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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비극적 구조율…선원 69%, 학생 23%
타이타닉 선원 생존율은 25%의 3등석보다 낮은 23%
세월호의 비극적 구조율…선원 69%, 학생 23%
타이타닉 선원 생존율은 25%의 3등석보다 낮은 23%
1912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타이타닉호를 북대서양에 수장시킨 것은 느닷없이 나타난 빙산이 아니었다. 선장은 사고 이틀 전에 이미 빙산 위험을 경고받았지만 너끈히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봤고 배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2건의 조종 실수로 빙산과의 충돌을 막지 못해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꼭 100년 뒤인 2012년 호화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이탈리아 해안에서 예정 항로를 벗어나 항해하다 암초에 걸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선체가 53m 길이로 찢어지면서 침수돼 반쯤 잠긴 상태로 배가 넘어져 32명이 사망했다. 이 배는 전에도 그런 것처럼 섬에 너무 바짝 접근했지만 속도를 줄이지는 않았다.
선박 사고 전문가들은 한 세기를 사이에 둔 두 사고를 분석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기술 발달은 초보적 무선통신에서 위성통신으로 바뀌는 등 엄청났지만 사고를 일으킨 인적 요인에는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두 배의 선장은 모두 오랜 경력을 지닌 베테랑으로 어떤 상황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또 이 때문이겠지만, 사고로 이어진 결정적 실수를 승무원 누구도 가로막지 않았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이들 선장의 잘못된 결정을 사실상 허용 또는 부추긴 것은 바로 선박회사였다. 회사의 이익 앞에 승객의 안전은 뒷전이었던 것이다.
아직 조사가 진행중이지만, 멀쩡한 기상 조건의 연안에서 세월호가 왜 대형 참사를 빚었는지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는 앞서 든 2개의 사고와 유사한 점도 있다.
건조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국내 최대급 여객선으로 각종 첨단장치를 갖추고 있다. 해양수산부의 항적 자료는 이 배가 급격한 회전을 하는 구간에서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급회전을 하다 배가 넘어간 배경엔 선장과 승무원의 실수와는 별개로 선박회사의 무리한 객실 증축을 비롯한 구조변경과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운항 관리 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는 100년 전 타이타닉호에도 못미치는 퇴행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장이 승객에게 퇴선 명령도 내리지 않고 승무원들과 함께 먼저 탈출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세월호 선원의 구조율이 69%인데 단원고 학생의 구조율은 23%에 머문 것은 그 비극적 정황이다. 타이타닉호에서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승객을 모두 대피시키고 선교에서 최후를 맞았다. 비록 1등석 승객이 가장 많은 62%가 목숨을 건졌지만 선원 생존율 23%는 2등석 승객 41%와 3등석 승객 25%보다 낮았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여러모로 규명돼야 한다. 선박의 문제점과 선원·선사의 책임은 물론 재난 대응 원칙과 매뉴얼이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정부의 골든타임제가 왜 무용지물이 됐는지 등을 제도적으로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 나아가 또다른 재앙을 맞지 않으려면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얼마 전 일본에서 초대형 크루즈선에 탑승한 적이 있다. ‘탈핵’을 주제로 한국과 일본 시민 920여명이 참가한 ‘피스 앤 그린보트’ 프로그램이었는데 전원이 참석한 첫 행사는 ‘탈출’ 훈련이었다. 각자 구명복을 입고 배정된 장소에 집결해 교육을 받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전기가 나가고 바닥이 일어서는 실제 상황에서 그런 훈련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니 출구까지 한번 가본 기억이 생사를 가를 수 있음을 실감했다. 안전과 관련한 일을 귀찮게 여기는 우리의 풍토와는 다른 색다른 경험이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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