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한 대학생의 대자보 질문이 봄꽃처럼 만발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부분 안녕하지 못함이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입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한 목사입니다.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전 대통령선거에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보훈처·경찰청·행정안전부·국방부 등 국가권력이 총동원되었습니다.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국민의 주권이 도적질당한 것입니다. 주권을 훔친 행위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지라는 거센 요구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뜻있는 두 분과 함께 지난 8월23일 국가정보원 광주지부 앞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삭발한 지 120여일이 지났습니다. 머리카락은 어느 정도 자랐지만 민주주의의 시계는 멈춰버렸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군사독재 시대로 돌아가는 듯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정직과 진실은 실종되었습니다. 공약은 파기되었고, 노동자·농민·서민은 짓밟히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하는 쌍용자동차 문제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밀양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할머니들의 소리를 외면하는, 인간에 대한 기본 예의마저 없는 야만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정권은 모든 것을 민영화하려 합니다. 철도·의료 등 국민의 것을 재벌에 넘기고 있습니다. 파국을 향한 폭주입니다.
훼손된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국민의 목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공안과 종북몰이로 치부하며 권력으로 짓누릅니다. 평생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살아온 사제의 강론마저 이념으로 색칠하면서 “국민 분열의 행위는 용납하거나 묵과하지 않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수준 이하입니다. 무지와 협박이며, 종교에 대한 탄압입니다.
종교인들의 집회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단식하는 목사와 시국미사에서 사제와 성도들이 거리에서 외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 공의는 물같이 정의는 하수같이 흘러라.” 정의와 평화를 외치는 마음이 버겁기만 합니다. 빼앗긴 민주주의, 안녕하지 못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며 땅에는 평화를 주시는 예수 성탄이 안녕하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광주 서정교회 장헌권 목사
<한겨레>는 이 시대 ‘안녕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싣는 ‘대자보판’을 지면에 마련했습니다. 사연을 전자우편(ruok@hani.co.kr)으로 보내주세요.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