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이어 ‘개정 요구’ 공문
기재부·고용부 “조사 보고하라”
인사·조직개편 노사협의는 물론
근속휴가 등 복지도 ‘불합리’ 규정
“자율 노사관계에 과잉개입” 지적
기재부·고용부 “조사 보고하라”
인사·조직개편 노사협의는 물론
근속휴가 등 복지도 ‘불합리’ 규정
“자율 노사관계에 과잉개입” 지적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의 단체협약에 직접 개입해 무차별 개정을 추진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앞장서 노동권을 제약하는 ‘단협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국공무원노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노조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데 이어 노동정책이 심각하게 퇴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8일 전국 295개 공공기관에 ‘공공기관 지침과 상이한 단체협약 규정 조사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한겨레>가 은수미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공문을 보면, 기재부는 기관별로 노조와 맺은 이른바 ‘불합리한 단협 조항’ 내역을 파악해 보고하라고 요청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노조와 맺지 말아야 할 ‘불합리한 단협 조항’을 24개 사례로 구체화했다. 실질적인 단협 개정 가이드라인이다. 고용노동부도 28일 불합리한 규정을 개선해달라는 관련 공문을 이들 공공기관에 발송했다.
기재부가 손봐야 할 조항으로 꼽은 사례는 △조합원·조합임원 인사, 조직개편·정원 조정 때 사전협의 △노사 동수의 인사·경영·노사 등 위원회 구성해 사전합의 △경영상 이유로 구조조정·해고 시 시행여부·기준 등에 대한 사전합의 등이다. 인사경영권을 간섭하는 불합리한 조항이라는 게 기재부의 지적이다. 또 △장기근속휴가·안식년 조항의 존재는 물론 △시중금리보다 낮은 주택자금 대출 이자율 △경조비 별도 지급 등도 복리후생과 관련한 불합리한 조항으로 꼽았다.
해당 지침들 중 상당수는 그동안 공공기관 단협의 지침 구실을 해온 정부의 ‘예산편성·집행지침’에도 없는 것으로, 노동법으로 보장된 노동권을 침해하거나 자율적인 노조 활동 및 노사관계를 비트는 내용이다.
특히 기재부는 ‘적법한 쟁의행위 시 조합·조합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부과 금지’ 조항도 “노조 편향”이라는 이유로 불합리하다고 규정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3조)은 “적법한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향후 발생할 공공기관의 어떤 쟁의든 소송을 통해 강경대응하도록 부추기는 꼴이다.
근로기준법(24조)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방법 등에 대해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조합원 인사 시 사전협의’도 특정 조합원에 대한 차별,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노조가 단협에 두고 있고 ‘간부회의 등에 조합 대표 참여’ 등은 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로 권장되는데도, 싸잡아 불합리 조항으로 적시해 노조를 배척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법치’와 ‘노사관계 선진화’ 명목으로 공공기관을 압박했다. 2009년에만 한국노동연구원, 예금보험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12개 공공기관 노조의 단협이 불합리하다며 공공기관이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에 국제노동기구가 ‘일방적인 정부지침을 무기로 한 노조활동-노동기본권 침해 중단 및 대책 마련’을 한국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해직자 조합원 가입을 이유로 전교조의 노조 지위를 박탈했고, 전공노의 설립신고도 거부한 데 이어, 이미 국제기구가 지적한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노조 탄압 방식까지 더 강화하는 모양새다.
은수미 의원은 “단체협약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나 관련 법령에 의한 통제 범위가 아니다. 정부가 공공기관의 자율운영 원칙을 침해하고 자율적인 노사관계에 과잉 개입하고 있다”며 “(기재부 공문은) 공공기관에 사실상의 ‘가이드라인’ 구실을 할 것이고, 종국적으로는 공공기관 노사 분쟁을 발생하게 해서, 노동기본권의 침해와 공공기관 노사관계를 파탄낼 것”이라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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