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법원 첫 ‘심리적 부검’…자살자에 업무상 재해 인정

등록 2013-12-22 20:10수정 2013-12-22 21:11

부산 공무원 유족, 항소심 승소
“업무 스트레스 때문” 유서에도
1심선 ‘업무상 재해’ 인정 안해
2심선 유족·동료 심층면접 반영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는 소송에서 법원이 최초로 ‘심리적 부검’을 실시해 자살과 업무의 관련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서류만으로 자살과 업무의 관련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숨진 사람의 가족 및 직장 동료들에 대한 면접과 주변조사 등 심층분석을 통해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형남)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한 공무원의 유족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하라”며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부산지방국세청에서 근무하던 ㄱ(사망 당시 44살)씨는 2009년 9월 세무조사를 위한 자료분석 전담팀이 새로 생기면서 팀장으로 임명됐다. 자료분석은 국세청에서도 힘든 업무였다. 팀원은 7명이었지만, 3명은 기존에 맡던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유로 전담팀 일을 하지 않았다. ㄱ씨는 직원을 보충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ㄱ씨는 팀을 총괄하는 업무에다 일부 팀원의 업무까지 떠안는 바람에 늘 초과근무를 했다. 이 무렵부터 가족이나 주변에 “일이 많아서 죽을 만큼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고, 우울증세도 나타났다. 같은해 11월초 승진에서 제외되자 좌절감이 더해졌다. ㄱ씨는 11월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바지 주머니에는 “내가 죽는 이유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다. 한직에서 고생하는 직원들을 우대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유서가 들어 있었다.

유족들은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감정을 맡은 의사에게 자살 당시 경찰조사와 국세청 자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감정하도록 했다. 의사는 “우울증의 근본 원인은 개인의 기질적 취약성인데, ㄱ씨에게 기질적 취약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는 감정서와 다른 증거를 종합해 업무와 자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들은 항소심에서 재감정을 신청했다.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여 민성호(51) 연세대 원주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원주시 정신건강증진센터장)에게 심리적 부검을 의뢰했다. 민 교수는 서류 말고도 ㄱ씨의 부인과 자녀들, 직장 동료 등 7명을 면담하면서 석달간 ㄱ씨의 자살 원인을 추적했다. 민 교수는 “ㄱ씨 자살의 유전적 요인은 발견되지 않았고, 신경생물학적 요인은 (사망 당시) 신체부검을 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 절망감·우울장애 등 심리적 요인과 승진 좌절, 불합리한 조직 개편, 업무 과중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자살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 교수는 지난달 법정에 나와 유족과 공단, 재판부가 2시간 동안 감정절차의 적절성과 감정의견의 신뢰성에 대해 묻는 질문에 답했다. 재판부는 감정의견이 적정성과 신뢰성을 갖췄다고 판단했고, 다른 여러 증거를 종합해 ㄱ씨의 자살과 업무의 상관관계를 인정했다. 박형남 부장판사는 “서류에 의존한 감정서로는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기존 감정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심리적 부검을 도입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