 쓰는 12명 저자들의 지성과 성찰은 안쓰러울 정도로 치열하다. 내용은 ‘슬프지만’ 방식은 독자를 위로한다. 앎과 삶을 위해 필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HIV 포지티브(양성)’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어떤 대기(pending) 상태 같은. 내 처지도 그러하다. 문학평론가 김영옥이 쓴 카프카의 산문 <이웃 마을>에 대한 브레히트와 베냐민의 해석도 매혹적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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