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문제점 지적에도
재난대응체계 변경
안행부-해수부 엇박자
부처별 대책본부만 양산
세월호 초동대처 실패
재난대응체계 변경
안행부-해수부 엇박자
부처별 대책본부만 양산
세월호 초동대처 실패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초기 대응에 무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박근혜 정부가 ‘안전’을 강조하며 지난 2월 바꾼 재난대응체계의 허점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안전행정부(안행부)의 재난관리 총괄·조정 기능을 강화해 대규모 재난 발생 때 각 부처를 지휘하게 하는 쪽으로 재난안전관리 법체계를 만들었지만, 세월호 사고 수습 과정에서 안행부와 해양수산부가 따로 놀았다.
20일 박근혜 정부의 재난대응체계 설계도 격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면, 재난이 발생하면 안행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재난 안전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은 지난해 대수술을 거쳐 지난 2월7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 시행 당시 안행부는 2004년 출범한 중대본의 국가 재난대응 시스템을 체계화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지난해부터 ‘조직의 지휘·명령 체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11월 펴낸 ‘이슈와 쟁점-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의 의의와 향후 과제’ 보고서에서 “장관이 같은 지위의 다른 장관을 지휘할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대규모 재난 발생 때 중대본 본부장인 안행부 장관이 중앙사고수습본부에 속한 각 정부 부처들을 지휘하도록 했는데 비현실적이란 것이다.
이런 우려는 세월호 사고 대처 과정에서 현실화됐다. 중대본을 책임지는 안행부와 안전관리법 시행령상 해양 사고 때 주관기관으로 정해진 해양수산부 사이의 엇박자가 드러나면서 지휘체계의 혼선이 드러났고, 초동대처에 실패했다. 재난과 관련해 안행부에 각 부처를 총괄·조정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법률 체계가 현실에선 무력했던 것이다.
아울러 방재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안행부로 사회재난 총괄 기능을 이전하면서 소방방재청의 전문인력은 흡수하지 않는 등 “준비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반직 공무원이 다수인 안행부 간부들만으로는 재난 대처 경험이 부족하고 전문성이 낮아 사고 초기 대응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부처별로 각종 ‘대책본부’만 양산했다. 서울에는 안행부가 중대본을 설치했고, 세종시에서는 해수부와 교육부가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차렸다. 또 해양경찰청은 인천과 목포에 지방사고수습본부, 서해지방해양경찰청은 목포에 중앙구조본부를 세웠다. 대책본부는 많았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실종자 가족 대표인 마동윤씨는 지난 18일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면서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도,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혼선이 가중되자 국무총리실은 정홍원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를 전남 진도군청에 직접 꾸렸다. 당장은 재난대응체계의 혼선을 정리했지만, 안행부에 재난안전에 대한 총괄 조정 기능을 부여한 법정 재난대응체계를 정부가 스스로 부정한 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재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중대본의 구조와 역할 분담이 위급상황에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시 점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음성원 기자 esw@hani.co.kr
이슈세월호 참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