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설치된 민간다이버 천막 흰 벽에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진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월호 침몰 참사] 팽목항 울린 언니의 대자보
“무책임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바다에 갇혀 있게 해서 미안해. 언니가 더 예뻐해주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지금 우리 ○○이. 바다에 있든 하늘에 있든 정말 보고싶다. ○○아, 사랑해.”
23일 동생을 애타게 기다리는 언니의 절절한 외침에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아, 지금 추운 바다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버티고 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너보다 조금 더 나이 많은 이 언니는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어”라는 말로 시작하는 대자보에는 동생을 향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만 해도 언니는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박아무개(22)씨는 수학여행을 가던 동생이 탄 배가 침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8일 오전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지만,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동생은 보이지 않았다.
바다 밑에서 얼마나 배고프고 힘드니
수색한단 말만…제대로 하는건 없어
엄마는 청와대 가다 결국 진압당했지
마치 성난 폭도 대하듯이 말야
내 바람은 네가 무사히 돌아오는것과
우리가 살아갈 대한민국이 이런 악몽
다신 겪지 않는 건데…모르겠다
‘전원 구조’됐다던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은 78명만이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월호 승선자 수와 구조자 인원은 몇 번이나 수정됐다. 구조 작업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불신도 깊어졌다. “수색대를 보내 오후 5~6시까지 수색을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늘 그런 식이었어요. 수색을 하겠다는 말만 있지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박씨는 절망했다. 22일 팽목항 들머리에 늘어선 임시 천막에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정부 대책에 대한 절망감을 적은 대자보 2장을 붙였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적었다. “보시다시피 가족들이 억울한 게 많아요. 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하고 싶었어요.”
박씨가 동생을 본 것은 지난해 6월이 마지막이었다. 그저 동생이 보고 싶었다. “너를 하루 빨리라도 그 바다 밑에서 구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 했는데… 그분들은 계속 말만 바꾸신다. 우리 ○○이 어두운 거 싫어하고, 좁은 거, 답답한 거 싫어하는데… 지금 바다 밑에서 얼마나 배고프고 힘들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고 썼다. 정부를 향한 원망도 있었다. 참다못한 가족들은 19일 새벽 청와대로 향했다. 박씨의 가족도 이 자리에 있었다. “작은아버지, 이모, 삼촌, 엄마가 분노해 청와대를 향해 몇십㎞를 갔는데…. 결국 진압당했어. 마치 성난 폭도들을 대하듯이 말야.”
박씨는 물밑에 있는 동생에게 계속 말을 건넸다. “이 사회는 너와 언니가 생각하는 만큼 도덕적이지 않구나… 언니는 이렇게 큰일이 천안함, 삼풍백화점처럼 일주일, 한달의 악몽으로 국민들 머릿속에서 지워질까봐 두려워… 언니의 바람은 우리 ○○이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과 이 잘난 정부가 정신 차리고 앞으로 ○○이와 언니가 살아갈 ‘대한민국’이 이런 악몽을 다신 겪지 않는 건데. 모르겠다.”
박씨만이 아니었다. 팽목항 임시 천막에는 하루빨리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가족들의 글들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춥고, 배고프시고, 무섭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아빠의 가족들 모두 간절히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꼭꼭 무사히 끝까지 버티시고 조금만 더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아빠.”
서영지 기자 yj@hani.co.kr
바다 밑에서 얼마나 배고프고 힘드니
수색한단 말만…제대로 하는건 없어
엄마는 청와대 가다 결국 진압당했지
마치 성난 폭도 대하듯이 말야
내 바람은 네가 무사히 돌아오는것과
우리가 살아갈 대한민국이 이런 악몽
다신 겪지 않는 건데…모르겠다
‘전원 구조’됐다던 단원고 학생과 교사들은 78명만이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세월호 승선자 수와 구조자 인원은 몇 번이나 수정됐다. 구조 작업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만큼 불신도 깊어졌다. “수색대를 보내 오후 5~6시까지 수색을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말이었던 거예요. 늘 그런 식이었어요. 수색을 하겠다는 말만 있지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박씨는 절망했다. 22일 팽목항 들머리에 늘어선 임시 천막에 동생에 대한 그리움과 정부 대책에 대한 절망감을 적은 대자보 2장을 붙였다. 억울한 심정을 꾹꾹 눌러 적었다. “보시다시피 가족들이 억울한 게 많아요. 동생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하고 싶었어요.”
23일 낮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 설치된 민간다이버 천막 흰 벽에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글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진도/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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