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전 8시 58분께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다 사고로 침몰 중인 6천825t급 여객선 세월호에 헬기가 동원돼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점검 통과했다더니…5대 중 1대 꼴 부실
정부는 실태 외면…규제 완화에만 급급
정부는 실태 외면…규제 완화에만 급급
이명박 정부가 노후화 선박의 안전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져 선박 점검을 거치고도 상태가 미흡한 선박이 20%에 달하는 실태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실태를 외면한 채 선령제한 완화 쪽으로 결론을 짜맞춰 규제를 완화하는 데 급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점검 통과했다더니…5대 중 1대 여전히 부실”
2008년 정부가 해양수산연수원 부설 선박운항기술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한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제도 개선 연구 최종보고서>를 보면, 15년 이상 위주로 41척의 여객선을 샘플 조사한 결과 “(안전관리가) 미흡한 선박의 척수는 총 8척으로서 전체 실태조사 선박 41척의 약 19.5%에 달하였음”이라고 보고돼 있다. 8척 가운데 20년 이상인 선박이 2척, 20년이 안됐는데도 미흡한 선박이 6척이었다.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선령제한을 완화할 경우, 상태가 미흡한 선박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가 고안되어야 한다”고 우려했다.
보고서는 20년 미만의 선박이 20년 넘은 선박보다 미흡한 까닭으로, "안전항행검사제도(20년이 넘은 노후선박에 한해 매년 받는 검사)로 인하여 강화된 검사가 실시(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즉, 당시 법상으로 20년을 넘긴 선박은 까다로운 검사에 대비하다 보니 그나마 ‘조금’ 나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20년을 넘긴 노후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선박검사기관 관계자는 “20년 이상된 노후선의 선령연장 후 운항 선박을 현장에서 점검하다보면 과연 이 선박이 어떠한 기준으로 검사가 이뤄졌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음. 그만큼 선체나 기관실이 노후된 경우가 있었음에도 해당선급의 검사를 통과한 것을 보면 도대체 검사의 기준이 무엇인지 의심되는 경우가 있었음”이라고 제한 완화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선령 완화’ 설문조사 짜맞추기 정황도…
그러나 이같은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보고서는 부실 검사가 만연화된 점보다 “선박상태의 양호, 불량은 선령에 의해서 반드시 지배되지는 않는다”는 데 주목하고, 이를 근거로 정작 “선령 25년 이상 선박에 대하여 선령제한을 반드시 하여야 하는 현행 제도는 개선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게다가 이뤄진 설문조사에서도 짜맞추기 정황이 드러났다. 선령제한 관련 규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제도를 개선(연장)하여야 한다는 쪽의 의견이 111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59.4%로 우세했다. 현행제도 유지는 40.6%(76명)였다. 그런데 응답자의 60.5%(187명 중 114명)가 연안여객선사 육상근무자, 연안여객선 선장 및 기관장, 한국해운조합 운항관리자 등 여객선사와 선사들의 조합인 해운조합 쪽 사람들이었다. 대체로 규제 완화에 부정적이었던 선박검사기관집단 종사자들은 32명에 불과했다.
특히 설문지 표지에 ‘연안여객선 실태조사 잠정결론’을 실어 답변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여객선의 선령이 증가할수록 여객선의 구조설비의 상태와 성능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으나, 모든 선종에서 동일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님”, “선령 20년이 넘은 선박이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선령 제한, 선진국엔 없는 특수한 제도?
그 외에도 보고서는 선령 제한이 중국·필리핀·유럽연합(EU) 등에서만 시행되는 점을 들어 “우리 나라 외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특별한 제도”이며,“연안여객선이 가장 많은 일본과 선진해운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선령제한을 하지 않는다”거나 “(미국)역사적 가치를 지니는 여객선의 경우 선령이 100년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썼다.
그러나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은 선령제한이 없는 대신, 강화된 선박검사와 보조금 정책 등을 통해 노후화한 선박을 교체해 왔다. 일본의 경우 “선박건조 보조금 지급에 있어 차등을 주는 정책을 시행하여, 선령이 일정한 수준(10~15년)에 달하면 해외 매각을 장려하고 있다”. 호주의 경우 카페리호와 같은 대형여객선의 평균 선령은 12년이었다. 뉴질랜드는 1998년부터 선박안전관리제도와 안전측면평가수치 제도를 도입해 기준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 정밀검사를 받게 했다.
다른 나라들이 ‘선령 제한제도’ 없이도 노후화한 선박을 교체해 온 것과 달리, 국내는 선령제한을 두었을 뿐 이하 선박들에 대한 점검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확히 19년 10개월 된 세월호의 경우도 중간검사에서 구명장비, 조타기와 스태빌라이저(균형을 잡아주는 장치) 등이 정상 판정을 받았으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부 점검반 검사시에도 여객선 한 척당 불과 13분이 소요됐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등 부실한 관리 실태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MB는 왜 선령 규제 완화를 강행했을까?
선령 제한 완화는 2008년 8월 5일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자며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제시된 94건 중 하나다. 당시 국토해양부 등은 이를 통해 “연간 200억원이 절약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제한 완화는 선사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당시 일본의 여객선 사업이 위축되면서 사올 만한 중고 여객선이 귀해졌고, 2008년에는 가격이 두배로 뛰었다. 보고서는 중고여객선 매매업체 세 곳의 자문을 받은 결과, “선령제한제도를 30년으로 완화할 경우, 연안여객선사의 경영여건을 개선시킬 수 있으며, 선령제한제도로 인한 5년간 손실액 약 370억원(대형카페리선 척당 약 46억원) 정도를 절감(기회비용·감가상각비 포함)”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게다가 25년의 최대 연장 기간을 넘기면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으므로 중국 등에 팔았는데, 중국에서 한국과 유사한 선령제한제도를 도입했고 필리핀도 도입 계획을 밝히면서 재매각도 어려워질 판이었다. 2008년 여객선 면세유 공급단가는 전년대비 31.6% 증가해 업계의 압박도 거세졌다. 용역보고서는 2008년 9월 19일 최종안이 작성됐고, 2009년 1월 운용시한을 30년까지 늘린 해운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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