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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저작권을 나눠줘요, 세상이 바뀝니다

등록 2013-06-14 19:26수정 2015-12-22 15:37

현직 판사이자 저작권 공유운동을 하는 윤종수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와 5월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청년일자리허브센터에서 만났다. 법조인들과 록밴드를 만들고, 젊은이들과 해킹대회를 여는 등 늘 사람들을 모아 일을 꾸미는 윤 판사는 80대엔 노인정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현직 판사이자 저작권 공유운동을 하는 윤종수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와 5월23일 오후 서울 은평구 청년일자리허브센터에서 만났다. 법조인들과 록밴드를 만들고, 젊은이들과 해킹대회를 여는 등 늘 사람들을 모아 일을 꾸미는 윤 판사는 80대엔 노인정에서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CC운동’ 하는 윤종수 판사
법 집행하는 현직 판사면서도
현행 저작권법 모순 지적하며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 운동
멋모르고 시작한 일이란다 

사회 진보 추구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이것도 몰라, 바보야?’라고
상대방 무시해 삐치게 하는 것
저작권 전문가들 반대하지만
그들의 상황 이해하며 토론

미련일까, 몽상일까. 10여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그토록 그리웠던 옛 친구와 동료들을 만났지만 가슴속 허기는 채워지질 않았다. 내가 시민운동을 하러 돌아왔다고 하면 친구들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넌 아직 젊구나. 힘도 좋다.” 자조 섞인 냉소 사이로 좌절의 상처가 내비쳤다. 한때 세상을 뒤집겠다고 낡은 운동화가 해지도록 아스팔트 위를 누비던 청년들이 그들인가. 돌아서는 어깨가 고단해 보였다. 스펙 경쟁과 취업난에 기진맥진한 젊은 세대나, 뒷방 노인네 취급에 격분한 나이 든 세대나 불통의 장벽에 둘러싸여 제각기 외롭고 서글프다.

희망을 찾고 싶었다. 개인적 경험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낯선 것, 새로운 것, 나와 다른 것에 자신을 열어 그 신선한 소통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열린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혁명’이나 ‘진보’조차 낡고 진부한 용어가 되어버린 시대, 열린 사람들의 심장 소리만이 우리를 꿈꾸게 한다. 그들 심장의 고동 소리를 찾아 떠나는 모험의 이름은 ‘열림’이다. ‘열린 사람들의 어울림’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고, 스스로를 ‘열기 위한 몸부림’에 그치더라도, 나는 이 탐험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소망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오래된 진보의 화석이 아니라, 그치지 않고 자라나는 열린 성장판이므로.

창작자는 그럼 뭘 먹고 사냐고?

첫번째 탐사의 주인공은 윤종수, 만 48살 남자. 경기도 부천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1983년 서울대 법대 입학, 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지금은 서울 북부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일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 같은 대학을 다녔지만 나는 그와 마주친 적이 없다. 법대 출신 지인들에게 수소문을 해봐도 학창시절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혹시 운동권?” 한 선배는 내 질문에 짧게 답했다. “범생이.” 현직 판사로 법을 집행하는 입장인 그가, 현행 저작권법의 모순을 지적하며 저작물 공유 운동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를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어떤 사람인지 선배에게 재차 물으니 “사심 없는 사람. 록밴드도 할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를 더 만나고 싶어졌다.

그를 보기로 한 곳은 법원이 아니라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센터였다. 널찍한 북카페를 중앙에 두고 전면 유리로 칸칸이 나뉜 작은 사무실 중 맨 끝자리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이하 CC코리아) 사무실이다. 세 명의 상근자와 젊은 자원봉사자들로 세 평 남짓한 사무실이 비좁아 보였다. 윤종수 판사가 들어섰다. 몸에 딱 달라붙는 흰 셔츠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라는 이름이 너무 어렵다.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하나?

“우리도 계속 고민중인데 딱 부러지게 쉬운 이름을 찾지 못했다. 홍보 컨설팅을 하는 친구까지 불러다가 몇 시간 동안 끙끙대며 카피를 짜냈는데 그때 나온 키워드가 ‘창작과 나눔’이다.”

-창작물을 나눈다는 뜻인가?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스를 나눠준다는 뜻이다. 라이선스란 원래 ‘허용’한다는 의미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라이선스를 독점적인 것으로 오해하는데, 그건 저작권자가 정하기 나름이다. 본인이 원하면 모든 사람에게 이용 권한을 줄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이하 CC)는, 공유경제라는 개념의 창안자로 유명한 로런스 레시그 하버드 법대 교수가 2002년 공개한 새로운 저작권 라이선스 시스템이다. 저작권자가 자기 작품에 대해 CC 라이선스 표지를 달아 인터넷에 올리면, 이용자는 저작권자가 원하는 조건을 지키는 한 자유롭게 그 작품을 복사하거나 배포할 수 있다. 저작권료는 낼 필요가 없다. 저작권자는 “작가(저자)가 나라는 걸 인용해 주세요”라든지 “영리(혹은 비영리) 목적으로 쓸 수 있어요”라든지 “복사는 가능하지만 변형하진 말아주세요” 같은 조건 중에 하나 혹은 여러 개를 선택할 수 있다. 온라인백과 ‘위키피디아’와 동영상 강연 ‘테드’(TED), 프레젠테이션 공유 ‘슬라이드셰어’ 등에 나오는 자료를 누구나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는 것도 여기 실린 모든 저작물이 CC 라이선스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는 그럼 뭘 먹고 사나?

“그들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주느냐가 관건이다. 창작자에게 직접 물어봐야 한다. 네가 원하는 인센티브가 뭐냐? 어떤 사람은 그저 즐기기 위해, 어떤 이는 이름을 알리고 싶어서, 또 어떤 이는 돈을 벌고 싶긴 한데 지금의 방식으론 돈이 되질 않아서… 다양하다. 콘텐츠 산업이라고 하면 자꾸 대박신화를 들먹이는데, 사실 대다수 창작자들의 소원은 아주 소박하다. 자기가 포기하지 않고 창작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클래식 음악가의 예를 들었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은 대중음악을 하는 인디뮤지션보다 상황이 나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소극장이나 클럽에서 연주하는 인디들보다 더 수익모델이 없더라고. 대다수의 클래식 음악가에게 유일한 호구책이 레슨인데 학생들을 끌기 위해서 자비를 들여 연주회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더라는 것이다. 작년 봄, CC코리아가 주관한 ‘CC아트해프닝’은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였다. “당신의 가족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듭니다”라는 주제로, 사진과 함께 사연을 보낸 신청자 중 열두 가족을 골라, 6명의 현대음악 작곡가가 가족별 테마음악을 만들어 주는 행사였다. 3년째 병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께 손주를 안겨드리는 젊은 부부, 외항선을 타는 아버지와 묵묵히 살림을 맡아온 어머니의 사연이 정독도서관 앞뜰에서 클래식 선율로 연주되었다. 작곡가들의 자발적인 협조 아래 CC 라이선스를 달고 발표된 곡들이었다. 음악인들은 청중을 만나는 새 길을 발견했고 신청자들은 잊지 못할 가족테마곡을 선물받을 수 있었으며, 인터넷 이용자들은 언제라도 그 사진과 음악을 내려받을 수 있다.

(※클릭하면 이미지가 커집니다.)윤종수를 만든 시간들

‘광인(光人)파티’에서 미친 로커가 되다

-현직 판사로 CC코리아 설립에 나서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많이들 그걸 물어보는데… 사실 멋모르고 시작한 거다.(웃음) 2003년 CC본부 사람 몇이 정보법학회의 초청으로 내한했는데 ‘너희가 한국지부 맡아볼래?’ 해서 총무인 내게 일감이 떨어졌다. 당시 학회장인 황찬현 서울중앙지법원장이 나더러 실무 준비를 하라고 하실 때까지 난 CC가 뭔지도 몰랐다. ‘캠퍼스 커플인가?’ 했다.(웃음) 2005년 3월 한국지부 개소식 전날까지 당일치기로 준비해서 부랴부랴 행사는 치렀는데…. 그러고 나니 가슴이 덜컹하더라. ‘이거 큰일 났다!’ 법률문제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사회운동이더라. 운동 ‘운’ 자도 모를 때였는데….”

호텔 연회장에 얼음장식 세워놓고 판사들이 빙 둘러서서 CC코리아 오픈했다고 보도가 나가자, 전부터 CC에 관심 있던 진보적 블로거들이 발끈했다. CC코리아 사이트는 순식간에 비난과 조롱의 댓글로 가득 찼다. 윤 판사는 CC코리아를 정보법학회에서 독립시키자고 법조인들을 설득한 뒤, CC에 호의적이던 ‘다음’(Daum) 이재웅 사장의 협조를 얻어 비판적인 블로거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다. 경계심 가득한 비판자들 앞에서 그는 솔직하게 실토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거 사실이다. 근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 앞으로 열심히 할 테니 같이 일하자.” 그렇게 해서 CC코리아 최초의 자원봉사자 모임이 결성되었다. 다음 직원으로 행사 참관차 왔던 강현숙 실장(현 CC코리아 상근자)도 그때부터 CC 사람이 되었다. “행사를 하는데 윤 판사님 혼자 플래카드 걸다가 전단 나눠주다가 사회 보다가 원맨쇼를 하시더라. 엉겁결에 나도 같이 전단지를 돌리게 됐다.” 자원봉사자들의 열정에 힘입어 2009년 CC코리아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발족했다. 현재 회원은 170여명. 여전히 대부분의 활동은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이루어진다.

-CC코리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나? 법률자문기구인가, 시민운동단체인가?

“CC가 세계 70여개국에 있는데 다른 나라에선 주로 대학연구소나 변호사 사무실 부설로 되어 있지, 우리처럼 자원봉사자들이 커뮤니티를 이뤄서 활동하는 데가 없다. CC본부에서도 무척 신기하게 생각한다. 나더러 ‘CC코리아는 무슨 군대 같다. 너 혹시 애들 때려서 일 시키니?’ 묻고….(웃음)”

CC코리아는 해마다 12월16일 세계 CC 탄생을 기념해 자체 행사를 연다. 비영리단체에서 주관하는 대개의 연말 행사가 회원 확대와 재원 마련을 위한 것인 데 비해 호프데이(Hope Day)라 이름 붙여진 CC코리아의 행사는 말 그대로 커뮤니티 회원들의 ‘잔치판’이다. 2010년 호프데이의 부제는 ‘광인(光人)파티.’ CC를 빛(光)내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狂) 즐겨보자는 뜻이었다. 이날 윤 판사는 긴 머리 가발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록스타 복장으로 행사장에 나타났다. 고교 때부터의 로망이던 록스타 사인회를 해보겠다고 자신의 프로필 사진까지 수십장 복사해 들고 왔다.

“난 광인 복장을 하라고 해서 진짜 그러고 갔지. 가보니까 나만 미친 사람 돼가지고….(웃음)”

그래도 준비해 간 프로필은 회원들 줄 세워서 사인해 줬다. 팬으로 가장(?)한 회원들은 한장 받고 다시 줄 뒤로 가서 또 받고… 그래도 준비해 간 프로필 사진의 반이 남았다고 한다. 한쪽에선 ‘기분 나쁠 정도로 안 닮은 초상화’란 팻말을 걸고 그림을 그려주는 회원도 있었고, 믿거나 말거나 손금과 관상을 봐주는 이도 있었다. 파티의 피날레는 ‘CC밴드’의 공연이었다. 자칭 록스타 윤종수 판사가 이끄는 4인조 밴드 ‘크레이지 코드’(Crazy Code)였다.

-참 재밌게 사신다.

“내가 제일 신나는 건 커뮤니티를 통해 아무 보상 없이 기꺼이 일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다. 피시통신 시절 천리안 ‘오디오 비디오 동호회’ 시솝(운영자)을 맡은 적 있다. 내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돈이나 다른 목적 없이 가치 있는 일을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CC코리아를 하는 가장 큰 기쁨은 창의력 넘치는 젊은 친구들과 공동으로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점이다. 이런 커뮤니티가 기업이나 개인이 못 하는 일을 해낸다. CC를 하면서 인터넷이 세상을 바꿔낼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고? 인터넷에는 온갖 너절한 정보와 악플, 폭언도 난무한다.

“인터넷을 쓰레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인터넷은 원래 지저분한 곳이다. 사람들은 깔끔한 걸 좋아하고 혼란스러운 걸 못 견뎌 하지만, 세상은 그리 깔끔하지 않고 사람들 사는 것도 그렇다.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정화할 능력이 있느냐 묻는다면… 그럴 거라 난 믿는다.”

윤 판사는 인터넷 이용자의 권리와 공공정보 활용 등에 대해 진보적 견해를 가진 대표적인 법조인이다. 2010년 인터넷에 학원 유명강사의 학력 위조 의혹에 대한 글을 올린 블로거에게 그는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비록 그 블로거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은 아니었더라도 “유명강사의 학력에 대한 정보와 검증은 사회 공공의 관심 사안이며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였다. 2009년 한 고등학생이 공공 데이터를 활용해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서울버스’ 앱을 만들고 거기 배너광고를 실어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해서도 윤 판사는 “공공 데이터로 비즈니스를 만든 건 데이터의 가치를 높인 일”이라며 옹호했다.

CC코리아의 ‘1호 자원봉사자’인 윤종수 판사가 서울 불광동의 사무실에서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고 있다.
CC코리아의 ‘1호 자원봉사자’인 윤종수 판사가 서울 불광동의 사무실에서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을 만나고 있다.

80년대 소심남, 80대엔 노인정 커뮤니티를…

변화하는 정보환경에 걸맞지 않은 사법체계를 질타하며 문화공유운동에 앞장서는 현직 판사. 이런 사람이 80년대엔 시위나 집회에 냉담한 ‘범생이’였다는 게 나로선 의아했다. 그땐 왜 조용한 학생이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인터뷰 시작하고 처음으로 그가 잠시 멈칫했다.

“소심했던 것 아닐까. 겁도 나고. ‘저렇게 해서 세상이 변하겠나. 제 몸만 다치지’ 했다. 그땐 세상을 잘 몰랐던 건지도…. CC를 하면서 사람들 힘으로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진보의 가능성을 믿게 된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의 선의가 확산될 수도 있지만 악의가 증폭되기도 한다. 일베 같은 그룹도 있지 않은가?

“선의가 일시적으로 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이트 폐쇄나 규제로 문제를 풀면 안 된다. 이건 싸움이 아니라 경쟁이다. 커뮤니티를 통해 좋은 사례를 자꾸 만들어 플러스를 생산하면 마이너스가 상쇄되고 극복될 수 있다. 윤창중 사건을 보라. 저러면 저렇게 되는구나, 이건 일종의 학습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바뀌는 것 아닐까.”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길 바라나?

“(잠시 생각) … 말이 안 되는 게 세상에 너무 많다. CC 활동 해보니 세상의 모든 불합리가 이해가 되더라.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할까?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있다. 제일 이해 못 하는 게 저작권 전문가들이다. 기존의 프레임이 딱 자리잡고 있어서 변화가 낯설고 두렵기 때문일 거다. 그런데 사회의 진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이 당연한 걸 왜 몰라? 너 바보냐?’고 상대방을 무시해서 삐치게 하는 것… 내가 재판을 해보면 두 소송 당사자가 같은 일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얘길 한다.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니다. 둘은 각자 자신이 믿는 진실을 말하는 거다. 많은 경우 분쟁이 그렇다. 세상에 절대적인 선악의 구분이 없다고는 못 하지만, 악을 판단할 때도 ‘내 기준’에서만 보면 안 된다. 그들이 그걸 진실이라고 믿는 상황을, 적어도 이해는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이는 분노와 절박함 때문에, 어떤 이는 보람과 기쁨을 찾아 사회운동에 발을 디딘다. 어느 길이 더 나은지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내 경우엔 분노와 절박함으로 시작한 일이 뜻대로 안 풀릴 때, 그 좌절의 상처와 원망이 깊었다. 이후 어떤 일을 하든 ‘나’를 희생해 ‘대의’에 복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행복과 사회적 가치 추구를 일치시켜온 리버럴리스트 윤종수 판사의 유쾌한 도전이 내겐 부럽고도 낯설다. 그는 조금 늦게 출발했지만 열린 자세로 스스로를 진화시켜온 사람이다. “30년 후 어떤 사람으로 남길 바라냐?”고 물었다.

“글쎄, 난 여든살 되어도 노인정 가서 커뮤니티 만들고 있지 않을까….(웃음)”

나도 그 노인정에 같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녹취·진행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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