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택 사회부 사회정책팀 기자
친절한 기자들
오랜만입니다. 앞서 친절한 기자 대신 꽃을 든 기자 사진을 내걸며 ‘꽃기자’를 자처했다가 지인들로부터 조소를 샀던 임인택입니다. 앞마당 꽃대궐보다 손에 쥔 꽃 한잎이 더 귀한 법인데, 지인들의 비웃음은 시든 꽃일지언정 제 몫이어선 안 된다는 말이겠거니 했습니다.
다만 꽃기자는 헷갈렸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말인즉 ‘꽃을 들지 말라, 들면 빼앗겠다’는 지엄한 명령인가, ‘꽃을 들면 차라리 신문을 끊겠어요’라는 짓궂은 요구인가 싶어서였지요. 그러니까 명령과 요구, 뭐가 더 강한가 말이지요.
노동계·학계·야당이 거세게 반대하는데도 결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인가가 취소되는 과정에서도 제가 집착하고, 그럴수록 수상한 건 지엽말단의 ‘용어’였습니다. 정부의 노조 취소가 헌법상 단결권을 침해하고, 법외노조가 된대도 노동3권은 유효하다는 지적 따위는 ‘대한민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만큼 멀고 사치스러우니까요.
지난 24일 고용노동부가 전교조 노조 권한을 박탈했습니다. 정부는 전교조에 “해직자가 노조에 가입·활동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시정요구”했으나 “이행하지 않아 법상 노조 아님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풀어쓰자면, 6만명 규모의 전교조에 해직자 교사 9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해 있어 위법하므로 노조의 지위를 통째 빼앗았다는 말입니다.
전교조에 대한 ‘시정요구’는 노동계가 이를 가는 이명박 정부도 쓰지 않았던 행정입니다.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노조에 관한 기본 규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노조를 취소할 수 있는 수단을 정부에 주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법률에 의해 노조 지위를 준 이상 도로 빼앗는 일은 불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대신 정부는 노조 운영상 위법 사항이 있으면 시정명령을 내려, 따르지 않을 시 과태료를 부과합니다. “노조가 노동관계법령을 위반할 경우…시정명령을 받은 노조는 30일 이내에 이행해야 한다”는 노조법 21조가 근거입니다. 이명박 정부도 이에 따라 전교조의 해직자 조합원 규약을 두고 시정명령만 2010년, 2012년 두차례 내리고 물러섰습니다.
법치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와 달리, 원칙을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는 돌연 노조법 대신 노조법 하위의 시행령을 꺼내들었습니다. “노조 설립신고 반려 사유가 발생할 경우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요구하고, 이행 않는 경우 노조 아님을 통보해야 한다”는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입니다. 1987년 국회가 노조법상 노조 해산 명령권을 삭제하자 이듬해 노태우 정권이 대통령령으로 앉힌 조항으로, 모법에도 없는 노조 취소 수단을 정부 뜻대로 강구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니까 또 묻게 됩니다. 노조법의 시정명령과 시행령의 시정요구, 누가 더 센가요? 법체계도, 데시벨도 노조법의 시정명령이 높은데, 막강하기론 시행령의 시정요구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언어기만’인 셈입니다.
전교조의 변호인단은 물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노조법에서는 교부된 설립신고증을 반려하거나 이를 취소할 법적 규정이 없는데, 법률이 위임하지 않은 시행령으로 헌법상 기본권인 단결권을 부정했다’는 취지로 고용부에 맞선 이유입니다.
해직자 조합원과 관련해 합법노조가 된 지난 14년 동안 전교조의 규약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대목과 관련한 법도, 시행령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건 대통령과 장관뿐입니다. 전교조는 24일 노조 지위를 줬다 빼앗은 정부를 상대로 행정집행정지 신청과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요구가 아닌, 대한민국 법의 명령을 받겠다는 얘기입니다.
추신1. 아, 박 대통령의 원칙이 뭐냐고요? 단서만 있습니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로서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며 했던 말입니다. “한 마리 해충이 온 산을 붉게 물들일 수 있고… ‘날치기법’이 시행되면 노무현 정권과 전교조는 이를 수단으로 사학을 하나씩 접수할 것이다.”
추신2. 정부도 명령과 요구의 데시벨 차이를 모르는 것 같진 않습니다. 국제노동기구 등이 1990년대부터 한국 정부에 해직자 조합원을 배제하는 노동법 자체를 개정해야 한다고 요구(절차상 권고)해도 따르질 않았으니까요. 명령은 아니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신3. ‘법부터 지키라’고 훌닦는 여러 매체는 시정요구와 시정명령을 애당초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정요구가 탄생한 기형적 배경은 보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추신4. 노조법엔 여전히 정부의 노조해산 권한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1년 이상의 휴면노조에 한합니다. 고용부의 노사관계법제과 관계자는 말합니다. “내 기억에 노조 해산을 본 적이 없다.”
추신5. 노동 담당 기자로서 노동자의 기본권이 이처럼 옥죄는 시대, 더는 시든 꽃도 들지 말아야겠습니다.
임인택 사회부 사회정책팀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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