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적도 복구…사고 원인규명 새 단서
8시48분37초에 자동식별장치 꺼져
정전 추정…“발전기 모두 꺼진듯”
8시48분37초에 자동식별장치 꺼져
정전 추정…“발전기 모두 꺼진듯”
세월호가 사고 발생 뒤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 긴급 구조 요청을 하기 전 6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고 당시 세월호의 움직임을 가늠해볼 수 있는 새 항적도가 나와 사고 원인 규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가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을 통해 전남 목포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기지국 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선박자동식별장치란, 선박에 탑재돼 선박의 위치, 침로, 속력 등 항해 정보를 1분에 5~6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장치다.
새로 공개된 항적도를 보면, 세월호는 맹골수도를 지나던 16일 오전 8시48분37초에 이상 징후를 보인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동식별장치가 꺼져버렸다. 해수부는 정전(블랙아웃)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그래서 이후 36초 동안(이동거리 200m 정도) 세월호의 항적은 잡히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 정전이 됐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초기에는 암초와의 충돌 등 외부 요인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정전과 관련해 1급 항해사 이아무개씨는 “보통 배에 발전기가 2~3대 있다. 한 대가 멈추면 자동으로 15초 안에 다른 발전기가 작동하게 돼 있다. 36초 동안 자동식별장치가 끊어졌다면, 발전기가 모두 멈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발전기는 자동식별장치나 객실 등 배의 모든 부분에 전기를 제공하며, 이것이 멈추면 메인 엔진(프로펠러 가동)도 꺼진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발전기가 멈춰도 객실 등에 있는 비상등은 배터리로 작동해 켜져 있게 된다.
세월호는 이후 비상용 배터리에 의해 자동식별장치가 복원되면서 8시49분13초에 다시 항적이 잡혔다. 이때는 선수(뱃머리)가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져 있었다. 이후 서서히 선수가 돌아가 24초 뒤인 8시49분37초에는 선수가 애초 이상 징후가 나타났을 때에 비해 45도 오른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상황은 19초 동안 계속됐다. 이어 8시49분56초에는 애초에 비해 95도가량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었고, 20초 동안이나 이런 상태가 이어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 구간에서 배가 급회전하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외방경사’가 일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 뒤 조류에 밀려 떠내려가기 시작한 시간은 8시51분09초. 그러나 선장 등 승무원들은 이런 위급 상황에서도 구조 요청을 하지 않다가 4분 뒤에야 초단파무선통신(VHF) 채널12를 통해 무려 90㎞나 떨어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라며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이후 관제 책임을 맡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하기까지 다시 12분이 걸렸다.
해수부 관계자는 사고 원인과 관련해 “세월호는 17~18노트(시속 35㎞)로 진행하다 맹골수도를 지나면서 오른쪽으로 10도가량 꺾게 돼 있는데, 정전 뒤 속도가 10노트 등으로 점점 줄면서 49분37초에 선수가 오른쪽으로 확 꺾였다”며 “원인은 (나중에) 화물 적재가 어떻게 돼 있는지와 평형수(배 아래나 좌우에 넣어 균형을 잡는 데 쓰는 물) 부족 여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봐야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변침(방향 전환)을 하다 (평소보다) 더 돌았을 수 있는데, 전타(조타기를 최대치인 35도로 꺾는 것)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애초 조타수가 무리하게 조타기를 돌린 게 결정적 요인이라는 추정이 나왔으나, 다른 기계적 결함이 사태를 촉발했거나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결국 정전이 일어난 것으로 짐작되는 36초간이 원인 규명에 핵심적인 시간이 될 수 있다.
1급 항해사 이씨는 “꺾여 있는 조타기는 정전이 되면 계속 꺾인 상태로 가는데, 그렇다고 배가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배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전원이 끊기면, 복원력이 있으면 그 상태대로 멈춘다. 하지만 세월호는 증축으로 무게중심이 올라가 복원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확 넘어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세종/김경무 선임기자, 이경미 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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