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토요판/몸]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게 생겼고, 지문도 다르게 생겼다.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것으로 눈의 조리개와 피부정맥도 있는데, 모두 개인을 식별하는 데 쓸 수 있다. 시신을 해부해서 보면, 속에 있는 구조도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다. 예를 들면, 어느 동맥이 둘로 갈라진 사람도 있고, 셋으로 갈라진 사람도 있다.
이처럼 겉과 속에 있는 구조가 사람마다 다르게 생긴 것을 ‘변이’라고 부른다. 변이는 생김새가 다를 뿐이지 쓰임새는 괜찮다. 쓰임새가 괜찮지 않으면 기형이라고 부른다. 동맥이 둘로 갈라져도 셋으로 갈라져도,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의 쓰임새는 괜찮다. 지문이 다르게 생겨도, 손가락 바닥을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지문의 쓰임새는 괜찮다. 많은 사람은 자기 얼굴이 못생긴 것을 대수롭게 여기는데, 해부학 선생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내 얼굴이 못생긴 것은 변이이지, 기형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못생긴 얼굴을 아무 데서나 뻔뻔하게 내민다. 이 연재에서 내민 내 얼굴의 만화를 봐도 얼마나 못생겼는지 짐작할 것이다.”
변이, 기형과 얽힌 의학 용어는 선천, 후천이다. 선천은 태어나기 전에 결정되는 것이고, 후천은 태어난 다음에 결정되는 것이다. 변이는 태어나기 전에 결정된다. 지문의 경우, 태어난 다음부터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즉 ‘선천변이’만 있고 ‘후천변이’는 없다. 따라서 ‘선천변이’라고 부르지 않고 간단하게 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기형은 ‘선천기형’도 있고 ‘후천기형’도 있다. ‘선천기형’은 부모의 유전자 때문에 또는 임신부가 잘못 먹은 약 때문에 생길 수 있다. 보기를 들면 선천심장병이며, 이것은 쓰임새가 괜찮지 않아서 수술로 치료해야 된다. ‘후천기형’은 살면서 겪는 사고와 병 때문에 생길 수 있다. 보기를 들면 교통사고로 생긴 ‘후천기형’이며, 역시 쓰임새가 괜찮지 않다.
해부학 선생은 의과대학 학생한테 변이만 가르치고, 기형을 가르치지 않는다. 기형은 임상의학 선생의 몫이다. 변이를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학생한테 자기 조의 시신뿐 아니라 다른 조의 시신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신마다 다르게 생긴 것을 스스로 깨닫는다. “어느 동맥이 우리 시신에서는 둘로 갈라졌는데, 너희 시신에서는 셋으로 갈라졌다.” 이렇게 실습실에서 변이를 겪는 것은 바람직하다. 나중에 의사가 된 다음에 병원에서 환자의 변이를 봐도 어리둥절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한테 다른 조의 시신을 보라고 권하면 말을 듣지 않는다. 억지로 시켜야 한다. 좋은 방법은 모든 시신을 갖고 실습 시험 문제를 내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조의 시신을 보기 싫어도 봐야 한다. 다른 조의 시신을 봐야 하는 까닭이 또 있다. 남성과 여성의 구조를 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성 시신을 해부한 학생이 나중에 산부인과를 전공할 수 있으며, 따라서 여성 시신의 생식계통을 봐야 한다. 학생이 다른 조의 시신을 보러 갈 때 연수 간다고 부풀려서 말한다. 별일도 아닌데 연수 간다고 말하니까, 의사인 것처럼 보인다. 어린이가 병원 놀이를 하면서 의사인 척하듯이, 의과대학 학생도 병원 놀이를 하면서 의사인 척한다.
시신의 변이를 조사하는 것은 해부학 선생의 연구 중에서 가장 전통 있는 것이다. 여러 시신을 해부해서 어느 구조의 변이를 유형으로 나누고, 각 유형의 빈도를 구한다. 또는 어느 구조의 길이를 재서 성별, 나이, 인종에 따른 차이를 살핀다. 시신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는 의사의 진료에 직접 도움을 준다.
변이 조사는 비싼 장비와 시약을 쓰지 않고, 해부학 선생의 손과 눈으로 진행하므로 고달프다. 게다가 비싼 장비와 시약을 쓰지 않는다고 연구비를 넉넉하게 받지 못하므로 더 고달프다. 그래도 한국의 해부학 선생은 사명감을 갖고 부지런히 변이를 조사해서 진료에 도움 주고 있다. 아울러 국제 학술지 논문을 많이 만들어서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변이는 해부학 선생의 연구 대상이며, 따라서 해부학 선생의 밥줄이기도 하다.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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