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군 사법의 저울] ② 괘씸죄에 걸린 사법 피해자들
무리한 기소, 왜?
무리한 기소, 왜?
군사법원이 설치된 사단급 이상 부대의 지휘관은 군 검찰과 군 판사를 감독한다. 지휘관은 검찰의 수사 보고를 받고 구속 여부를 승인하고 고소·고발인의 재정신청 처리와 판결에 대한 감경 권한도 갖는다. 지휘관을 보좌하는 법무참모는 군 검찰과 군 판사에게 사건 처리 방향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실상 지휘관이 입건부터 판결까지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지휘관의 자의적 판단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군에서 지휘관의 심기를 건드린 사건은 엄중 처벌 대상이다. 군 법무관 출신으로 2009년 전역한 이아무개 변호사는 “지휘관이 군기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수사에 종종 관여한다. 사건에 따라 ‘구속하면 기소유예, 불구속하면 기소’라고 구체적인 지침이 내려온 적도 있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데도 구속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고 털어놨다.
피의자가 지휘관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형사처벌은 더욱 가혹해진다. 지난해 전역한 장아무개(23)씨는 현역 시절 가혹행위를 한 혐의로 영창에 갔다. 군 검찰은 “영창 다녀오면 더 이상 처벌받지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라”고 했다. 장씨의 아버지가 “부대에서 성추행이 발생했다”며 문제 삼자 군 검찰은 되레 장씨를 군무 이탈 등 혐의로 기소했다. 장씨는 군무 이탈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장씨 등 병사들이 당한 성추행에 대해 군 검찰은 수사하지 않고 합의를 종용했다.
군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 외에 다른 사항까지 고려한다. 계급이다. 군 사법체계에선 피의자 계급에 따라 결재권자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단급 부대에선 지휘관이 승인해야 부사관·장교를 구속할 수 있다. 일반 병사 구속은 법무참모가 결재한다. 군 판사가 영장을 발부하기 전, 사실상 지휘관이 구속 여부를 먼저 결정하는 셈이다. 이런 구조 탓에 계급이 낮을수록 구속되기 쉽다. 2012년 국방부 통계를 보면, 구속기소율은 병사가 27.3%로 가장 높고 부사관(11%), 영관급 장교(7.3%), 위관급 장교(6.3%), 군무원(5.1%) 차례다.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군 장성의 구속은 ‘하늘의 별 따기’다. 군 검찰이 장성까지 연루된 대형 사건을 수사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 거의 유일하다. 국방부 고등검찰부장을 지낸 최강욱 변호사는 2004년 건군 이래 최초로 현역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했다. 이 역시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이 승인을 미뤄 쉽지 않았다.
군 검찰은 수사상 권한이 적다. 군 사법경찰관인 헌병을 지휘할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헌병의 계급과 정보력이 군 검찰보다 앞선다. 일선 부대에서 헌병대장은 중령·소령이고, 군 검찰은 대위·중위다.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낸 최재석 변호사는 “국가와 개인 간의 문제가 발생하면 사법은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군 사법체계가 특수한 탓에 군 검찰은 개인보다 국가와 군을 대변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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