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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산 사람이 필요해

등록 2014-03-14 19:27수정 2014-03-15 16:21

[토요판] 정민석의 해부하다 생긴 일
책 읽어서 돈 버는 사람한테는 운동하는 것이 쉬는 것이고, 운동해서 돈 버는 사람한테는 책 읽는 것이 쉬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할 때 하는 것과 쉴 때 하는 것은 다르다. 즉 직업과 취미는 다르다.

의과대학에는 임상의학 선생과 기초의학 선생이 있다. 임상의학 선생의 일은 진료, 연구, 교육이며, 주로 하는 일은 진료이다. 기초의학 선생의 일은 진료를 뺀 연구, 교육이며, 주로 하는 일은 연구다. 의과대학에서 쓸 돈을 벌려면 진료를 많이 해야 하며, 따라서 임상의학 선생이 기초의학 선생보다 10배쯤 많다. 두 무리의 선생이 환자를 위해 직접, 간접으로 애쓰는 것은 같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거의 거꾸로다.

진료하는 임상의학 선생, 즉 의사는 의과대학에 딸린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만난다. 외래에서 한나절에 100명의 환자를 만나기도 하며, 따라서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환자는 한마디라도 더 말하려고 애쓰고, 의사는 한마디라도 덜 말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양쪽이 다 딱하다. 이처럼 의사가 많은 환자를 만나고 나면, 혼자 쉬고 싶어진다. 어떤 의사는 주말에 가족도 팽개치고 나 홀로 여행을 간다.

연구하는 기초의학 선생은 의과대학에서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하루 종일 혼자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쓴다. 일주일 내내 혼자일 때도 있다.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혼자 밥을 먹기도 한다. 나는 일할 때 전화조차 안 받으려고, 유선전화와 휴대전화를 울리지 않게 하는 반사회적인 짓을 저지른다. 이처럼 기초의학 선생이 외롭게 일하고 나면,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사람을 만나면 그동안 참았던 수다를 쉼없이 떤다. 역시 직업과 취미는 다르다.

의사는 쉴 때 병원 근처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보기를 들어, 병원 근처의 밥집에서 환자가 알아보고 인사하면 편하지 않다. 게다가 환자가 합석한 다음에 병원에서 섭섭했다고 따지면 무척 괴롭다. 그래서 의사는 진료할 때 만난 환자를 쉴 때 안 만나려고 애쓴다. 기초의학 선생의 경우에는, 가르칠 때 만난 학생을 쉴 때 안 만나려고 애쓴다. 학생 앞에서 애써 점잖은 척했는데, 쉴 때에도 그러기는 싫다. 다행히 학생도 나처럼 고약한 기초의학 선생을 안 만나려고 애쓴다. 이 글의 주제대로 일할 때와 쉴 때는 다르다.

기초의학 선생 중에서 해부학 선생은 시신을 마주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가르치려고 학생을 마주하는 시간도 있지만, 연구하려고 시신을 마주하는 시간이 훨씬 많다. 함께 연구하는 동료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있지만, 혼자 시신을 해부하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내 실험실에서는 시신을 컴퓨터에 입력해서 가상해부하는데, 컴퓨터에 입력한 시신도 시신이다. 해부학 선생은 일할 때 시신을 마주하니까, 쉴 때 산 사람을 마주해야 이 글의 주제에 들어맞는다. 정말 그렇다. 쉴 때 시신을 마주하는 사람이 설마 있겠는가?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나는 남다른 직업과 취미를 되풀이하면서 그럴싸하게 말한 적이 있다. “시신을 해부할 때에는 정교함을 느낍니다. 사람의 몸이 무엇보다도 잘 만든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산 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사람의 삶이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이라서 그렇습니다. 죽음을 마주할수록,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나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읽은이한테 이렇게 해 보라고 권한다. “사람을 만나면 직업뿐 아니라 취미도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일할 때 하는 것과 쉴 때 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이 진짜 무슨 일을 하는지, 일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개 직업과 취미는 거꾸로이니까요.”

정민석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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